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관리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변호인을 맡은 인사가 KT 사외이사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이 인사는 KT 차기 회장을 내정하는 CEO추천위원회 위원 활동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황창규 현 KT 회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불법적인 인사요구를 그대로 수용했다는 내용이 차은택씨에 대한 검찰 공소장에 기재돼 있다. 이에 따라 KT 내부와 정치권에서는 회장 연임 심사에서 손을 떼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일 KT 새노조와 윤소하 정의당 의원, 법무법인 KCL 등에 따르면, KT 사외이사와 CEO추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동욱 변호사(법무법인 KCL 고문변호사)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변호인을 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법인 KCL의 정동욱 변호사 측 관계자는 19일과 20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정 변호사가 김 전 실장의 변호를 맡은지 꽤 됐다고 밝혔다. 김 전 실장과 선임계약도 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정 변호사는 20일 출근하지는 않는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

이와 관련해 윤소하 정의당 의원과 같은당의 추혜선 의원, KT 새노조는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이 같은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윤 의원 등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국정농단에 휘말리며 그에 대해 법률 조언을 맡긴 사람이 놀랍게도 현재 KT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정동욱 변호사(법무법인 케이씨엘)”라며 “공안검사로 이름을 날린 김 전 실장은 자신의 변호도 공안검사 출신 정동욱 변호사(68·사법연수원 4기)에게 맡겼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김 전 실장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1988~1990년 대검찰청 공안1~3과장을 지냈고, 김 전 실장이 법무부 장관이던 1991~1992년에는 법무부 법무과장이었다고 윤 의원 등은 설명했다. 특히 윤 의원 등은 “공안 검사 출신이 통신회사 KT의 사외 이사와 VR산업협회 법률고문을 맡은 것도 의아한데 내부 제보에 따르면 그가 황과 청와대를 이어준 연결고리였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1월2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시사인 최근호가 2015년 12월16일부터 2016년 1월10일까지 안 전 수석이 쓴 업무수첩 맨 마지막 장에 청와대가 KT 인사에 개입한 흔적이 남아 있다는 보도 내용에 대해서도 윤 의원 등은 언급했다. 이 메모에는 KT 사외이사 세 명(송도균·임주환·차상균)의 이름이 적혀 있고 가운데 사람을 제외하고 두 사람을 화살표로 묶고 ‘연임’이라고 쓰여 있다고 시사인은 보도했다. 이 메모가 적힌 페이지 옆면에도 ‘교체’, ‘3년 유임’ 등의 메모가 적혀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는 것. 지난해 3월25일 열린 KT 주총에서 송도균 전 SBS 대표이사, 차상균 서울대 전기정보학부 교수는 사외이사로 재선임되고 임주환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은 교체됐다고 윤 의원 등은 강조했다.

윤 의원 등은 “이 내용들이 사실이라면, KT는 박근혜-최순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주는 부역자들이, CEO에서 사외이사까지 완벽하게 지배하는 기업이 된 것이고, 그 결과로 최순실의 재단에 출연한 것은 물론 그들의 핵심 비지니스인 말산업에서 동계올림픽까지, 광고에서 가상현실까지 전방위로 챙겨준 것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문제는 온 국민이 촛불로 일어서고 특검이 김기춘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금에도 이들의 농단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의원 등은 “현재 KT에서는 임기가 만료된 CEO 선임절차가 진행 중인데, 이들 청와대와 김기춘과의 연결 의혹이 있는 3인의 이사가 KT의 회장추천위원회 8명에 들어가 있으며, 이들은 정관에도 없는 현 CEO 우선 심사를 진행중”이라며 “이제 국민기업 KT는 박근혜-김기춘 인맥으로 상징되는 국정농단 세력,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진정 국민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황창규 회장은 즉각 물러나고, KT 회장추천위원회는 황창규 연임 우선 심사 중단 △청와대와 김기춘 등과 연결 의혹이 있는 송도균, 차상균, 정동욱 이사는 즉각 회장추천위에서 손 떼고 △특검은 청와대의 KT 인사 개입 전면 수사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정동욱 변호사의 법무법인 KCL 측은 “정 변호사와 오후 늦게나 통화가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송도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20일 오전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나야 모르는 일”이라며 “KT가 추천해서 이사가 된 것”이라고 밝혔다. 송 고문은 “KT측에다 확인해보니 (시사인 보도에 나온 날짜가) 사외이사 추천위원회가 있은 뒤였다”며 “추천위는 한 달 전이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안종범 전 수석과의 관계에 대해 송 고문은 “안면이 없고, 모른다”며 “김기춘 실장도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도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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