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의 뒤꽁무니만 쫓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검증 대신 서민행보, 광폭행보 등 ‘반기문 띄우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반 전 총장의 행보에서 부적절한 모습은 감추고, 화면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증을 빠뜨렸던 5년 전 모습 그대로다.

‘반기문 파파라치’를 자처하는 방송 보도의 단면은 반 전 총장이 귀국했던 12일자 보도다.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 것은 공영방송 KBS였다. KBS ‘뉴스9’은 이날 톱뉴스부터 내리 6꼭지를 할애해 11분16초 동안 관련 소식을 전했다. 

반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소식은 7분32초에 불과했다. 이날 SBS ‘8뉴스’, MBC ‘뉴스데스크’, JTBC ‘뉴스룸’은 각각 3꼭지에 불과했다. KBS는 “보통의 여행객처럼”, “생수를 직접 사서”, “승차권을 직접 발권” 등의 표현을 통해 반 전 총장을 소탈한 인물로 부각하려는 데 급급했다는 평가다.

▲ KBS 뉴스9 12일자 톱뉴스 리포트. 사진=KBS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13일 성명을 내고 “KBS ‘뉴스9’은 반기문 띄우기 그 자체였다”며 “터무니없는 물량공세도 문제지만 리포트 문구들을 보면 미화와 홍보가 곳곳에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날 KBS·MBC·TV조선·채널A·MBN 메인뉴스는 ‘반기문 귀국’을 톱뉴스로 내보냈다. SBS와 JTBC만이 국정농단 사태의 피의자로 소환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소식을 첫 번째 보도로 배치했다. MBN은 반 전 총장 보도가 무려 10건으로 7개사 가운데 가장 보도량이 많았다.

또 다른 문제는 검증의 실종이다. 특히 공영방송에선 반 전 총장에 대한 검증 보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반기문 친서민 행보… 청년문제에 관심”(KBS ‘뉴스9’ 13일자), “고향 찾은 반기문… ‘정권교체로는 부족’”(KBS ‘뉴스9’ 14일자), “대권 행보 개시… 참배하고 민생 행보”(MBC ‘뉴스데스크’ 13일자) 등의 ‘행보 리포트’가 다수라는 것이다. 

이호찬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는 “(뉴스가) 반기문의 한 마디 한 마디, 그의 하루하루 행보를 단순히 전달하는 데만 충실하다”며 “반 전 총장이 누구와 손을 잡을지 이후 대선국면이 어떻게 될지 전망만 할 뿐 반 전 총장이 대선 주자로서의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검증 작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14일 오후 충북 충주체육관에서 열린 충주시민 귀국 환영대회에 참석한 뒤 차량에 오르기 전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특정 지역 언론의 경우 노골적으로 반 전 총장을 띄우고 있다. 충청신문은 17일자 사설을 통해 “반 전 총장은 광폭행보로 국민화합의 적임자는 바로 나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다”며 “‘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말을 놓고 일부에서는 정치적 지향이 뚜렷하지 않다고 폄하하지만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겠다는 뜻으로 보면 헐뜯을 일이 결코 아니다. 귀국 일성으로 내놓은 ‘대통합’ ‘대타협’과 어울리는 행보”라고 추켜세웠다.

충청일보의 경우 “검증이라는 이름을 빌려 무차별적인 의혹을 제기하는 행태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며 언론의 검증에 불편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신문은 사설을 통해 “이제 막 출발을 준비하는 반 전 총장에게는 아직 정치세력이 조직화되지 않았고 언론계에 호소할 확실한 루트가 마련돼 있지 않아 그의 입장을 옹호해주는 곳이 거의 없다”며 “이런 절대적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 정치권의 의혹 제기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현명하게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 충청일보 17일자 사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로 조기 대선이 점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대선 후보에 대한 언론의 면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여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로서 반기문 보도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검증 보도 대신 과거 박근혜 대통령 동정을 보도하는 수준으로 따라다니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공영방송은 물론 MBN 등의 종편 역시 ‘반 파파라치’ 보도를 하고 있는데, 노골적으로 선거운동 효과를 노린 것으로 판단한다”고 지적했다. 

김 처장은 “여권의 유력한 대선후보이니 일단 띄워놓고 보자는 식의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며 “대선 준비 기간이 짧은 만큼 보다 엄밀한 검증 보도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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