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들은 왜 싸울까. 스크럼을 짜서 낙하산 사장의 출근을 막고 피켓을 만들어 목소리를 높이는 그들은 무엇을 위해, 왜 싸우는 것일까. 패배만 맛볼 거면서, 어차피 언론은 망가졌는데 그들은 무엇 때문에 저러는 걸까.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을 보며 스스로에게 던져본 질문이다. 권력과 싸우면 싸울수록 언론의 자유가 추락하는 듯한, 현실에 대한 냉소가 짙게 깔린 것이리라.

영화는 2008년 YTN 사태로 시간을 되돌려 놓는다. 이명박 대선 후보 캠프에서 특보를 맡았던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내정되자 YTN 언론인들은 주주총회를 막아섰다. 

▲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스틸컷.
날치기로 사장 선임이 통과된 뒤엔 사장 출근 저지 투쟁으로 맞섰다. 특보 출신을 사장으로 앉힐 수 없다는 것, 공정방송이 결코 담보될 수 없다는 이들의 절규는 화면 곳곳에 담겨 있다.

그해 10월 사측은 해고 등의 중징계로 보복했다. 사측이 업무방해로 YTN노조 조합원을 고소했고 노종면 기자의 경우 2009년 3월 노조 총파업을 앞두고 경찰소환 불응을 이유로 구속됐다.

특보 출신 사장을 제치고 들어온 후임 배석규 사장은 1심 판결(해고 무효)에 따르겠다는 노사간 약속을 뒤집었다. “3명에 대한 해고는 무효, 나머지 3명의 해고는 유효하다.” 해괴한 논리로 무장한 항소심과 대법원의 판결은 YTN 해직언론인 노종면·조승호·현덕수 발목에 채워진 족쇄가 됐다.

“사실 해고까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할 정도로 미련하리만치 회사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던, 순수하리만치 공정방송에 신념을 가졌던 이들에게 ‘해직3000일’이라는 시간은 가혹한 고문에 가까웠다.

영화에서 더욱 처절했던 건 남겨진 자들이었다. 임장혁 기자(전 YTN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장)는 “대화 좀 합시다”라며 배 사장의 차 앞에 드러누웠고 박진수 기자(현 YTN노조위원장)는 누구보다 앞장서 피켓과 마이크를 쥐고 핏대 높여 사측과 맞섰다. 

장면마다 등장하는 YTN 언론인들이 그러했다. 이들 얼굴에선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지만 그 흔적은 그들이 울면서도 웃으며, 싸우면서도 끌어안으며, 지난 9년간 처절하게 권력과 싸웠음을 보여주는 훈장이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 흔적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스틸컷.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해직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움’이라는 단어에서 찾았다. 낙하산 사장을 인정하면 공정 보도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부끄러움. 수년간 함께 싸운 동료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부끄러움. 출세만 바라고 권력에 아첨한 회사(선배들)에 대한 부끄러움. 

부끄러움에서 시작된 투쟁은 언론인들이 YTN 역사상 가보지 않았던 ‘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동력이었다. 1970년대 유신독재에 맞서다 해직됐던 동아일보 기자들이 그랬듯, 침묵하는 것에 언론인이 느끼는 부끄러움은 기자가 기자이기 위한, 기자의 소명이자 양심이다.

기자가 부끄러운 시대다. 해직 언론인들이 그토록 싸웠지만 그때보다 더 부끄러워졌다. 언론은 세월호 참사를 거치며 ‘기레기’가 됐다. 최순실과 박근혜라는 괴물을 방치했다. 

부끄러운 시대 속에 살면서도 언론이 부끄러움을 몰랐던 탓이다. 아니, 부끄러우면서도 내면의 양심을 거부하고 권력에 순종했다는 말이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언론인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 남아있는 언론인들도 ‘부끄러움’ 정도는 안다고, 그래서 이들이 필요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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