박영수 특검이 '재벌 수사 난관'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고 박근혜 대통령의 뇌물 수수 혐의를 끝까지 파헤칠 수 있을까.

서울중앙지법(조의연 영장전담부장판사)이 지난 19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가운데 특검팀이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총수 및 박 대통령을 향한 수사 의지를 끝까지 관철할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난 19일 특검의 수사 의지가 후퇴할 수 있다는 예측이 확산됐으나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20일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와 관련해 "추후 (수사) 상황에 따라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서울중앙지법으로 부터 구속 영장 기각 처분을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9일 오전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빠져나오고 있다.ⓒ포커스뉴스

법조계 일각에서는 아직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 기각 하나로 특검 수사 향방을 가늠하기는 이른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특검이 박 대통령, 최순실씨(60·구속기소)에 대한 수사절차를 밟으면 법원도 기각할 사유를 찾을 수 없다는 점, 추가 뇌물 공여 사실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 등이 근거로 거론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재화 변호사는 "기각 사유에 '뇌물 수수자에 대한 조사 미비'가 있지 않았느냐"며 "그렇다면 박 대통령 대면 조사를 한 이후에 특검은 영장 재청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지적했다.

김종보 변호사도 "구속 영장 기각 때문에 현재 특검 수사 향방이 달라진다고 보기 이른 시점"이라며 "박 대통령을 조사하지 않은 게 절차상 걸리는 것이지, 삼성 뇌물 공여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뇌물 수수자 조사'만 주요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다른 영장 기각 사유가 설득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법률팀장 권영국 변호사는 "특검이 범죄를 소명해야할 게 아니라 (영장전담) 판사가 기각 사유를 제대로 소명해야 할 것 같다"면서 "청탁이 충분히 의심되는 사실관계를 놓고 청탁인지, 대가인지 (불확실하다) 하는 것은 말장난에 가깝다. 기업이 돈 몇 백억원을 사적 개인에게 준다? (영장 기각은) 말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해당 판사가 기각 사유로 '피의자의 주거 및 생활환경 고려'를 기재한 사실이 알려지며 사법부가 법 원칙을 어기고 권한을 남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권 변호사는 "판사가 '황금수저 자손이니 도저히 교도소에서 생활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것인가.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 여부가 구속 요건"이라며 "이 판단을 일절 배제하고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생활환경'을 들었다. 사법부는 법을 창설하는 곳이 아니"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 이규철 특검 대변인이 1월19일 오전 서울 강남구 특검 기자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특검이 삼성과 박 대통령 및 최순실씨 간 추가 뇌물 수수 사실을 파악하고 있을 거라는 관측도 있다. 과거 특별검사팀 특별수사관으로 일한 바 있는 변호사 A씨는 "특검이 최근 경향신문에 보도된 삼성과 정유라 승마 코치 간 250억 상당의 비밀계약건 등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범죄 사실을 추가로 소명해 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최지성 삼성전자 미래전략실 실장 등 사장단 실무책임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도 특검의 수사카드로 거론된다.

이 대변인은 선결 과제인 박 대통령 대면 조사에 대해 "기본방침에서 변동 없다"고 말했다. 특검은 2월 초 전으로 박 대통령 대면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 밝혀왔다.

대통령 대면 조사도 ‘특검의 의지만 있으면’ 문제없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변호사는 "대통령이 현재 탄핵 소추로 인해 직무정지 상태에 있다"면서 "대면 조사를 거부한다면 특검은 체포영장을 발부해 소환조사할 수 있다. 특검이 그렇게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특검은 대통령과 뇌물 수수 공범 신분인 최순실씨에 체포영장 청구 계획을 밝힌 상황이다. 이 대변인은 20일 "오늘 그 동안 소환에 불응한 최순실씨를 내일(21일) 오전 피의자로 특정해 소환 통보했다"면서 "출석 하지 않으면 아마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재청구 기각시 특검 동력 바닥칠 수도, "예단 일러… 코너에 몰린 것은 법원"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재청구한 영장이 기각될 시 특검의 수사 동력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는 데 따라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가 불확실하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강제 소환 의지 등 특검의 수사 계획에 불신의 눈초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종보 변호사는 "이 부회장 영장 기각 만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지나칠 수 있다"며 "특검이 지금까지 수사에 잘 임하는 것으로 보이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을 규탄하는 이덕우, 권영국, 최병모 변호사(왼쪽부터)가 20일 오후 서울지방법원앞에서 열린 노숙농성 돌입 기자회견에서 이재용, 조윤선의 구속과 조의연 판사의 파면을 촉구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특검의 수사 자신감이 이전보다 위축됐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뇌물공여 혐의를 가진 기업 수사에서다. 권 변호사는 "(이 부회장 구속 후) 더 수사를 치밀하게 해 대통령의 뇌물 수수, 최순실의 뇌물 혐의를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했던 계획이 사실상 난관에 부딪힌 것"이라면서 "(다른 대기업에 대한) 수사나 총수들 구속영장 청구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혐의가 가장 뚜렷해 보이는 삼성그룹 수사가 차질을 빚었는데 다른 대기업 수사에 제동이 걸리지 않겠냐'는 지적에 이재화 변호사는 "SK, CJ 등은 뇌물 수수 혐의가 개별적이라 구분돼서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영장 청구 등이 걸릴 순 있겠으나 수사 자체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말했다. SK그룹 및 CJ그룹은 각각 교도소에 수감된 총수 사면을 청탁하며 뇌물성 대가를 지급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대변인은 삼성을 제외한 대기업 뇌물 수사와 관련, "현 단계에 구체적으로 일정이 잡힌 건 없다"며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금 관해 일단 별도의 부정 청탁이 있는 기업들이 우선 (수사대상) 기업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법조계 일각의 낙관적인 평가는 영장 기각에 대한 비난 여론이 특검이 아닌 법원을 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변호사는 "지금 특검이 코너에 몰린 것이 아니라 법원이 코너에 몰렸다고 본다. 형평성, 통상 관례에 비춰 누가 봐도 납득할 수 없는 영장 기각을 한 것"이라면서 "오히려 (법원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영장 기각이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법원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거세지는 상황이다.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 등은 오는 21일 '13차 범국민행동'에서 이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 규탄 및 재벌총수 구속 촉구 구호를 내걸 예정이다. 이재용 영장기각에 분노하는 시국농성 제안 법률가 68명은 20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삼거리 인근에서 규탄 노숙 농성에 돌입했다.

권 변호사는 특검이 이 부회장을 비롯한 뇌물 공여 혐의 재벌 총수 구속 영장을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총수가 밖에 있으면(구속되지 않으면) 조직을 동원해 말을 맞추고 증거도 끼워맞추는 등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수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