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지원 배제 명단(일명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를 전면 부인하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해 긴급체포가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과 김기춘 전비서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 및 이행 주도와 관련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입건돼, 17일 현재 특검 소환 조사에 임하고 있다.

조 장관과 김 전 비서실장은 이날 각각 오전 9시15분, 9시45분 경에 특검 사무실에 출석했다.

▲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민중의소리

특검이 이미 지난 수사과정에서 두 피의자의 증거인멸 정황을 파악한 사실에 비춰, 이들에 대한 긴급체포권 발동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긴급체포 요건인 △범죄의 중대성 △체포의 필요성 △체포의 긴급성 등이 모두 충족된다는 점에서다.

조 전 장관의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다. 형법 제123조는 직권남용 죄에 대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조 전 장관의 혐의는 범죄의 중대성 요건을 만족한다. 형사소송법은 "피의자가 사형, 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경우"를 중대성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또한 동일한 혐의로 긴급체포권이 발동됐다.

지난달 12월31일 류철균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는 업무방해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업무방해죄는 직권남용죄와 법정형이 똑같다.

특검은 문 전 장관 및 류 교수의 진술태도 등을 근거로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봤다. 형사소송법은 범죄가 중대한 상황에서 피의자의 증거인멸 혹은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 그를 긴급체포를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체포의 필요성 및 긴급성 요건이 판단되는 지점이다.

특검은 문 전 장관이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 찬성 지시 의혹을 전면 부인하면서,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물증 및 주요 사건 관계자들과 배치되는 진술을 함에 따라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 문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28일 오전 긴급체포됐다.

류 교수에 대한 긴급 체포와 관련,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31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류 교수가 현직 교수인 점과 진술 태도 등에 비춰 증거 인멸을 할 위험이 있어서"라고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12월30일 참고인으로 소환돼 오후 7시부터 특검 조사를 받던 류 교수는 31일 새벽 2시경 전격 긴급체포됐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으로 소환되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조 장관의 경우는 체포의 필요성과 긴급성이 더욱 요구된다.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 이행을 주도한 정부부처인 문체부의 현직 장관이다. 그는 지난 8일까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부인해왔다. 그는 9일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명단 존재는 인정했지만 작성 경위에 대해선 현재까지 모른다고 답했다.

조 장관은 지난해 9월 취임 직후 자신의 집무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도 파악됐다.

혐의 입증은 언론에 보도된 사실관계만 따져봐도 어렵지 않다. 노컷뉴스 17일 보도에 따르면 박영수 특검팀은 압수한 문체부 직원 컴퓨터에서 조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직접 개입한 증거를 발견했다. 특검팀은 이와 관련된 문체부 관계자들의 진술도 확보했다.

블랙리스트 작성 '몸통'으로 지목되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마찬가지다.

특검은 김 전 비서실장의 증거인멸 정황을 이미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컷뉴스는 17일 특검팀이 김 전 실장 자택 CCTV 기록에서 김 전 실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료가 든 박스를 외부로 나르게 하는 장면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26일 김 전 실장 자택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영상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압수된 김 전 실장의 휴대전화엔 연락처 등 저장된 내용이 전혀 없었다.

김 전 비서실장 또한 블랙리스트의 존재, 작성 경위,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등의 일관된 진술 등을 전면 부인해왔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 업무수첩에는 김 전 비서실장이 영화계 '좌파성향' 인사들을 파악하라거나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영화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에 압박을 넣은 지시가 발견됐다. 김 전 비서실장은 해당 업무수첩에 대해 '작성자의 주관적 생각 가미됐다'며 선을 그어왔다.

김 전 비서실장의 혐의도 범죄 중대성이 이미 확인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다. 특검은 조 장관과 김 전 비서실장의 진술태도에 따라 17일 긴급체포권을 발동할 수 있다. 

▲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미술인 등 예술인들이 만든 조윤선 장관과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모형이 광화문광장에 전시돼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truth710@

이와 관련해 김상은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법률팀 변호사는 "김기춘의 경우 이미 증거를 인멸한 전력이 있고, 불구속상태에서 관련자들의 진술을 위조할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이 요건에도 해당한다"며 "본 사건과 관련해서 증거인멸의 전력이 있는 것은 유력한 긴급체포사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 비서실장 긴급체포가 왜 고려되지 않는가'란 질문에 이규철 특검 대변인은 17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증거인멸 정황은 있지만 긴급체포요건이라는 것은 증거인멸이 전에 있던 정황하고는 직접적 상관이 없다"며 "조사받는 상황의(상황 즈음에서의) 증거인멸과 관련돼 있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증거인멸 정황을 특검의 실수로 늦게야 포착했다는 것이 긴급체포의 필요성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그리고 류철균의 경우 업무방해 혐의로 긴급체포됐는데, 법정형이 5년 이하로 동일하다"며 " 특검이 문형표나 류철균을 긴급체포한 것과 비교해서 형평성도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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