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1일 출범한 박영수 특검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그러나 특검의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은 첫째 현존하는 권력인 삼성그룹의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재벌과 권력과의 유착관계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가, 둘째 검찰출신 김기춘·우병우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한 처벌이 가능한가이다. 

특검은 첫 번째 관문 앞에 서있다. 지난 12일 특검에 소환된 이재용은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국회 청문회에서 진술과 다르게 이재용이 ‘2015년 7월 25일 독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승마지원을 왜 제대로 하지 않느냐며 화를 내서 어쩔 수 없이 지원을 하게 됐다’고 진술한 것 또한 뇌물이 아닌 ‘강요에 의한 출연 또는 자금지원’이라는 입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삼성의 재단법인에 대한 출연 및 최순실 일가에 대한 자금지원이 아무런 대가없이 박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것이라는 이재용의 변명은 상식에 반할 뿐 아니라 이를 반박할 증거는 차고 넘친다.

이재용의 주장과 다르게 2015년 7월 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 통과 이전부터 삼성의 재단법인 출연과 최순실 일가에 대한 자금지원은 철저하게 준비됐다. 

2014년 9월15일 대구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서 이재용은 박대통령으로부터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 승마 유망주에 대한 지원을 해줄 것을 요청받았고, 2015년 3월25일 삼성전자 박상진 사장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으로 취임한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후 대한승마협회가 2015년 6월 작성한 ‘한국승마 중장기 로드맵’ 보고서에는 삼성이 정유라에게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총 228억 원을 지원하기로 한 계획이 포함돼 있었다. 이것은 2015년 8월 삼성과 코레스포츠가 맺은 220억 원대 컨설팅 계약과 그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또한 2015년 6월24일 박상진 사장이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만나 “삼성은 정유라의 승마훈련을 지원할 준비가 언제라도 돼 있다”고 밝힌 것도 특검수사를 통해 확인됐다. 독대 이전 적어도 6월부터 삼성의 자금 지원이 계획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2015년 7월25일 독대 당일 ‘정유라 지원’을 강하게 요구받아 어쩔 수 없이 지원했다는 이재용의 주장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다. 또한 특검이 입수한 최순실의 제2태블릿 PC에서 대한승마협회 박원오 전무를 통해, 또는 삼성전자 전무가 최순실과 직접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승마 지원 업무를 조율하였음이 드러났다.

삼성의 자금 지원 계획에 화답해 박근혜 대통령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할 것을 지시했고, 2015년 7월10일 국민연금 투자위원회가 합병찬성을 의결함에 따라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이 성사됐다.

합병 성사 이후 삼성은 합병 찬성에 대한 대가로 계획됐던 최순실 일가 및 재단법인에 자금 지원을 실행한다. 최순실이 대표이사로 있는 코레스포츠에 220억 원의 컨설팅 계약 및 35억 원을 송금했고 장시호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16억 원을 지원했다. 정유라 말 구입비용으로 43억 원을 지원했으며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스포츠에 204억 원을 출연하는 등 총 483억 원의 뇌물을 공여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이면에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이 있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지분 4.1%를 보유한 2대주주로서, 제일모직의 최대주주(22.24%)였던 이재용이 합병결과 삼성물산 지분 16.5%를 보유하게 됨에 따라 결과적으로 삼성그룹의 핵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게 된다. 

삼성이 최순실 일가에 자금 지원 및 재단법인 출연을 약속하고 합병 후 그에 대한 대가로 자금지원 등을 한 것은 이재용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의 합병을 통해 삼성그룹 지배구조 재편 과정에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대가였던 것이다. 

▲ 2015년 5월7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기공 발파식을 마친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이재용이 합병으로 얻은 경제적 이익이 3조 원 대에 이른다고 하니, 삼성이 이를 위해 483억 원의 뇌물을 주는 것은 남는 장사다.

이 모든 사항을 종합해 볼 때, 삼성이 박 대통령의 강요에 의해 재단법인 출연 및 최순실 일가에 대한 자금을 지원했다는 이재용의 주장은 변명에 불과하다. 삼성의 재단법인 출연 및 최순실 일가에 대한 자금 지원은 합병 찬성에 대한 대가로서 지급된 뇌물이 분명하다.

이재용은 국회 청문회에서 “대통령 독대 후 2016년 초쯤 최순실을 알게 됐으며 삼성의 재단 지원에 관해 보고받지 않았다”라고 증언했으나 이재용은 특검에서 2015년 7월25일 독대에서 박 대통령이 승마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을 질책했다고 해 결과적으로 청문회에서의 진술을 번복했다. 청문회에서의 진술이 위증이었음을 자백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재용은 ‘자금지원 등은 임원들이 한 일이고, 나는 그 과정을 모른다’는 취지로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재용의 이 변명 또한 허위임이 명백하다.

2014년 9월 이재용은 박 대통령과의 첫 번째 독대에서 대한승마협회 회장사를 맡아 승마 유망주에 대한 지원을 해줄 것을 직접 요청받은 당사자이고 대통령과 독대 이틀 전 사장단 회의를 직접 소집해 승마 관련 지원 문제를 논의했다. 

2015년 7월25일 독대에서 박 대통령은 이재용에게 (합병 찬성 시켜줬는데) 왜 재단법인 미르, 케이스포츠에 대한 지원과 승마에 대한 지원을 하지 않느냐며 이재용에게 약속했던 뇌물을 지급할 것을 지적하자, 독대 후 이재용은 직원들에게 승마 지원 문제를 지시했다. 

2015년 7월27일 삼성전자 박상진 사장은 독일로 출국해 코레스포츠 계약 건을 최순실 측과 직접 논의했으며 이후 이재용은 박상진으로부터 코레스포츠 지원과 관련해 “승마협회를 통해 정유라씨를 지원하겠다”는 보고 문자를 받았다.

일련의 사실들을 통해 이재용이 삼성의 재단법인 미르와 케이스포츠에 대한 출연 및 최순실 일가에 자금 지원 과정을 모두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이재용은 위증과 허위진술로 일관했고 자신의 범죄행위를 은폐하면서 이제는 자신 밑에 있는 임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이 지난 9일 오전 특검에 출석하면서 질문하는 기자들을 두 손으로 막아서며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지난 12일 특검이 이재용을 소환수사하고 구속영장청구를 고려하자 재계를 중심으로 이재용이 구속될 경우 기업 경영에 미칠 파장이 크다는 여론을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재용의 범죄 혐의는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삼성이 재단법인과 최순실 일가에 공여한 483억 원은 이재용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의 합병을 이용해 삼성그룹 내 지배력을 구축하기 위한 뇌물이었다는 점이 충분히 입증된다. 

또한 재벌총수의 경영승계를 위하여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공모해 국민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을 탈법적으로 이용한 것은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그 죄가 심히 중대하며 죄질이 나쁘다.

2007년 삼성 비자금 사건 및 삼성전자 서비스 불법하도급 사건 등에서도 계좌와 자료를 대량 폐기하는 등 증거인멸의 전력이 있는 삼성이 이번 사건에서도 증거인멸을 도모할 것으로 예견된다. 

이재용은 검찰수사, 국회청문회에서 위증과 허위진술로 일관했고 특검수사과정에서는 다른 삼성 관계자들의 진술과 불일치한 점이 밝혀졌다. 따라서 구속되지 않을 경우 이재용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관련자들의 진술을 번복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특검이 이재용을 뇌물죄와 위증죄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법원은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이재용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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