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의혹 초기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주도자로 지목됐던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미르·K스포츠 재단은 청와대 지시로 설립된 것이 맞다”고 증언했다.

이승철 부회장은 19일 오전 최순실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순실 사건’ 재판의 첫 번째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재판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렸다.

이 부회장이 검찰 증인 신문 동안 내놓은 진술은 안 전 수석과 최씨의 무혐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안 전 수석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은 전경련이 주도한 것으로 회원사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출연금을 낸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최씨는 두 재단 설립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이 부회장은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미르·K스포츠재단을 설립한 것이라 일관되게 밝혔다. 그의 진술을 종합하면 안 전 수석이 이 부회장에게 문화재단 설립 필요성을 먼저 거론했다. △설립 시기 △재단 이름(‘미르’ 재단) △재단 출연금 규모 △출연 기업 명단 △정관 초안 △이사진 인선 등 설립에 관한 모든 핵심 사항이 안 전 수석 등을 통해 청와대로부터 하달됐다.

▲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이 1월19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법정을 들어서고 있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핵심인물인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재판에 첫 증인으로 출석한다. 사진=포커스뉴스
‘미르재단 출연금 규모 300억원도 안 전 수석이 정했냐’는 말에 이 부회장은 “그렇다”고 답했고 500억 원 출연금 증액을 일방적으로 지시 받았냐는 말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이승철 부회장이 먼저 증액을 제안했다’는 안 전 수석의 피의자 진술을 반박하는 증언이다.

이 부회장은 이사진 명단에 기재된 임원 후보에 대해 “(이들의) 이름을 들어봤거나 (이들과) 만난 적이 있다는 직원이 나를 포함해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지적하는 ‘청와대’는 직접 지시를 전달받은 안 전 수석이 아니라 대통령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출연금 증액 지시를 받을 즈음인 2015년 10월24일 경 안 전 수석으로부터 ‘VIP(대통령)가 ‘300억 원은 적다. 500억 원으로 올려야겠다’고 말했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고 “(VIP의 지시니) 나는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청와대 경제수석(당시 안종범 전 수석의 직책)의 지시는 대통령 지시에 의한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피고인 안종범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냐’는 검사 측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 전 부회장은 최순실 게이트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던 9월 말 경, 의혹 해소 방안을 요구하는 안 전 수석에게 ‘양 재단 해산 후 통합’을 방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안 전 수석은 이후 다시 전화를 걸어 ‘VIP로부터 동일한 해결방안 지시받았다’고 이 부회장에게 전했다.

이 과정에서 이 부회장은 ‘최여사’로 불린 최순실씨의 존재를 인지했다. 통합안과 관련해 정동춘 K스포츠재단 이사장이 이용우 전경련 상무에게 “우리 3명(정동춘, 김필승 외 1인)이 통합 재단 이사장으로 가는 것이 최여사의 뜻”이라고 밝혔다. 정 이사장은 곧바로 이 상무에게 전화를 다시 걸어 ‘최여사 뜻이라고 어디가서 말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청와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허위 진술을 강요한 정황도 발견된다.

안 전 수석은 재단 설립을 지시한 2015년 10월부터 의혹이 불거진 후인 2016년 10월21일까지 이 부회장에게 총 149회 먼저 전화를 걸었다.  그 중 5분에 4가 넘는 125회가 2016년 7월 이후에 집중됐다.

이 부회장에 따르면 안 전 수석은 재단 관련 최초 언론보도 전부터 그에게 연락해 ‘이 사건이 잘 마무리되게 힘 써달라’, ‘기업의 자발적 출연 입장을 견지해달라’는 허위진술을 요구했다.

이 부회장은 이 사건이 고발된 후 검찰 조사를 받기 하루 전 까지 안 전 수석으로부터 수차례허위 진술을 요구받았다. 그는 “검찰에서 그렇게 해도 되냐 싶었는데, (안 전 수석으로부터) 검찰에서 그렇게 되도록 조치 다 됐으니 걱정말라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고 밝혔다. 청와대가 검찰청에 외압을 행사한 정황이다.

이 부회장은 검찰 조사에 응하기 바로 전날 아래 직원인 박아무개 대리로부터 전달받은 메모를 재판 현장에서 공개했다. 박 대리가 안 전 수석의 보좌관의 전화를 받고 이 부회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받아 쓴 메모다. 푸른색 직사각형 포스트잇엔 “수사팀 확대. 야당 특검 전혀 걱정안하셔도 되고 새누리 특검도 사실상 우리가 먼저 컨트롤하기 위한 거라 문제 없다. 모금 문제만 해결되면 전혀 문제 없으니 고생하시겠지만 너무 걱정 말라”가 기재돼있었다.

이 부회장은 “이미 문체부, 우리(전경련) 직원 등 여러 사람이 가서 사실대로 진술하는 상황인데, 내 느낌상 실체가 드러났는데 또 그렇게 하라고 해서 ‘사태파악을 잘 못하는 것인가’ 생각했다”면서 “마지막 검찰청에 가기 몇일 전엔 전화를 아예 안 받았더니 보좌관을 시켜서 우리 직원에게 메모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부회장은 양 재단 의혹이 제기된 이후 폰을 교체한 배경에 대해 안 전 수석이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야 한다’고 두 번 전화를 걸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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