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이다. 낙동강 자갈바닥에 주로 서식하는 기름장어가 말을 못해 그렇지 얼마나 울뚝밸 치밀겠는가. 삽질로 강을 망쳐놓더니 신문과 방송이 자신을 마냥 비아냥대고 있다. 딴은 이미 지구촌 기자들 앞에서 모욕당했다. “나는 한국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잘도 피해간다고 해서 기름장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뉴욕에서 ‘테플론 외교관’이라는 별명을 또 하나 얻었다. 여러분의 매서운 비판도 잘 피해나갈 자신이 있다.” 유엔사무총장 시절 반기문이 한 말이다.

자타가 공인한 ‘기름장어’는 날마다 ‘신기’를 보여준다. 탄핵당해 대통령직무가 정지된 박근혜에게 ‘귀국 보고’를 했다. “상황이 이렇게 돼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부디 잘 대처하시길 바란다”고 인사 했단다. ‘기름장어’다. 헌법재판소에서 어떻게 결론 나든 피해갈 수 있는 발언으로 생각했음직하다. 하지만 딱 장어 수준이다. 조금이라도 촛불민심에 공감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입장’을 밝히기 어려웠다면 침묵해야 옳았고, ‘국가 원수에 귀국인사’를 해야 ‘순리’라면 현재 대통령직무대행에게 해야 옳다.

▲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월12일 오후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에 도착해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비단 ‘처세’로 그치지 않는다. 사실상 대통령 출마를 공표한 그가 작심하고 던진 말을 보자.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공항 기자회견에서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묶어 다시 세계 일류 국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1945년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이 부르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떠올리게 하는 발언이다. 이승만이 당시 ‘하나’로 뭉치자는 말은 친일파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비켜가며 돈 많은 그들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기위한 전략이었다. 친일파와 청산파로 갈라지지 말고 뭉치자는 주장은 반민족행위를 저지른 자들에겐 ‘복음’이었다.

반기문은 또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우리 안보, 경제, 통상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북한 핵문제를 비롯해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국가들과 관계를 더욱더 공고히 해서 여기에 따른 대책을 우리가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묻고 싶다. 유엔사무총장 10년 동안 재직하며 ‘북미 핵문제’에 어떤 일을 했는가. 수많은 나라의 언론들이 평가했듯이 설령 미국 눈치만 살핀 총장이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진전이라도 있어야 옳지 않은가. 마치 대통령이 되면 주변 국가들을 움직여 ‘북핵’을 해결할 수 있을 듯이 목에 힘주는 기름장어를 떠올리면 실소가 나온다.

반기문은 귀국 직후 고향을 찾았다. 신문과 방송, 특히 충청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했듯이 “금의환향 반기문”은 그렇게 “충청대망론”을 “시동”했다. 충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충주시민 환영대회’에서 반기문은 유엔사무총장 10년을 발판으로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대선 판에서 한 자리 챙기려는 윤똑똑이들은 ‘충청 대망론’을 연일 불 지피고 있다.

충청도 출신 대통령을 소망하는 지역민들의 정서를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영남과 호남에서 대통령이 나왔으니 충청도에서도 대통령이 나오면 좋겠다고 얼마든지 생각할 수 있다.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월14일 오후 충북 충주체육관에서 열린 충주시민 귀국 환영대회에 참석한 뒤 차량에 오르기 전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민중언론을 주창해온 내가 지역, 그것도 감정의 문제를 거론하기는 민망스럽지만 쓴다. 나는 충청대망론이 언론에 나올 때마다 씁쓸하다. 그 말에 이어지는 사람들의 면면을 보라. ‘원조’는 김종필이다. 이어 이인제와 이회창이 부르댔다. 마침내 반기문이다. 고 노무현의 전폭지원으로 유엔사무총장이 되었고, 올 가을까지 박근혜에게 부닐었고, 촛불이 타오른 뒤 ‘국민에 대한 배신’을 들먹였고, 귀국해선 ‘잘 대처하시기 바란다’는 반기문의 기회주의는 충청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웅숭깊은 가슴과 얼마나 이어지는가. 묵묵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 해나가는 충청의 민중과 기름장어는 얼마나 상극인가. 만일 그가 유엔사무총장으로 미국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당당하게 일했다면, 그렇지 못했더라도 귀국해서 묵묵히 웅숭깊은 언행을 보여주었다면, 수많은 충청도의 청소년들에게 자부심과 꿈을 심어주었을 터다.

하지만 오늘 반기문은 얼마나 얄팍한가.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추할 것인가. 충주에서 태어난 나는 전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이 부끄럽다. 낙동강의 애먼 기름장어에겐 더없이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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