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그닥 훅’ 등장한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대한민국 금수저의 대표로 떠올랐다. ‘돈도 실력’이라며 고등학교부터 대학 입학까지 오직 자신의 실력이 아닌 부모의 배경을 힘입었다. 밤새 아르바이트와 스펙 쌓기에 몰두해도 달성 불가능한 꿈을, 누군가는 ‘달그닥 훅’하며 쉽게 달성할 수 있었다. 이화여대 내에서 조직적인 작업이 가해졌음에도, 이를 감시했어야 할 정부는 오히려 최순실과 관련 교수들에게 연구 과제 등의 특혜를 제공한 정황마저 나오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과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나 교육계에서 벌어진 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병욱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때부터 지금까지도 꾸준히 이화여대의 조직적인 정유라 특혜 증거를 공개하며 '정유라 저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김병욱 의원은 18일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공개했다. 김경숙 전 이화여대 신산업융합대학 학장이 2015년 9월 최순실씨를 만난 바 있는데, 같은 달 열린 체육과학부 학부교수회의에서 체육과학부 수시전형 실기우수자 학사관리 내규안이 마련됐다.

당시 마련된 내규에는 수시전형 실기우수자의 경우 최종성적을 절대평가로 하되 학점을 최소 B학점 이상 부여하며, 입학 시 C급 이상(하계 동계 전국 체육대회, 협회장기대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급 대회 3위 이상)인 대회 실적만 있어도 장학금을 지급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는 현재 재학 중인 실기우수자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단서가 붙어, 2015학년도 입학한 정유라에게도 적용됐다.

김병욱 의원이 지난해 교문위 국정감사 당시 공개한 정유라가 제출한 과제물에는 ‘달그락 훅’ 등 다수의 비속어와 비문이 섞인 문구들이 포함돼있는 것이 확인된 바 있다. 또한 김병욱 의원은 이화여대 류철균 교수가 시험도 응시하지 않은 정유라의 시험지를 대신 작성해줬다며 정유라의 답안지를 공개했다.

김병욱 의원은 이화여대가 입시 특혜를 넘어 학사과정에서도 조직적으로 정유라를 ‘관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대학 내 갑을관계가 악용됐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신분이 불안정한 이화여대 내 시간강사와 조교수 등이 인사를 빌미로 조직적으로 정유라의 학사를 관리하는데 동원될 수 있었던 이유다.

김 의원은 “이원준 전 학부장의 경우 정교수 승진을 앞두고 있었는데 김경숙 전 학장으로부터 정유라 학생의 학점을 관리해달라는 압력을 받은 것이다. 또한 이원준 학부장은 두 명의 시간강사에게 정유라 학생의 학점을 관리하라는 압력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대한민국의 조교가 정유라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어서 그렇게 했겠나. 최순실과 정유라가 총장실을 들른 당일 학장과 학부장까지 다 만나고 다녔다. 학교 내 조직적인 갑을관계를 활용해 약점을 쥐고 부당한 지시와 압력을 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김경숙 전 학장 등은) 학점 특혜 의혹에 대해 교수 개인의 권한이라고 해명한다. 이렇게 비교육적으로 정유라에게 학점을 준 것이 권한이라고 말하는 뻔뻔스러운 모습이 현재 한국 교육의 현실 아니냐”고 비판했다.

김병욱 의원은 “처음에 정유라 레포트의 비속어나 비문 등을 보고 솔직히 이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싶었다. 나는 84학번인데, B학점 이상만 받아도 취직이 잘되는 시대였다. 지금은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다. 밤새 공부하고 학점 따서 경쟁해야 한다. 누가 봐도 (지금 시대의) 대학생이라고 할 수 없는 정유라의 레포트를 보니 젊은 세대는 울분을 토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욱 의원은 김경숙 전 학장과 최경희 전 총장에 대해 권력의 비호를 받아 정유라의 특혜를 준 ‘몸통’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들이 권력으로부터 어떤 혜택을 챙겼는지를 밝히는 것이 향후 국정농단 사태에서 밝혀져야 할 의혹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김 의원은 “최경희 총장은 청와대 근무 경력도 있어서 그런지 권력을 아는 것 같았다. 김경숙 전 학장의 남편은 최순실·정유라를 독일에서 지원한 데이비드 윤과 지인 사이라는 의혹도 있다. (이 둘에 대한) 엄청난 특혜가 있었거나 강한 압박이 있었을 것이다. 큰 약점이 없는 이상 강압은 없었을 것 같고, 대신 반대급부로 어떤 혜택을 받았을지 계좌 추적 등을 통해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김 의원은 김경숙 전 학장을 만난 당시 에피소드도 밝혔다. 김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 진행 도중 이화여대에 현장 방문 한 적이 있다. 야당의원들과 김경숙 전 학장, 최경희 전 총장, 남궁곤 입학처장 등을 만난 뒤 국회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는데, 김 전 학장이 갑자기 버스에 뒤따라타더니 의원들과 버스 안에서 일일이 악수하고 다니며 ‘별거 없죠?’라고 묻더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수더분하고 소탈해보이는 외모와 달리 목표를 정하면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집념과 주도면밀함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최순실과 류철균 교수, 김경숙 전 학장과 남궁곤 전 입학처장 등 관계자들은 줄줄이 구속됐다. 최경희 전 총장도 18일 특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과연 이들이 구속되고 법에 따라 처벌받게 되면 국정농단은 해결될까. 김병욱 의원은 “최순실은 돈과 권력으로 교육 현장에서조차 모든걸 좌우한 상징적인 존재”라고 설명했다. 정유라 사건은 한국사회가 돈이 없이도 능력이 있으면 꿈을 이룰 수 있는 공간으로 남을 수 있을지를 가늠할 하나의 상징인 셈이다.

이화여대 이외에도 일부 사립대학들은 법과 제도를 악용하고 인맥을 동원해 편법으로 학교를 운영하고도 버젓이 ‘교육의 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제2, 제3의 최순실이 또 다른 학교에서 농단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얼마든지 조성돼 있는 셈이다.

김 의원은 “영남대 이사장이기도 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 사학법 개정을 온 몸으로 막았다. 본인이 사학재단 이사장을 맡기도 했고 사학재단 이사장들이 대부분 지역 유지들이라 영향력이 많다. 그렇기에 이들을 어떻게든 보호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김 의원은 “사학이 우리나라 교육 발전에 기여해온 측면은 분명 있으나, 사학의 비리가 끊임없이 발생한 것도 사실”이라며 “사학비리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사학재단의 지배구조 변화와 교육청 위탁 채용 등의 시스템, 투명한 회계 공개, 내부 제보자를 보호할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욱 의원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정책 특보를 맡은 바 있다. 정치권 내 제3지대에 머무르고 있는 손학규 전 대표는 대표적인 개헌론자로 꼽히고 있다. 김병욱 의원 역시 “대선 전 개헌은 어렵더라도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력을 막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병욱 의원은 현재 민주당 내 ‘경제민주화와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의원 모임’ 소속이다.

김 의원은 다만 해당 모임에 대해 “정치 결사체 수준에서 활동하는 모임이 아니라 촛불의 뜻을 받아 경제민주화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해 국민 편에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관심있는 의원끼리 모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병욱 의원은 또 다른 최순실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통령 산하 기구인 감사원을 국회 산하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대통령 한 사람에게 모든 행정부의 권한이 집중돼있고, 이를 감시해야 할 감사원 조차 대통령 산하 기구로 있는 상황에서는 공무원들이 양심에 따라 정권 차원에서 내려오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된 것 보다 국회의원 300명에게 권한이 분산돼있는 것이 훨씬 국민에게 유리하다. 행정부를 감시하는 기구로서 입법부에 힘을 실을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행정부가 스스로 자정해 걸러낼 수 있는 기능을 갖추려면 대통령 중심 국가 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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