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화 아티스트 봉만대>에서는 노출장면을 찍어놓고, 내 영화에서는 안 된다는 말이냐'

16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씨네21, 한국여성민우회 주최) 긴급포럼에서 곽현화씨는 자신의 노출신을 동의없이 유료로 배포한 이수성 감독(‘전망 좋은 집’ 연출)이 재판 중 한 말이라고 이같이 소개했다. 

곽현화씨는 2012년 영화 ‘전망 좋은 집’을 촬영하며 상반신 노출장면을 찍었으나 감독과 합의하에 해당 장면을 편집했다. 하지만 2013년 이수성 감독은 곽현화씨의 동의 없이 ‘감독판’에서 노출장면을 유료로 배포했다. 이에 곽현화씨는 2014년 이 감독을 고소했다. 이에 감독이 내놓은 반응은 '왜 다른 곳에서는 노출하고, 내 영화에서는 안 되냐'였다.

곽현화씨가 ‘전망 좋은 집’ 이후 촬영한 ‘아티스트 봉만대’(감독 봉만대)에서 노출 장면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곽씨는 ‘전망 좋은 집’에서의 트라우마 때문에 ‘아티스트 봉만대’의 장면은 CG로 처리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만약 ‘아티스트 봉만대’에서 곽씨가 노출을 했다고 할지라도 이는 ‘전망 좋은 집’의 사례와는 별개로 다뤄져야하는 일이다. 곽현화씨 역시 “한번 노출신을 찍은 배우는 어느 장면이라도 모두 노출을 해야 된다는 논리냐”며 “이수성 감독의 경우 나의 동의 없이 노출신을 유료로 배포했고 이는 ‘아티스트 봉만대’의 경우와 다르다”고 비판했다.

곽씨의 재판이 보도된 이후 인터넷에는 '왜 스스로 노출 장면을 찍어놓고 이제와서 그러냐'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곽현화씨는 이런 반응에도 반박을 했다. 

"댓글 중에 ‘섹시한 이미지로 활동했고 섹시 화보도 찍었는데 노출 장면 하나 추가된게 뭐가 억울하다고 이러냐’는 댓글을 봤다.  나는 배우로서 영화 시나리오 하나하나를 선택하고 장면을 선택하고 임하는 건데 합의없는 노출을 해도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감독도 재판에서 비슷한 반응을 보였는데 '내가 이 사람에게 배우는 배우였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 16일 서울 마포구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열린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씨네21, 한국여성민우회 주최) 긴급포럼에서 곽현화씨는 이수성 감독을 비판하고 이를 용인하는 영화계 문화에 대한 변화를 촉구했다. 사진=정민경 기자
곽현화씨는 지난 2012년 10월 영화 '전망 좋은 집'(감독 이수성)에 출연해 상반신이 노출되는 장면을 찍었다. 당시 이수성 감독은 곽현화씨에게 "일단 촬영을 하고 편집 때 제외해달라고 하면 반드시 빼주겠다"고 구두로 계약을 했다. 영화 개봉 당시 해당 장면은 곽씨의 요구로 삭제됐다. 하지만 이후 IPTV 등을 통해 유료 배포된 '무삭제 노출판', ‘감독판’ 등에는 노출신이 포함됐다. 곽현화씨는 감독판 배포를 알지 못했고 이를 안 이후 감독을 고소했다.

지난 11일 재판부는 1심에서 감독은 계약서에 따라 영화에 대한 모든 지적재산권의 독점 권리자이기 때문에 감독에게 ‘혐의 없음’을 선고했다. 1심 판결문은 곽현화씨가 영화를 찍기 전 계약서에 동의한 내용을 강조했다. 

하지만 곽현화씨가 계약서에 동의한 이유는 계약서에 ‘노출신에 대해서는 합의하에 촬영한다’는 조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곽씨는 “합의하에 찍는다는 조항이 있었고 내가 합의를 하지 않으면 찍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라며 “당시에도 조항이 구체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법적 효력은 있을거라 믿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곽씨는 노출장면을 촬영하게 됐을까. 

“이수성 감독은 노출신을 찍는 며칠 전부터 나를 설득했다. 어쩌면 촬영 직전까지 노출장면을 알지 못하고 직전에야 알게 되는 다른 영화의 사례에 비하면 ‘세련’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노출신이 있으면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감독은 ‘일단 장면을 찍고, 원하지 않으면 편집을 하겠다’는 구두계약을 했다.”

▲ 영화 '전망 좋은 집'
곽씨는 감독의 구두약속을 믿고 촬영에 임했다. 곽씨는 배우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배우 스스로가 노출신을 찍고 싶지 않더라도 업계의 평판과 자신의 열정을 입증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출신을 찍게 된다는 것이다.

“감독이 노출신을 찍기 전 나를 설득하면서 ‘배우로서 자리매김하고 싶지 않냐’고 말했다. 당시 나는 첫 영화 촬영이었고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상반신 노출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지만 감독은 ‘나중에는 찍고 싶어도 못 찍는다, 이렇게 스태프들과 장비가 다 준비가 된 상황은 흔치 않다’는 식으로 말했다. 감독의 설득 이후 그 장면을 찍은 것이 지금도 후회되지만 내 탓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후 장면을 편집해달라고 했고 편집을 해주겠다는 감독과의 구두계약을 믿었다.”

해당 노출신은 2012년 영화 개봉 당시에 곽현화씨의 요구에 따라 편집됐다. 곽씨는 당시 해당 장면을 편집해달라는 말을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전달했다고 한다. 곽씨는 “해당 장면이 필요없는 것 같다고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야기했다”라며 “말하면서도 겁이 나서 울먹이면서 부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3년 11월부터 2014년 2월까지 인터넷 등으로 유통된 ‘감독판’, ‘무삭제판’에는 상반신 노출신이 포함됐다. 곽씨는 ‘감독판’이 배포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 영화가 무삭제판으로 배포됐다는 것을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됐다. 친구가 ‘이 장면 삭제했다면서 왜 나와?’라고 물어왔다. 너무 놀라서 바들바들 떨면서 영화를 다운받았다. 노출 장면을 보고 미칠 것 같았다. 감독에게 계속해서 전화를 했다. 겨우 연결된 감독은 나에게 ‘미안하다, 제작사가 시켰다’고 말했다.”

해당 전화내용을 녹취한 파일을 법정에 제출했지만 재판부는 감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곽씨는 해당 판결에 대해 아쉬움을 반복해서 표현했다.

“법과 현실이 너무 다른 것을 느꼈다. 재판소에서 영화계 내의 구조적인 문제를 전혀 고려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영화계 내에서 나의 사례 외에도 말도 안 되는 사례가 많았지만 재판부는 이런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곽씨는 앞으로 해당 판결에 항소를 진행할 예정이며 앞으로 영화계의 이런 관행이 바뀌길 바란다고 밝혔다.

“항소와 관련해서는 담당 변호사가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이 알려지고 나서 SNS 등을 통해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는 배우들의 메시지를 받았다. 어떤 여성 배우는 노출신을 찍지 않겠다고하자 이후 촬영장 분위기가 싸하게 변하는 것을 느끼고 심적으로 많이 괴로워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의 비슷한 사례를 듣고 이런 일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느꼈다. 영화계에, 특히 저예산 영화에 비일비재한 이야기다.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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