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 적용될 구체적인 증거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정호성·안봉근·이재만, 재벌총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의 검찰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했다. 이승철, 장충기, 차은택 등 주요인물의 검찰 진술조서도 증거로 채택했다.

검찰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채택할 경우 헌재 재판정에 증인이 출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탄핵심판이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있지만 박 대통령 측에서 주장한 전문법칙이 사실상 적용돼 누구에게 유리한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전문법칙이란 제3자의 증언이나 진술을 기재한 서류 등이 일정한 조건을 갖추지 않으면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 형사재판의 원칙이다. 탄핵심판은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돼있다. 전문법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박 대통령 측의 동의가 없는 진술은 증거로 채택할 수 없게 된다.

형사소송법탄핵심판 주심 강일원 재판관은 이날 “현재 동의되지 않은 조서인 진술조서와 피의자 신문조서는 원칙적으로 증거로 채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 측은 최순실씨와 안 전 수석,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의 피의자 신문 조서, 안 전 수석의 수첩 등은 증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강 재판관은 “다만 조서들 중 절차 적법성이 담보되는 조서는 증거로 채택한다”며 “진술과정에서 변호인이 입회했고, 변호인이 진술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확인한 조서는 (증거로) 채택했다”고 말했다.

변호인이 이의를 제기한 최씨 진술조서, 태블릿PC 등은 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 논란이 되고 있는 안 전 수석의 수첩에 대해 강 재판관은 “원본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원칙적으로는 채택되지 않지만 사본 중 신문과정에서 (본인 것으로) 확인된 부분에 한해 증거로 채택된다”고 말했다.

▲ 헌법재판소. 사진=포커스뉴스

국회 탄핵 소추위원단 측은 오는 19일까지 증거채택 여부를 확인해 증인 철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권성동 소추위원장은 “(헌재 증거채택에 대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변호사가 참여한 진술조서, (정호성 진술) 동영상 등만 채택해 폭이 좁아 불만”이라면서 “다만 다행히 많은 조서가 변호인들 참여 하에 이루어져 철회할 증인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해 탄핵심판 절치가 빨리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진술조서가 채택되지 않은 것에 대해 권 위원장은 “최씨 조서에는 탄핵사유를 입증할 만한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며 “채택된 조서에 탄핵사유 관련 내용이 거의 다 들어가 있어 입증에 큰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변호인 입회하에 조서를 받은 사람들은 보통 자신을 적극적으로 방어할 위치에 있는 사람, 즉 박 대통령 측에 유리한 증인인 경우가 많다. 이날 고영태, 박헌영 등의 진술조서는 변호인 없이 작성됐기 때문에 증거채택이 되지 않았는데 이들은 국회 탄핵 소추위 측에 유리한 증인이다. 이들은 헌재에 출석해 양측 질문에 답해야하는 부담을 갖게 된다.

박 대통령 측 변호인 이중환 변호사는 “헌재는 전문법칙에 대해 원칙적으로 적용하고 예외적으로 변호인 참여한 것은 인정해 헌재 재판과 형사소송법의 절충을 찾은 것으로 본다”며 “전체적인 형사절차를 인정한 것은 만족한다”고 말했다.

다만 안종범 수첩 사본 일부가 증거로 채택된 것에 대해서는 “불법 수집된 증거로 이루어진 조서 역시 불법이라는 게 대법원의 기본 판례”라며 “그부분은 (증거채택이) 부적절하다고 생각이 들어 이의신청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오는 19일에 김상률, 정호성, 23일에는 김종, 차은택, 이승철, 25일에는 유진룡, 고영태, 류상영 등이 출석해 변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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