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9월 초, MBC ‘PD수첩-농촌 이대로 둘 수는 없다’편이 불방 됐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농촌의 미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었다. 불방에 항의하던 MBC노조위원장과 사무국장은 해고됐다. 그들은 기약 없는 해직언론인의 삶을 시작했다. 당시 MBC노조 집행부였던 손석희는 두 사람의 복직을 요구하며 9개월이 넘는 농성에 참여했다. 기약 없는 농성이었다.

1992년, MBC노동조합은 파업에 나섰다. 공정방송장치, 해직자복직 등을 요구했다. 10월2일, 경영진의 요청으로 서울 여의도 MBC본사 내부에 공권력이 투입됐다. 조합원 187명이 강제 연행됐다. 노조집행부였던 손석희는 영등포구치소에 수감됐다. 그는 그곳에서 20일간 독방에 갇혀 있었다. 그가 수감됐던 곳은 9동하25방. 형광등을 끄려 했지만 스위치가 없었다.

“감옥이 내게서 박탈해간 자유 중에 가장 나를 안타깝게 한 것은, 파업집회가 열리고 있는 길거리에서 내가 조합원들과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손석희, 책 ‘풀종다리의 노래’ 가운데)

▲ 1992년 수의를 입은 손석희.
수의를 입은 손석희의 모습은 MBC노동자들의 정의로운 파업을 알리는 상징적 장면으로 투쟁의 기폭제가 됐다. 시민들은 MBC의 파업을 지지했다. 20세기 언론사 최장기파업(50일)은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노조는 공정방송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쟁취했고, 해직언론인은 복직됐다.

손석희는 공정방송을 위한 50일 파업을 마친 뒤, 1992년 12월호 ‘말’지와의 인터뷰에서 ‘생에서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실체는 분명하지 않더라도 지금껏 제 일생에 지켜온 어떤 일관성이 있다면 그것을 끝까지 지키고 싶습니다.” “나이가 든다고, 지위가 달라진다고 해서 제 자신을 바꾸는 일은 없을 겁니다.”

25년이 흐른 2017년 1월12일자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민영방송사 JTBC의 보도담당 사장 손석희는 이날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7년 : 그들이 없는 언론’을 소개했다. 이 영화에는 이명박정부 낙하산 사장의 방송장악에 맞서 싸우다 해직된 YTN 노종면 현덕수 조승호 우장균 정유신 권석재, MBC이용마 박성호 박성제 최승호 강지웅 정영하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해직언론인들의 싸움은 어느덧 MBC가 5년, YTN이 9년째를 맞고 있다. 손석희는 이날 이들을 가리켜 “아직 돌아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들은 또 다른 누군가의 말처럼 ‘독립된 나라에서 독립운동 하듯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손석희는 언론이 모처럼 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요즘, 어쩌면 많은 국민들에게 잊혀졌을 해직언론인들을 기억하게끔 했다.

▲ 2017년 1월12일자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의 한 장면.
손석희는 이어 마루야마 겐지가 쓴 ‘나는 길들지 않는다’의 한 대목을 인용했다.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고 아무도 지배하지 않는 것. 요는 살아 있을 것이냐, 살아있지 않을 것이냐이다. 나는 길들지 않는다.” 이날의 앵커브리핑은 아직 돌아가야 할 회사로 돌아가지 못한 정의로운 언론인들에 대한 응원과 연대의 메시지이자, 어느덧 노장(老將)이 되어버린 한 언론인이 25년 전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한 다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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