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언론은 삼성의 경영위기와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 등을 언급하며 이 부회장 살리기에 나섰다. 2008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특검 당시와 비슷한 모양새다. 하지만 ‘경영 공백에 따른 국민 경제위기’는 실체가 불분명하다.

아시아경제는 2007년 12월3일 “삼성 뭇매 때리면 누가 이익보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이 키워낸 세계적인 기업 삼성그룹이 비자금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고립무원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시아경제는 2008년 3월10일 “삼성특검 연장…경제발목잡기 말아야”라는 제목의 기사에서도 “특검수사가 연장 되면서 그동안 우려됐던 민간부분의 위기가 가시화되고 있다”며 △공채 연기 △협력업체 위기 △협회 운영비가 끊긴 한국야구위원회 등을 사례로 들었다.

머니투데이는 2008년 3월20일 “특검의 명예냐, 한국경제의 미래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특검의 칼날이 한국 경제의 동맥을 향해있다. 동맥을 잘못 건드리면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게 된다”고 보도했다. 삼성이 한국의 동맥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 2008년 3월10일 아시아경제 기사
결국 특검은 ‘삼성 봐주기’로 끝났다. 당시 특검은 이 회장의 4조5000억원대 차명재산 등을 찾았지만 떡값의 실체는 밝히지 못했다. 나아가 이 회장과 핵심 임원 10명 모두 불구속 기소했다. ‘봐주기 특검’ ‘떡검’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조준웅 특별검사는 “피의자들은 대기업 그룹 회장 등 중추적 핵심 임원들”이라며 “신병을 구속하면 기업 경영에 엄청난 공백과 차질을 빚어 경제에 부정적 파장이 매우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삼성이 조 특검의 아들을 중국법인 경력직 과장으로 특채한 사실이 드러났다.

8년 전과 지금 언론의 논리는 차이가 없다. 총수가 없으니 경영에 공백이 생길테고 삼성그룹은 한국의 대표적 기업이니 한국경제에 영향을 준다는 간단한 도식이다. 하지만 어느 언론도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 삼성 관계자 혹은 재계 인사들의 발언이 기사의 근거로 활용됐을 뿐이다.

나아가 이런 주장은 실제 사례와 연구 결과 모두에서 반박 가능하다. SK과 CJ의 경우 총수에 대한 사법처리가 이뤄졌지만 한국 경제에 미친 파장은 체감하기 어려웠다. 물론 SK와 CJ의 경우 삼성보다 규모가 작아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사진=연합뉴스.
연구결과는 어떨까. 전성인 홍익대학교 교수의 실증검증 연구에 따르면 2008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와 삼성전자의 매출·이익률 사이에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었다.

2007년 9월30일부터 2010년 3월31일까지 삼성전자의 매출액 증가율과 매출액 영업이익률을 보면 그래프 상으로는 이 회장의 사법처리가 진행된 기간 동안 삼성전자의 재무적 성과가 하락했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변수를 통제한 상태에서는 값이 달라진다.

이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기간은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촉발된 국제 금융위기가 진행되던 시기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재무적 성과 하락은 이 때문에 발생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요인을 통제한 다음, 이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가 삼성전자의 전형적 재무성과에 악영향을 끼쳤는지 봐야한다.

전 교수는 △김용철 변호사의 문제제기부터 이 회장 사면까지 △조준중 특검 출범부터 이 회장 불구속 기소까지 △이 회장의 기소부터 배임죄 선고 및 집행유예까지 △이 회장 배임죄 선고부터 단독 특별사면까지 4시기를 분석한 결과 통계적으로 무의미한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특이할 점은 이 회장이 특별사면 될 당시 이윤이 대폭 감소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손익계산서 분석에 따르면 당시 두 가지 이유로 대규모 비용 증가가 발생했다. 외환손실과 광고선전비의 급증이다. 삼성전자의 2007년 광고선전비는 약1조1000억원이었으나 2008년 광고선전비는 2조1000억원에 이른다.

이를 두고 참여연대는 “광고·마케팅비 급증이 과연 삼성의 언론플레이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인가. 이제 10년 전 레퍼토리로 사법정의를 흐리는 재벌의 언론플레이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여전히 언론은 10년 전 레퍼토리를 반복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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