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선출 공직자(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의 정년을 만 65세로 제한하자고 한 주장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의뢰로 19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해당 주장에 대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찬성 의견은 전체 517명 중 54.7%로 반대의견 33.1%에 비해 많았다. 특히 30대와 40대의 찬성률이 각각 60.6%와 69.2%로 젊은 층에서 압도적으로 공감했다.

표 의원에 대한 비난 여론도 거세다. 표 의원의 주장이 ‘노인 혐오’라는 비판이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은 “노인 폄하는 표 의원뿐만이 아니”라며 민주당까지 함께 비판했다. 표 의원 의견에 지지하는 사람은 이미 다 공감하고 있는 것이지만 ‘선출직 65세 제한’ 주장은 한국 사회 노년층 전체를 비난한 발언이 아니라 소수 특권층을 향한 발언이다. 

표 의원의 주장은 현실성도 떨어진다. 설마 이 주장이 법안으로 발의돼 통과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헌법상 참정권 제한 여지가 있다는 사실은 표 의원 본인도 알 것이다. 즉 이는 정치적인 목적의 발언으로 보는 게 맞다. 따라서 표 의원의 주장을 비판하는 대다수의 사람들도 표 의원을 비판하기 위해 그의 발언을 문자 그대로 해석할 뿐이다. 표 의원 주장에 공감하는 다수 시민들이 어떤 심정인지엔 관심 없다.

▲ 선출직 공직자 정년 제한에 대한 국민여론. 사진=리얼미터

65세 이상 정치인, 누구인가?

해당 발언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시민들이 촛불들고 거리에 나와 대통령 하야를 외쳤고, 다수가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타이밍에 나왔다. 시민들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하는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새로운 리더십을 열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사건건 수구적인 행태를 모습을 보인 이들이 있다. 김기춘, 서청원, 인명진, 반기문. 표 의원의 발언을 들은 시민들은 이들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다.

박영수 특검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블랙리스트’ 작성이 김 전 실장 지시였다고 실토했다. 김 전 비서실장이 5·16장학회 첫 수혜자로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했고,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 등을 맡으며 간첩조작을 지휘한 사실 등 과거 만행도 이번 기회에 재조명됐다.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은 몰락하는 친박을 살리겠다고 데려온 인명진 목사와 고소까지 해가며 서로 싸우고 있다. 서 의원이 몽니를 부리는 측면이 강하고 인 목사가 여당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보이지만 인 목사 역시 “박 대통령을 지켜야한다”며 시민들 뜻과 괴리된 주장을 하고 있다. 사퇴 요구를 묵살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 의원은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친박연대 등을 거친 수구기득권 8선의원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지난 19일 대전 카이스트를 방문해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강연을 했지만 “과거 우리나라 개인 소득이 300달러도 안 되는 가난할 때 과학발전에 투입한 건 높이 평가한다”, “우리나라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와야 한다” 등 학생들을 채찍질하는 얘기를 쏟아냈다. 이공계 대학원생의 열악한 처우 개선에 대한 질문에는 ‘과학기술부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자살자가 속출했던 카이스트 학생들은 반 전 총장에게 리더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 오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초청 강연 및 토론회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던 중 다른 참석자들은 모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데 혼자 인사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노인폄하인가?

시민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따라오지 않는 사람들을 늙었다고 표현한다. 단순히 나이만을 일컫는 건 아니다. 1935년생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은 많은 시민들이 시대의 어른으로 삼아 존중을 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표 의원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김기춘, 서청원, 인명진, 반기문 등이 나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분노가 저변에 깔려 있다. 

청년 정치인은 야당에서 조차 찾기 어렵고 기득권으로 똘똘뭉친 정치인들이 주도하는 국회와 청와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낡은 곳이다. ‘선출직 65세 제한’ 주장에서 방점은 ‘65세’가 아니라 ‘선출직’에 찍혀있다.

이들은 보통 ‘노인’으로 불리지 않는다.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이 될 사람들은 대한민국 1% 기득권층이다. ‘청년 정치인’, ‘여성 정치인’이라는 말은 있지만 ‘노인 정치인’이라는 말은 없다. 정치인은 늙는다는 사실에서 벗어나있다. 현실에서 정치인들은 노인으로 불릴 수 있는 평범한 서민들과 구분된 사람들이다. 정치인에 대한 공격은 노인혐오로 연결될 수 없다. 늙음은 지위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늙음은 권력의 문제다.

누가 반기문을 보면서 ‘노인’이라는 정체성을 먼저 떠올릴까?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외교관으로 대표된다. 김기춘은 검찰출신의 노회한 법기술자로 대표될 뿐 폐지를 줍거나 청소노동을 하거나 경비실을 지키는 노인으로 분류할 수 없다.

1990년대 여의도에서 지속적으로 나왔던 말은 ‘3김청산’이었다. 사회는 빠르게 바뀌는데 정치는 1960년부터 활동했던 김대중·김영삼·김종필이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3김청산’은 권위적인 정치문화 청산을 의미했다. 수직적 리더십에 기반으로 한 정치권 문화가 청산되지 않으면 개혁도 민심도 민주주의도 존재할 수 없다.

이번 표 의원의 발언도 정치가 일상과 괴리돼 있고, 대부분 정치인들이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고 기득권을 지키려고만 하는 행태를 비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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