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만으로도 대통령직에서 파면되는 것이 헌법 정신입니다. 헌법재판소 무용론이 대두되지 않도록 헌재가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롯이 유린된 헌정질서를 바로잡는데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미디어오늘은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법률팀의 #조기탄핵을 위한 연재글을 싣고자 합니다. 현재 퇴진행동은 조기탄핵을 위한 신문광고 모금과 파면사유 한줄쓰기 등의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바로가기>

지난해 12월22일 헌법재판소에서 개최된 대통령 탄핵심판 제1회 준비절차기일에서 이진성 재판관은 피청구인(대통령)에게 국민에 대한 생명권보장의무와 관련해 세월호 7시간 동안의 자신의 행적에 대해 기억나는 대로 석명을 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때로부터 20일이나 지난 1월10일에야 피청구인 대리인단은 석명요구에 대한 답변서를 제출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1001째 되는 날이다. 그 많은 시간 무엇을 한 것일까?

대통령이 대리인단을 통해 밝힌 행적은 종전에 기계적으로 만든 타임라인의 짜깁기에 불과하고 내용은 대부분 소명자료도 없이 일방적인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재판관의 석명요구에 대한 답변 태도가 시건방지기 이를 데 없다. 가장 놀라운 것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내렸다는 구조지시가 여러 정황에 비추어볼 때 사후적으로 만들어낸 거짓말일 수 있다는 점이다. 차례로 살펴보기로 하자.

▲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4월17일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아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답변의 서두에서부터 물구나무선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인식을 발견하게 된다. 답변서에서 대통령의 위치와 동선은 국가기밀에 해당하며 비공개가 원칙이라고 썼다. 다만 세월호 참사와 무관하게 당일 대통령의 행적에 관해 각종 유언비어가 횡행해 부득이 대통령의 집무내용을 공개한다고 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에 대한 유언비어 방어 차원에서 공개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유언비어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국가기밀을 공개할 수는 있어도 대통령의 생명보호의무 이행여부에 대한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는 공개할 수 없다는 사고방식에 놀라울 따름이다. 국가기밀 사항은 개인에 대한 유언비어 해소 차원에서 공개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국민들의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해야 할 공익적인 법익이 훨씬 클 때 공개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국민의 대표를 뽑은 것이 아니라 군주를 모시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동안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를 위한 골든타임에 대통령이 구조지시를 내렸다는 주장이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탄핵심판 피청구인 대리인단의 답변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 집무실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피해자 구조와 사태 수습을 위해 대면회의나 보고 대신 국가안보실, 비서실, 중대본, 해경 등 유관기관으로부터 20~30분마다 직접 유선 등으로 상황을 보고받고 필요한 업무지시를 하는 등 최선을 다해 대처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를 믿기 어렵다.

첫째,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전화보고를 받고 지시한 행적에 대해서는 통화기록을 일절 제출하지 못했다. 같은 날 기초연금법 관련해 최원영 고용복지수석과 통화한 기록은 존재하는데 세월호 관련해 통화한 기록은 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과연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전화보고를 받고 전화 지시를 한 것이 사실일까? 전화보고와 지시가 없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김기춘 비서실장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참사 당일 대통령을 대면하지도 않았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답변했다.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으면서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 것일까?

둘째, 2014년 7월 국회에 제출된 국가안보실과 대통령비서실의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10시에 최초로 상황보고를 서면으로 진행했고, 10시 15분에 대통령이 국가안보실장에게 유선으로 “단 한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선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해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의 ‘14. 4. 16(수) 10:00 진도해상여객선 침몰사고 상황보고’에 위와 동일한 내용의 대통령 지시사항이 기재돼 있다. 

10시에 최초로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10시 15분에 대통령의 첫 지시가 내려지는데 중대본의 10시 정각 상황보고에 10시 15분의 지시사항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위 사실에 비추어볼 때 10시 15분의 대통령 지시사항은 실제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아닌 참모진들에 의해 사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게이트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셋째, 2014년 7월 국가안보실과 대통령비서실이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서를 보면 10시 30분 박근혜 대통령은 해경청장에게 전화해 “해경특공대를 투입해서라도 현장 인원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인명 구조를 독려 지시했다고 나와 있다. 같은 시각인 10시 30분에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위 지시내용을 브리핑한 사실이 있다. 즉 10시 30분에 해경청장과 통화하면서 대통령이 지시하고 있는 내용을 같은 시각 대변인이 브리핑 하고 있었다. 

이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심지어 민경욱 대변인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과 직접 통화한 사실도 없다. 대통령과 해경청장 사이의 통화(해경특공대 투입지시)는 거짓일 가능성이 현저하다.

세월호 관련해 대통령에 대한 전화보고와 전화지시에 대한 통화내역이 전혀 제출된바 없다. 또한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대통령이 전화로 구조지시를 내렸다는 지시사항은 중대본 상황보고와 청와대 대변인의 브리핑 등의 객관적인 정황과 배치되고 있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과의 전화 보고 및 지시에 대한 통화기록, 그리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보고서 전체를 제출해야 한다. 대통령의 주장이 곧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민에 대한 생명권 보호의무 이행을 위해 노력한 것처럼 보이기 위해 구조지시를 조작한 것이라면?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용서할 수 없는 탄핵감이다. 아니 응징해야 할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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