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문화계 지원 배제 명단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한 혐의로 박영수 특검에 소환됐다.

조 장관은 17일 오전 9시15분경, 김 전 실장은 오전 9시45분 경 30분 간격으로 특검 사무실에 도착해 취재진의 질문 세례를 받으며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 작성 및 주도와 관련 직권남용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소환됐다. 특검은 이들에 대한 소환 결정이 지난 16일 오전 전격적으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특검은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장관의 대질신문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 총괄 기획자로 지목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민중의소리

두 피의자는 취재진의 물음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조 장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관리에 전혀 관여한적이 없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오늘 특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진실이 특검 조사에서 밝혀지기를 기대한다"고 답한 뒤 함구했다. 취재진들은 '청문회에서 왜 블랙리스트 본 적 없다고 했나', ' 장관 취임 후 지원배제 과정에 영향 미친 적 없나', '김기춘 실장의 지시가 있었나' 등의 질문을 물었다.

조 장관이 출석한 후 30분 후 특검 사무실에 있는 빌딩 3층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김 전 비서실장은 "최순실 존재에 대해 누구에게 보고받았나", "아직도 최순실씨 존재를 모르나" 등 최씨에 대한 질문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으로 소환되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민중의소리

김 전 비서실장은 "본인 관련 의혹이 너무 많은데 증거인멸은 왜 하고 있는가", "정부지원배제 명단 아직도 모르나" 등의 질문에도 대꾸하지 않고 특검사무실 행 엘리베이터를 탔다.

한편 특검 사무실 입구가 있는 대치빌딩 3층 주차장 출입구 맞은 편엔 민중연합당 흙수저당, 한국청년연대 등 청년 단체 소속 20여 명이 '김기춘을 구속하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김 전 비서실장이 타고 온 승용차가 주차장 출입구에 정지하자 더욱 목소리를 높여 "김기춘을 구속하라"고 외쳤다. 주변 경비를 서던 경찰들이 이들이 승용차 근처에 가지 못하도록 막아섬에 따라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특검은 지난 12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제1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모두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지시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특검이 진짜 '몸통'만 남겨놓은채 그 이하 고위 공직자들을 구속한 것이다.

▲ 승용차에서 내린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뒤로 민중연합당 등에서 나온 청년 20여 명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블랙리스트 적용 지시는 '청와대 비서실→정무수석→교육문화수석실→문체부→문체부 산하 기관' 순으로 전달됐다.

특검은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장관이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진술, 증거 등을 파악하고 전격 소환 조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은 지난해 12월26일 CBS라디오 프로그램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이전에는 구두로, 수시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라고 하면서 모철민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나 김소영 (청와대 문화체육)비서관을 통해 문체부로 전달됐다”면서 “김소영 비서관이 A4 용지에 빼곡히 문화예술인 수백명의 이름을 적어 조현재 문체부 1차관에게 주면서 ‘가서 유진룡 장관에게 전달하고 그걸 문체부에서 적용하라’고 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유 장관은 “김 비서관은 조 차관이 블랙리스트 작성 출처를 묻자 ‘정무수석실에서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를 받아 적은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엔 정부 비판적인 문화계 및 영화계 인사들을 파악하라는 지시가 적혀 있다.

조윤선 장관은 2014년 6월부터 2015년 5월까지 대통령 비서실 정무수석을 역임했다.

2014년 7월 퇴임한 유 전 문체부 장관은 “퇴임 한 달전쯤 문제의 블랙리스트를 직접 봤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모철민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김소영 전 청와대문화체육비서관, 김희범 전 문체부 1차관 등도 특검 소환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김 전 차관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모 전 수석 및 김 전 비서관은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된 적이 있으나 수사 과정에서 이들 신분 또한 피의자로 바뀌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 혐의 외에도 무수한 직권남용 혐의 의혹을 사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 관련 단체들은 지난해 11월21일 서울중앙지검에 박근혜 대통령과 김 전 비서실장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김 전 비서실장이 김성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과 공모해 KBS 사장 인사권 행사에 관여해 KBS 이사회 이사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했다"며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 관련 보도와 관련해서도 “박 대통령과 김 전 실장 등이 공모해 KBS 방송편성에 부당하게 개입해 방송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 사장 부당 해임 압력 건도 고발장에 기재돼있다.

지난해 12월20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장경욱 변호사는 특정 변호사 단체를 사찰하고 무고한 간첩 혐의를 받은 피고인을 변호한 변호사에 부당징계를 시도했다는 이유로 김 전 비서실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죄 및 무고죄로 박영수 특검에 고발했다.

바로 다음날인 12월21일엔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및 진보당 의원 출식 5인이 김 전 실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박영수 특검에 고발했다. 이들은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이 헌재에 연내 선고를 지시하는 등 헌재 재판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 부당하게 개입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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