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이 최순실씨 측이 증거능력을 부인하고 있는 문제의 '태블릿 PC'에 대해 최씨 소유임을 드러내는 진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18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정 비서관 공무상비밀누설 사건 재판에서 "정호성은 태블릿에 저장된 문건은 자신이 최순실에게 보낸 문건이 맞고 최순실 외의 사람에게 보내준 적이 없는 문건이라고 진술한 점이 명확하다"고 밝혔다.

▲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최순실 등 사건의 제1회 공판기일에서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 비서관 피고인으로 법정에 출석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이어 검찰은 "최순실이 독일에 체류 중이었던 2012년 7월, 2013년 7월에 태블릿이 독일에서 사용됐다는 것이 확인됐다. 이외 (최씨가 제주도 체류 중일 때) 제주도 사용도 확인됐다"면서 "태블릿에 저장된 최씨 사진, 조카 및 조카 딸의 사진도 태블릿 PC 자체로 촬영했다는 사실을 디지털포렌식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고 지적했다.

태블릿 PC 실사용자로 추측되는 최순실씨는 해당 기기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며 증거능력 여부를 다투기 위해 검증·감정신청까지 한 상황이다. 태블릿PC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으면 그와 관련된 증거, 즉 PC에 저장된 각종 청와대 유출 문건 등의 증거능력도 부인된다. 최씨의 국정농단 주요 혐의 중 하나를 지울 수 있는 것이다.

함께 공범으로 기소된 정 전 비서관은 태블릿 PC에 대해 비일관적인 대응을 보이고 있다. 18일 정 전 비서관의 법률대리인 강갑진 변호사(법무법인 중부로)는 재판부에 제출된 태블릿 PC 증거 검증·감정 신청 및 JTBC 기자 증인 신청에 대해 "그부분은 검토하고 다음 공판 기일까지 철회할 것인지 아닌지 등 의견 제시하겠다"며 검찰이 제출한 728개 증거에 모두 동의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강 변호사가 밝힌 '검토' 입장은 지난해 12월28일 직전에 열렸던 제2회 공판준비기일에서 보였던 입장과 다르다. 당시 정 전 비서관 변호인으로 출석한 차기환 변호사는 "'JTBC 태블릿 입수경위 절차가 적법한 것이냐', '태블릿 파일이 오염된 적이 없냐' 하는 것은 정호성과 직접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감정신청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재판부에 증거 감청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에도 정 전 비서관 측은 애초 밝혔던 자백 취지를 부인하면서 뜬금없이 태블릿 PC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급작스러운 입장선회라는 의혹을 자아낸 바 있다.

정 전 비서관은 자신의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에 대해 "공소사실에 대해서 인정하고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에 대해서도 인정한다"고 밝혔다.

▲ 최순실씨가 1월16일 오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5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그는 대통령의 공모 관계는 부인하며 대통령을 보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 전 비서관은 "일반적인 시각에서 공모라 하면, 뭔가 둘이 짜고 계획적으로 나쁜 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면서 "대통령이 최순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할 부분 있으면 반영한다는 말씀이 있었던 건 맞다. 그런데 건건이 지시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라도 더 체크해보려는 말씀해서 하신 거고, 나 역시 대통령께서 일하시는 데 조금이라도 잘 보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 뿐"이라고 재판부에 말했다.

이어 그는 "나와 대통령이 공모했다고 하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아프다"고 밝혔다.

정 전 비서관은 2013년 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대통령과 공모해 △정부 및 공공기관장 인선안 △대통령비서실 업무보고 △국무회의 및 수석비서관회의 말씀자료 △외국 정상과의 통화자료 △해외순방일정표 등 청와대 문건 180여 종을 이메일과 인편 등으로 최순실에게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 중 47건에 공무상기밀누설죄가 적용됐다.

검찰은 "정호성은 감사원장·국정원장 등 인선 문건을 '최순실의 의견을 들어보라'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최순실에 전달했고 나머지 문건도 대통령 뜻에 따라 보냈다고 진술했다"면서 '지시가 없더라도 대통령의 포괄적인 지시가 아니냐'는 검사 질문에 "정호성이 '그렇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누설된 문건 외에 △정호성 피의자 신문조서 총 13회 분 △최순실 피의자 신문 조서 일부 △서승환 전 국토부 장관 및 국토부 관계자 참고인 진술서 △조인근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 및 윤전추 행정관 진술서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서승환 전 국토부 장관은 2013년 여름 재직 당시 대통령 비서실을 통해 수도권 일대 승마장 부지를 찾아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관련 국토부 공무원들은 지시사항을 이행해 작서한 문건을 자신들이 작성했으며 해당 문건은 유출이 불가능한 보안문서라는 취지로 검찰에 진술했다.

검찰은 윤전추 행정관이 '대통령 해외 순방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최순실이 대통령의 해외순방 일정표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검찰이 정 전 비서관 주거지에서 압수한 휴대전화 녹음파일 29건, 최순실과 정 전 비서관 간 통화내역 등도 증거로 제출됐다.

녹음파일에는 박 대통령이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대국민 담화 내용과 수석비서관 회의 내용 등에 대해 최씨 의견을 구했던 정황이 담겨 있다. △대통령 취임사 △4대 국정 기조 선정 △대선 후보 TV 토론 △후보 지명 수락 연설 등 최씨가 대통령 취임 전부터 국정운영 등에 개입한 정황도 포함돼 있다.

정 전 비서관이 2012년 11월 부터 1여 년간 최씨에게 문건 전송 후 관련 보고 문자를 주고 받은 횟수는 237회다. 2013년 2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2년 가량 동안 정 전 비서관과 최씨 간에 오고 간 통화내역은 2092회에 이른다. 문자는 1197여 회, 전화는 895회로 집계됐다.

정 전 비서관이 유출한 정부 고위직 인사안으로는 초대 정부 17부3처17청 인선안, 국정원 2차장 및 기조실장 인선안 등 13건이 있다. 유출된 대통령 말씀자료로는 '11차 국무회의 비공개 부처 지시사항', '공공기관장 인사 관련 지시 자료', '한반도 통일에 대한 구상 말씀자료' 등이 포함됐다.

최씨는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한미정상회담 자료, 미 국무장관 접견 자료, 일본 총리 및 중국 주석과 박 대통령 간의 전화통화 자료 등도 받아 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 최씨는 정 전 비서관을 통해 대통령 주중 일정 계획, 일일 보고 사항, 현장 방문 사항 등 자료를 받았고 서유럽·중동국가·북미·이탈리아·멕시코 등 각종 해외 순방 일정표도 전달받았다.

공동으로 기소된 최순실 및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다르게 정 전 비서관은 자신의 피의자 신문 조서를 모두 증거로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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