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박수나 한번 칠까요?”
19일 공영방송 MBC 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고영주)에서 열린 MBC 상반기 업무보고가 끝난 후 유의선 방문진 이사는 박수를 제안했다. 그는 여당 추천으로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 이사 중 한 명이다.
MBC 기자들이 촛불집회 현장에서 조롱받으며 쫓겨나고 메인뉴스 시청률이 곤두박질치고 있으며, 능력 있는 PD들은 보다 나은 제작 환경을 찾아 MBC를 줄줄이 떠나는 상황인데도 MBC 임원들과 이들을 감독해야 할 방문진 이사들은 박수나 치고 앉아 있었다.
유 이사는 이날도 “나도 학교에서 학생들 가르친다”며 ‘학자적 양심’을 강조했다. 6명의 여당 추천 이사 중 유일하게 방송 관련 전문성 인정받은 그는 명색이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다.
MBC 업무보고가 끝난 후 총평 자리에서 안광한 사장을 비롯한 현 MBC 경영진이 공영방송으로서 이미지가 추락한 것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것을 질타한 야당 추천 이사들을 향해서도 유 이사는 외려 “스스로 반성하면서 건설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그는 “경영진이나 이사진 비판은 열심히 하면서 지금 횡행하는 언론의 잘못된 점, 저널리즘 원칙에 벗어난 점에 대한 반성은 시대정신이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일체 거론을 안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문진 이사가 타 언론의 보도에 대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할 수도 없지만, 굳이 시대정신과 사회적 분위기에 연연하지 않고 비판을 하고 싶거든 언론학자로서 논문이든 기고든 얼마든지 공개적으로 할 수 있다. 그걸 다른 이사들에게 왜 안 하느냐고 묻는 것이야말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자세다. 그에 앞서 유 이사는 MBC 보도가 저널리즘 원칙에 벗어난 점을 지적했어야 한다.
이날 여당 추천 이사들은 MBC 임원들에게 뉴스 시청률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지금처럼 공정보도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격려했다. “여러 매체가 왜곡·조작 방송을 하니까 애국 시민들이 MBC만 보고 있다”는 고영주 이사장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언론학회장을 역임한 한균태 방문진 감사(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마저도 “현재 종편의 보도 행태가 굉장히 선정적, 자극적, 편파적이어서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이에 매몰되거나 휘둘리지 말고 MBC만의 독특한 특성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현재 공영방송을 이끌어 가는 이들의 인식이 이렇다.
안 사장은 지난 16일 방문진 이사회에서 MBC 상반기 업무보고 인사말을 한 후 해당 보도에 대한 야당 추천 유기철 이사의 질문에 “만났다고 보도한 쪽에서 밝히면 되는 것”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19일에도 이완기 이사가 “안 사장이 자기 신변과 관련한 얘기를 직접 솔직하게 해명하면 될 것을 MBC 뉴스를 사유화해 이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지만 안 사장은 해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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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MBC 업무보고가 자화자찬과 박수로 끝난 후 미디어오늘 등 몇몇 기자들이 안 사장에게 “정윤회씨 등과 만났다는 데 사실이냐”, “만나지 않았다면 안 만났다고 얘기해 달라”고 거듭 물었지만 안 사장은 끝내 ‘만나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돌아온 건 “무슨 소리 하고 있어”라는 날카로운 반응과 “TV조선이 밝혔으면 밝혔다고 나가면 될 거 아니냐”는 동어반복뿐이었다.
애국·보수 인사들로 장악된 방문진 이사회와 청와대의 눈치만 보며 자리보전에만 급급해 공영방송을 망치고 있다는 비판을 듣는 MBC 간부들. 공영방송이 죽어가도 의리로 뭉쳐 ‘잘살아보자’는 방문진 이사회의 풍경이, 기자들의 질문에 싸늘한 웃음으로 대신한 안광한 사장의 표정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정신승리’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