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 사람이 공영방송을 포함한 방송·통신 관련 공적 기구들을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장악할 수 있을까. 

지금의 법과 제도대로라면 대통령과 여당은 공식적인 인사권 행사만으로도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 세 기관의 인사 54명 중 41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12일 오후 국회 공정언론실현특별위원회와 전국언론노조·한국PD연합회·한국기자협회 주최로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방송 공공성의 확보방안’ 토론회에서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국장은 “한국의 공영방송 체제는 어느 정치세력이 집권여당이 되는가에 따라 대통령과 함께 규제·공공기관과 방송 3사(KBS·MBC·EBS)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공영방송과 이사 선임에도 직접 관련이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경우 상임위원 5명 중 대통령과 여야 추천 몫은 각각 2:1:2이다. 여야 3대 2 구성에서 공영방송 이사 선임이 방통위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정권에 입맛에 맞는 인사에게 공영방송의 의사결정 권한을 주는 식이다.

 지난해 6월30일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보도 개입을 폭로한 통화 내용을 뉴스타파가 재구성해 만든 ‘이정현-김시곤 통화내용(전체)’ 영상 갈무리.
이에 대해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온 김형철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대통령의 공식적 권한은 KBS 사장과 이사에 대한 임명권과 방통위 2인에 대한 추천권이 있다”며 “대통령과 여당 사이의 관계가 종속적 관계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영향력이 강하게 작동함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통령이 직접적인 인사권이 없지만 여당과 종속적 관계를 통해 발휘하는 비공식적 권한으로 공영방송 이사진까지도 여당과 야당 사이의 차등적으로 구성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BS 이사진은 11명은 여야 추천 이사 7대 4로 비율로 구성되며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는 여야 6대 3, EBS 이사진은 여야 8대 1로 구성돼, 대통령이 방통위 상임위원 추천권만 가져도 비공식적으로 공영방송 이사진까지 인사권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동원 국장은 “공영방송사의 이사진 구성에서 여당과 야당의 이사 추천 비율은 어떤 법적 근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국장은 “국회의 교섭단체들이 각 공영방송의 이사를 추천할 때는 모두 동일한 수의 이사 후보 명단을 방통위에 제출한다”며 “그러나 방통위는 (구)방송위원회의 이사 추천 비율을 ‘관행’으로 삼아 위와 같은 비율의 이사진 구성을 지속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20대 국회에서 야 3당 162명의 의원들이 이른바 ‘언론장악 방지법’으로 불리는 공영방송 재배구조 개선을 위한 관련법을 발의한 상태다. 하지만 국회 상임위원회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여당 간사가 법안심사 소위 개최에 협조하지 않고 있어 법안 통과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관련법 개정안에 따르면 공영방송 이사는 대통령이 임명하되 이사회가 정부·여당 추천 이사 7명, 야당 추천 이사 6명으로 구성되도록 하고, 사장 선임 등 중요한 의사결정 시 재적이사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의결되는 특별다수제가 도입된다. 

아울러 방송사 내부적으로도 구성원의 의견이 민주적으로 수렴될 수 있도록 편성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고 노사가 5명씩 동수로 참여해 제작 자율성과 방송 공정성 등을 논의하게 된다. 

SBS 출신인 오기현 한국PD연합회장은 이날 토론자로 나와 “민영방송인 SBS도 본부별 편성위원회와 전체 편성위원회, 시청자위원회가 있고 모두 노사 동수 구성된다”며 “내부의 견제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공영방송에도 변화의 파급이 (법적 견제와) 상호작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호찬 MBC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는 “지금 공영방송 내부에선 정권과 정치적 이해를 같이하는 경영진의 자발적 충성 구조가 펼쳐지고 있고, 내부 구성원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감수하고 분노·저항해도 경영진이 안면몰수로 무시하면 견제 장치가 없다”며 “제왕적 경영진이 무소불위의 인사·경영권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중간 평가를 받는 시스템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간사는 “개정안을 보면 편성위를 노사 동수로 만들어 내부 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하자는 건데 이게 어떻게 야당과 노조에 유리한 정치적 법안이라 할 수 있는지 법안 반대자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며 “개정안이 ‘언론장악 방지법’으로 불리지만 이 정도 법안으론 언론장악 방지를 못 하고 언론장악 방지 토대 정도만 갖출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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