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은 완전히 실패했다. 의제 설정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민주 여론 형성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다. 너무 쇠락해서 사소해졌다.”

한국방송학회가 13일 오후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주최한 세미나 ‘미디어 공공서비스와 공영방송의 진로’ 발제자인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공영방송에 혹독한 비판부터 쏟아냈다.

이 교수는 “주요 뉴스가 빠지고 논쟁 사안을 회피하고 있다”며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공영방송의 중요한 역할인데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13일 오후 한국방송학회가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주최한 세미나 ‘미디어 공공서비스와 공영방송의 진로’ 발제자인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공영방송에 혹독한 비판을 쏟아냈다. 사진=김도연 기자
그는 시청자방송평가지수(KI)의 채널 평점을 공영방송의 추락을 뒷받침하는 근거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다. 

이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3.67점을 받은 JTBC가 1위를 기록했고 KBS 1TV가 3.44점으로 뒤를 이었다. MBC는 3.37점에 그치며 7개 방송사 가운데 꼴찌였다.

이 교수는 “주요 공영방송 채널 품질은 다른 지상파 채널은 물론 종편 채널 품질에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공영방송 회복 방안으로 지배구조 개선을 꼽았다. 다만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춘다고 해도 많은 걸 기대할 수 없다”며 “지배구조 개선은 공영방송 효과를 위한 필요 조건일 뿐이다. 그저 잘 되리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지배구조 개선을 말하는 까닭은 인사에 있었다. 어떤 인사가 공영방송사를 책임지느냐에 따라 뉴스의 정상화, 방송 프로그램과 서비스 품질 제고, 시청자를 위한 기술혁신 등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당장 필요한 것은 ‘공영방송 100년의 틀’ 같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인사가 요구된다는 의미다. 

최선의 사장 선임을 위해 좋은 이사회 구성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지배구조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

물론, 제도가 안정적으로 도입된다고 해도 인사가 잘못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장치로서 기능할 뿐이다.

방송법 개정안, 방송문화진흥회법 개정안,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 개정안,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관련 법안은 20대 국회 야3당 국회의원들과 무소속 의원 등 162명이 지난해 7월 공동 발의했다. 

공영방송 이사 추천 방식 개선, 사장 선임 시 이사회 3분의 2가 동의하는 특별다수제 도입,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 등이 골자로 꼽힌다.

이 교수는 현재 계류 중인 관련 법안에 공감을 표했다. 야당의 이사 추천 권한을 강화하고 사장 임면시 특별다수제가 필요하다는 방향에 동의했다.

이 교수는 “이사진을 적절한 규모로 확대하면 특정 인사의 전횡 가능성을 줄일 수 있고, 이사회 내에서 소수 세력들의 비정파적 연합을 기대할 수 있다”며 “소수자나 지역 이해를 대변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사의 보수 및 특권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며 “공영방송 이사직은 어떤 특권이 아닌 전문성에 따른 봉사의 기회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발의된 관련 법안의 경우 공영방송 이사들을 여야 7대 6 구성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교수는 19명에서 21명까지 중폭 늘리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한 세미나 ‘미디어 공공서비스와 공영방송의 진로’가 13일 오후 서울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렸다. 사진=김도연 기자
그러나 이 교수는 법률을 통한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과 편성규약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 의무화 등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편성규약은 방송법에 따라 제정된 것으로 목적은 안팎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으로부터 자율성을 보호하고 취재 및 제작 실무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한 기구가 편성위원회다.

이 교수는 “편성규약을 법적으로 규제하자는 의도 자체가 공영방송 편성 자율성을 해치는 일”이라며 “(편성위원회는) 공영방송 내 정치투쟁의 장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합의와 균형보다는 대립적인 정치 문화에 익숙한 한국엔 맞지 않다는 것이다. 

KBS 기자·PD를 포함해 다수의 공영방송 현업인들은 보도 책임자들을 견제·감시할 수 있도록 방송편성규약을 강화하고 편성규약위반에 대한 처벌·강제 규정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 토론자로 참석한 박성제 MBC 해직기자도 “공영방송의 객관적인 보도를 위해서 편성위원회는 더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아마도 현재 공영방송이 특정 정파로 구성돼 있어 내부 견제 장치가 필요하기에 이런 논의가 나오는 것 같은데 공영방송의 자율적 편성은 내부 구성원들의 능력으로 길러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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