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귀국후 경기도 평택의 해군2함대에 전시된 천안함 선체를 둘러보면서 “비전문가가 봐도 폭침”, “사고가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고 밝힌 것에 대해 성급하고 단정적인 발언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천안함 사건은 반 전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 시절 발생한 사건으로 당시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서도 행위자에 ‘북한’을 넣지 못했다. 정부의 침몰원인 발표에 대한 의문이 종결되지 않았는데도 유력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데 유감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반기문 전 총장은 지난 15일 낮 12시30분께 경기도 평택의 해군 2함대 안보공원에 전시된 천안함 선체와 서해수호관을 방문했다. 반 전 총장은 함수와 함미 사이에서 선체를 올려보며 “(천안함은) 우리 같은 비전문가가 봐도 폭침이 분명하다”, “사고로 인해 저렇게 된 게 아니라는 게 분명하다. 직접 보니 당시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겠다”고 밝혔다고 중앙일보 등이 보도했다.

특히 중앙일보에 따르면, 반 전 총장은 이날 사령부 김록현 서해수호관장으로부터 북한 어뢰에 의한 피폭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듣고 “사고로 충돌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지요”라고 묻기도 했다. 김 관장이 “없다”고 하자 “전혀 없지요. 보면 분명한데…”라며 거듭 확인했다.

이후 반 전 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안보에는 ‘두 번 다시’가 없다”며 “천안함 피격 사건 같은 일이 나지 않으려면 늘 우리가 안보태세를 공고히 하고, 우리 국민 모두 하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의 이 같은 발언과 관련해 해군본부 관계자는 1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반 전 총장을 안내한 책임자에게 확인해보니 (반 전 총장의 발언이) 언론보도에 나온 것과 크게 다른 것은 없다”고 전했다.

▲ 반기문 전 유엔(UN) 사무총장이 15일 경기도 평택시 해군 2함대를 방문해 천안함을 둘러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반 전 총장측 이도운 대변인은 16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폭침이라는 얘기는 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2010년 5월 천안함 정부 발표 이후 의문을 담은 서한을 유엔에 전달했던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1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나도 당시 유엔에 정부발표에 의문을 제기하는 서한을 보냈지만 유엔 안보리도 당시 폭침 여부와 누구 소행인지에 대해서도 결론 못냈다”며 “의장 성명에서도 공격을 규탄한다는 정도만 얘기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유엔의 주요 상임위에도 결론 못낸 것에 대해 국내에 와서 폭침으로 결론내린 것은 유감”이라며 “천안함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에 대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천안함이 북한의 이른바 ‘1번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했다는 정부발표에 “국내에서도 (정부가 내놓은 증거의) 과학적 근거가 밝혀진 바 없어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유엔 사무총장 출신의 자연인이 왜곡된 결론을 정치적 캠페인에 활용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 외에 재미학자도 천안함선제·1번어뢰에 붙은 흡착물질 분석에 대한 이견을 유엔에 전달한 것과 관련해 “과학자들의 의견에 대해 당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또한 유력한 정치인으로서 폭침에 대한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지, 해명해야 할 책무도 있다”며 “비전문가가 봐도 폭침이라는데, (폭침이 아니라는) 다른 것도 많은데 뭘 보셨는지 모르겠다”고 강조했다.

7년 째 천안함 명예훼손 재판(1~2심)을 받고 있는 신상철 전 민군합조단 민간조사위원도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반 전 총장의 발언을 비판했다. 신 전 위원은 “본인 스스로 비전문가라면 폭침이라는 단정적인 표현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며 “남북간의 문제도 걸려있는 문제일 뿐 아니라 정부 발표대로면 북한이 천안함 장병을 사망케했다는 뜻인데, 그런 중요한 문제에 대한 판단을 유엔총장까지 한 사람이 이렇게 단언하는 것은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반 전 총장이 본인 재임 중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을 들어 “객관적 합리적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할 사람으로서 당시에 해야할 역할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천안함 사건은) 사무총장 역할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에도 북한 언급이 빠져있는 점을 두고 신 전 위원은 “유엔 사무총장에서 물러난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구보다 객관적 중립적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이렇게 쉽게 얘기하는 것은 매우 경솔하다”며 “반 전 총장의 대북관이 어떤지 단적으로 나타내준 징표”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반 전 총장 측 이도운 대변인은 16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2010년 당시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에 공격 주체를 명시하지 않은 것을 두고 “모든 회원국이 북한이 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며 “다만 당시 미국과 중국 등의 관계의 흐름 때문에 그런 표현을 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천안함 사건을 폭침이라 한 것이 지나치게 단정적이고 성급하다는 비판에 대해 이 대변인은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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