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월호 7시간에 대한 박근혜의 횡설수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참기 힘든 분노와 슬픔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과 슬픔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자로의 '세월X'가 만들어진 것도, 9시간에 가까운 그 동영상을 본 사람이 500만 명을 넘어섰다는 것도 그것을 보여 준다.

나도 세월X를 얼마 전에 겨우 다 봤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자로의 진정성이 느껴져서 뭉클했다. 자로 역시 첫 아이를 잃은 아픔을 가진 부모였고, 또 그 아이 기일이 4월15일이어서 세월호를 더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별이 된 아이들이 남긴 사진에서, 사고로 무참히 깨어져버린 ‘평온하고 행복한 순간’이라는 의미를 찾아낸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런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자로의 열정과 노력은 세월X에 담긴 방대한 정보와 자료, 치밀한 분석과 주장을 통해 놀라운 결과물로 나타났다. 세월X는 검찰의 기존 수사결과를 믿기 힘들다는 것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점을 지적해 왔지만) 더 분명하게 입증시켜 내고 있다.

사실 과도한 증축, 복원력 부족, 과적, 평형수 유출, 고박 불량, 조타 실수 등이 세월호 침몰을 낳았다는 검찰의 주장은 매우 그럴듯했다. 이것은 처음에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많은 진보좌파 진영이 주장한 내용과도 묘하게 일치한다. 나도 처음에 비슷한 주장을 했었다. 유병언과 청해진해운의 탐욕과 정부의 규제완화, 해경의 관료적 무능력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르면 진실은 이미 어느 정도 밝혀졌다는 말이 된다. ‘김영한 업무일지’에서 김기춘도 “세월호 참사 원인”을 “선장 선원의 배반적 유기행위·해경 출동구조 작전의 실패·유병언 일당 탐욕”이라고 정리했다. 또 이를 바탕으로 정부는 유병언과 청해진해운에 모든 걸 떠넘기고, 해경을 해체했고, 자신들은 빠져나가 버렸다.

그리고 이것을 의심하거나,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모두 ‘음모론’이라며 공격했다.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은 진보적 사회운동 안에서도 음모론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물론 너무 나간 주장을 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 점에서 자로가 검찰 수사 결과의 논거와 설득력을 무너뜨리는 부분은 의미가 있다. 그러면서 자로가 제기하는 것은 ‘외력’에 의한 침몰설이다. 또 누군가는 이것을 음모론이라 치부하며 기각해버리겠지만, 상당한 근거와 설득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일단 8시 49분(이 다큐의 길이이기도 하다)에 충격을 느끼고 들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이 존재한다. 게다가 이 커다란 배가 30초만에 40도나 급선회한 이유는 외력없이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자로는 사고 직후 레이다에 나타난 세월호 1/6 크기의 주황색 괴물체를 주목한다.

그동안 컨테이너로 알려져 있던 이 물체가 ‘외력’의 증거라는 것이다. 이 물체는 조류 방향과 다르게 조류보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다가 사라지는 데, 이것은 작은 컨테이너 몇 개일 수 없고 잠수함일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자로의 주장이다.

물론 자로는 이것이 정답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가설이고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어서 그동안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유력한 가설이었던 고의침몰설을 반박하는 데 다큐의 2/3를 할애한다.

나는 처음에 세월X가 <파파이스>과 김지영 감독을 반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는 얘기를 듣고 의아했었다. ‘자신의 가설을 정교하게 제시하면 돼지, 왜 굳이 김지영 감독을 공격하는 데 주력하지? 마찬가지로 진실을 파헤치려고 노력한 사람인데’하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세월X를 보면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그것은 김지영 감독의 가설에 큰 관심과 지지를 보냈던 사람으로서 자로에게는 필요한 과정이었다. 새로운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는 기존의 가설을 그만큼 철저히 벗어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목적지를 향해 힘겹게 나아가는 과정에서 한때 올라갔지만, 결국은 넘어서야 할 큰 산처럼.

그래서인지 자로는 거듭해서 자신이 김지영 감독의 노력과 열정을 높이 평가한다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같은 길을 걷는 동지라고, 애정어린 비판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이간질에 악용돼선 안 된다고 말이다. 이는 보통 같은 좌파 내에서도 생각이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고 협력하지 않으려는 풍토와 대조적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자로는 같은 편이라는 이유로 동의할 수 없는 잘못된 주장을 못 본척하고, 침묵할 수는 없었다고 말한다. 자신의 조직, 진영의 입장이면 의심않고 무조건 일단 옹호하는 일부의 풍투를 볼 때, 이 역시 적절하다.

김지영 감독의 가설이 상당부분 타당하다고 생각해 왔던 나도, 세월X의 날카로운 비판과 반박 근거들을 보면서 많이 생각이 바뀌고 돌아보게 됐다. 의심하고 허점과 모순을 살피기보다, 받아들이기에 급급하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세월X를 보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먼저 자로가 처음에 ‘나는 진실을 봤다’고 예고한 것은 좀 섣불렀던 거 같다. 아직은 하나의 가설이라는 점을 더 분명히 해야 될 것 같다. 이것도 앞으로 입증돼야 할 하나의 가설이므로, 내 가설은 ‘진실’이고 다른 가설들은 ‘음모론’이란 식으로 말한다면 불필요한 반발을 살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 각종 데이터가 모두 다 조작이라는 파파이스 주장의 허점과 모순을 잘 지적했지만, 반대로 이 데이터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것도 성급할 것이다. 조작, 은폐, 왜곡으로 4년을 지새운 정권이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긴 문제에서 과연 솔직하고 투명했을까.

무엇보다 <파파이스>의 기여를 좀 더 인정해 주었다면, 기존 가설 지지자들의 심정적 반발을 줄이며 토론을 더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었을 거 같다. 자로도 인정하듯이 김지영 감독은 대부분이 눈을 감고 등을 돌렸을 때 고군분투하며 외로이 진실을 파헤쳐 왔다.

이를 통해 많은 사실을 발굴하고 의혹을 제기해 왔다. 왜 그날 인천항에서 세월호만 유일하게 출항했는지, 왜 해경은 선원만 구했는지, 왜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10번 넘게 이어지며 탈출의지를 꺽다시피 했는지, 왜 경찰은 선장을 해경 간부의 집에 가서 재웠는지, 세월호 노트북에서 나온 국정원 점검사항은 무엇인지 등이 그것이다.

이런 앞선 작업은 분명 자로가 그것을 딛고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 발판이 됐을 것이고, 피해야할 오류가 무엇인지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자로는 ‘고의침몰설’의 문제점을 극복하며 ‘외부충격설’로 나아갔다.

나아가 자로의 주장과 김지영 감독의 주장이 서로의 부족함을 보완하며 양립할 수는 없는가의 문제가 있다. 실제 김지영 감독이 치밀한 조사를 통해 밝혀낸 부분에도 ‘충격’과 ‘충돌’에 대한 정보가 있다.

자살한 단원고 교감이 남긴 자필 진술서나, 특히 청해진해운 김영붕 상무의 메모에서 “배 앞부분 충격”이라는 기록을 찾아냈던 것이다. 또 사고 당시 진도VTS가 외국 선박과 영어로 교신한 내용에서도 “세월호가 지금 충돌상태(COLLISION)”라는 음성기록을 찾아냈다.

결국 김지영 감독도, 자로도 엄청난 노력을 통해서 의미있는 사실들을 찾아내 왔는데, 그것을 어떻게 배열·재구성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가설로 나아간 측면이 있다. 이것은 진실을 찾아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밟아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명백한 사실(팩트)에서 출발하는 게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러나 사실들을 모은다고 진실이 드러나진 않는다. 핵심적 사실을 잘 꿰어서 사건의 본질을 잡아내야 한다. 이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실, 분석들을 이어붙여 모자이크를 완성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진실과 가까운지는 오로지 현실의 검증을 통해 드러날 것이다.

자로, 김지영 감독과 세월호 진실을 위해 엄청난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어 온 모든 사람들이 바로 이 작업을 해 왔다. 그런데 이 작업은 계속 결정적 벽에 부딪혀 왔다. 정부가 관련 자료와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진실 규명을 가로막은 것이다.

당장 자로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선 정부가 레이더영상과 항적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해군은 정보 공개는커녕 자로를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하겠다고 나왔다. 따라서 세월X의 핵심 결론은 “강력한 세월호 특조위”의 재건일 수밖에 없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강력한 특조위만이 진실의 문을 열 수 있고, 자로 등이 찾아내 온 진실의 조각들은 그 속에서 진정으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참사에는 청와대와 국정원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은 사고 전 3년간 청해진해운과 12번 이상 모임을 가졌고, 사고당일과 이튿날까지 7차례나 통화를 했다. 해경은 선원들만 먼저 구한 후에는 멀찍이 떨어져 세월호 침몰을 지켜보기만 했다. 청와대는 7시간에 대해서 아직도 납득할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군, 국정원, 청와대라는 이 나라에서 가장 힘있고 비밀스러운 집단을 제한없이 수사하고 기소할 강력한 특조위가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가 더욱 더 힘주어서 서로의 손을 잡을 필요도 여기에 있다.

김영한 업무일지에서 김기춘은 “단원고 유가족”, “일반인 유가족”이라는 “유가족 분리 用語(용어) 사용”을 지시한다. 유가족조차 이간질하는 게 진실을 덮기 위한 저들의 핵심 무기였다. 서로 토론하고 비판하면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협력하는 것, 이것이 세월호 1000일을 지나는 우리 앞에 던져진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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