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12일 오후 귀국했다. 힘을 합쳐 난국을 이겨내고 분열된 한국을 하나로 묶어 세계 일류 국가로 만들겠다는 ‘권력의지’를 표했다. 그러나 반 전 총장 조카와 동생이 미국에서 기소된 사안이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 수수 의혹 등에 대해서는 근거없는 의혹으로 치부했다.

반 전 총장은 12일 오후 5시 30분 경 인천국제공항 출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착 직후 출입구 게이트에서 연 기자회견을 통해 반 전 총장은 “저에게 보여준 감동과 제가 UN사무총장을 하면서 보여줬던 원천을 통해 꼭 국가의 발전과 민족의 발전에 저를 바치겠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0년 간 세계 방방곳곳을 다니면서 가난하고 병들고 압제에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과 존엄을 보호하면서 약자를 대변하고 그들의 목소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며 “우리 정치지도자들도 우리 사회의 분열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에 대해 해법을 같이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반 전 총장은 대권 출마를 시사하는 발언도 내놓았다. 반 전 총장은 “정쟁으로 나라와 사회가 분열되는 것은 민족적 재앙”이라며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치교체가 이뤄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부의 양극화와 이념, 세대간 갈등은 끝내야 하고 국민 대통합을 반드시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반 전 총장은 “귀국 후 국민 여러분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기회를 갖겠다고 말씀드렸다. 내일부터 그 기회를 갖겠다. 그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제가 사심없는 결정을 하겠다. 그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사진=이치열 기자.
촛불 민심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반 전 총장은 “역사는 2016년을 기억할 것”이라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하나가 됐던 좋은 국민을 기억할 것이다. 광장에서 표출된 국민의 열망을 결코 잊으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자신에 대해 언급됐던 의혹들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지만, 당초 반기문 전 총장 측 입장으로 밝혀졌던 입장 이상의 답은 없었다. 

반 전 총장은 “저의 귀국 즈음 제 개인에 대한 여러 얘기가 보도되고 있다. 그 모든 것이 진실과는 전혀 관계없다. 저의 경험과 식견을 정치참여를 통해 조국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순수하고 참된 소박한 뜻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내용들”이라고 일축했다.

▲ 1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으로 귀국한 반기문 전 UN사무총장. 사진=이치열 기자.
반 전 총장의 동생인 반기상 전 경남기업 고문과 그의 아들이자 반기문 전 총장의 조카인 반주현 씨가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미국에서 기소된 바 있다. 

또한 반 전 총장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반 총장이 박 회장으로부터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2005년과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직후인 2007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20만 달러와 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반 전 총장은 “박연차씨가 저에게 금품을 전달했다는 내용은 도저히 제가 이해할 수 없고 왜 제가 그 이름으로 등장했는지 알 수 없다. 분명 제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제 말씀이 진실에서 조금도 틀림이 없다는 점을 분명 말씀 드린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유엔협약에 사무총장이 정부직을 맡아서는 안된다는 조항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답변은 여기서 제가 하는 것이 적절치 않고 UN당국에서 (입장 표명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도 “저의 정치적 행보, 특히 선출직과 관련된 정치 행보를 막는 조항은 아니다”라고 해석했다.

공직선거법에 의거해 선거일 기준 5년 이상 거주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국내 피선거권 제한에 걸릴 수 있다는 지적에도 “중앙선관위에서 분명히 자격이 된다고 유권해석을 했다”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문제를 자꾸 갖고 나온다는 것은 너무 좀 바람직하지 않고 공정한 언론이나 여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제기를 계속 하면 의도를 의심할 수 밖에 없다”며 비판했다.

반 전 총장은 한일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긍정적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이에 대해서는 “한일 양국 간 오랫동안 현안 문제에 대해 합의가 이뤄졌던 데에 대해 환영한 것”이라며 “다만 궁극적인 합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반기문 전 사무총장의 첫 국내 행보는 공항철도를 탄 시민들과 만나는 것이다. 반 전 총장 측은 “공항에서 국민들게 귀국 인사를 마치고 승용차 편으로 자택으로 이동하려던 일정을 바꿔 공항고속철도를 타고 서울역까지 이동한 뒤 서울역에서 승용차 편으로 자택으로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후 6시29분 현재 반 전 총장은 인천국제공항에서 공항철도 탑승구 방향으로 이동 중이다.

한편 반기문 측이 귀국을 앞두고 인천공항공사에 대통령 등 ‘3부요인급’에게 제공되는 의전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다 앞서 반기문 전 총장 측은 가급적 경호를 줄이고 최소한으로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반 전 총장 측은 이를 의식한 탓인지 비행기에서 내려 일반 시민들과 똑같은 절차를 거쳐 입국장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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