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른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이 국내 입국을 앞두고 정치권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반 전 총장이 대권 출마 가능 여부 자체가 논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은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한 몸 불살라서라도 노력할 용의가 있다”며 지난해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지난달까지 약 10년 간 사무총장으로서 임기를 마치고 12일 오후 한국 땅을 밟는 반 전 총장의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반기문 전 총장은 대선에 출마할 수 있을까. 핵심은 반 전 총장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것이 국내법 및 UN결의안 등에 위배되지 않느냐의 여부다.

전문가들 “국제사회서 한국 이미지 타격” 우려

UN은 지난 1946년 제1차 UN총회에서 UN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Terms of Apporintment of the Secretary-General)라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해당 결의안의 11(Ⅰ) (b)항에는 “유엔 회원국은 사무총장의 퇴임 직후에는 어떤 정부직도 사무총장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언급돼있다. 사무총장 역시 그러한 직책을 수락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특히 해당 결의안은 그 이유에 대해 사무총장이 각국 정부의 비밀스러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들었다. 만약 본국으로 돌아가 정부 조직에 속해있으면서 사무총장으로서 얻었던 타국에 대한 기밀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이다.

▲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지난해12월 구테헤스 신임사무총장 취임식에서 고별인사를 하고 있다. 반 총장은 한국 국민에게도 감사를 표시했다. 사진=포커스뉴스
전문가들은 해당 결의안이 법적 구속력은 없는 권고사항이라는 점은 인정하더라도, 향후 대통령이 될 경우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 국격에 일정한 타격이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세계 각국 관련 정보를 접하던 인물이 특정 국가의 대표가 되어 국제사회에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국제사회에서는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인다. UN사무총장직 자체가 대통령으로서의 수행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 역시 우려에 한 몫한다.

김봉철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UN사무총장은 사실 사무총괄 역할을 맡는 사람이다. 최고 결정은 유엔 이사회가 내리는 것이며 사무총장은 사무행정에 관한 업무만 담당하는 사람이다. 일반국민들의 생각과 달리 대통령처럼 책임을 지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제 분야 업무 총괄을 맡던 사람인데 국내 업무의 중요성이 높은 한 국가의 대통령으로 바로 다시 국제사회에 등장하는 것이 (한국 이미지 제고에) 과연 바람직할 것인지는 의문”이라며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는 UN 최고 자리까지 올라 활동하셨던 분이 설마 그렇게(대권 출마) 하겠냐고 한다. 그렇게 인물이 없냐는 비아냥도 나올 수 있다”고 짚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송기호 변호사 역시 “구속력 있는 조항은 아니다”라면서도 “한국 국적 UN 사무총장이 본국으로 돌아가 곧바로 대통령으로 출마하는 것은 향후 또다른 한국 국적을 가진 국제 리더의 활동에 좋지 않은 선례로 남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해당 조항은 UN이라는 리더십이 어느 개별국가 간의 이해관계 대립 구도에 휘말리는 것을 막고 UN질서를 공정하게 유지해, 회원국들도 UN의 기조와 질서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 리더십 차원에서도 반 전 총장이 대통령 출마는 자제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역대 사무총장 중 대선에 출마한 경우는 두 번이다. 4대 총장인 쿠르트 발트하임은 1981년에 퇴임해 1985년에 대선 출마 후 당선됐다. 5대 총장인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는 1991년 퇴임한 이후 1995년 대선에 출마해 낙선했다. 다만 케야르는 2000년에 총리로 취임했다. 두 경우 모두 최소 4년 이상이 지나서야 대선에 출마했다.

5년 이상 국내 거주 피선거권도 논란여지

국내법 조항도 반기문 전 총장의 출마를 둘러싼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국내 5년 이상 거주한 자에게 대통령 피선거권이 있다는 공직선거법 조항에 따라, 10년 이상 해외에 거주한 반 전 총장에게도 피선거권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다.

공직선거법 제14조에는 “선거일 현재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40세 이상의 국민은 대통령의 피선거권이 있다. 이 경우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은 국내거주기간으로 본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은 사무총장 취임 때 뉴욕에 주소지를 뒀으며 대통령 선거가 있는 2017년까지 10년 넘게 해외에 거주했다. 대통령 선거일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향후 조기대선이 늦어도 오는 6월에 진행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선거 직전까지도 반 전 총장의 최근 국내 거주 기간은 1년이 채 되지 않는 셈이다.

또한 공무로 외국에 파견된 기간과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에 체류한 기간을 국내 거주기간으로 본다고 규정했다는 점에서 사무총장 직이 선출 및 상근직이라는 점에서 국내 거주자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6월, 태어나서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면 대통령 선거 출마 자격이 주어진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다.

다만 중앙선관위도 당시 더불어민주당 윤후덕의원실의 질의에 “(당시 헌법)입법 취지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통령이 될 사람은 일정기간 국내에 거주하여 민심의 소재와 국가 사회적 실정을 알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계속 거주 요건 규정을 둔 것으로 보인다”고 답한 바 있다. 

이러한 답변에 의하면 해당 법 조항의 취지에 따라 반기문 전 총장 역시 대통령으로서 국내 현안을 돌봐야 하는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 최근 국내 거주 기간이 짧아 현실감각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힘을 얻는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9일 오전 경기 고양시 킨텍스 제1전시장에서 열린 2016 국제로타리 세계대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대권 주자·정치권 반기문 향해 ‘견제구’

종합하면 국내법과 UN 결의안 위반은 아니기 때문에 반기문 전 총장이 대권 출마 선언을 한다고 해도 엄밀히 말해 문제는 없다. 다만 각 법과 결의안이 담고 있는 본래 취지를 고려해보면 반 전 총장의 대권 출마는 무리한 선택이라는 분석은 가능하다. 

이 때문에 반 전 총장에 대해 다른 대권주자 및 정치권에서는 견제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12일 현재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에 이어 2위인 20.3%를 기록했다. 반 전 총장이 귀국 후 본격적으로 대권 행보를 밟을 경우 지지율을 더욱 상승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12일 오전 S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현재 취임하고 있는 유엔 사무총장이 반기문 사무총장의 한국 대통령 선거에 도전하는 것은 명백하게 유엔 정신과 협약의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UN 총장의 선출직 참여 금지 조항이 중립적 임무수행에 있어 필수적 덕목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어 안 지사는 “(반 전 총장은) 이미 출마의 자격이 없다”고 밝혔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역시 지난해 9월21일 “헌법 67조와 공직선거법 15조에 따르면 대통령 피선거권은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만 4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에게만 해당된다”며 “헌법과 공직선거법 정신은 여기에 발을 딛고 우리 사회에 깊은 성찰을 한 사람이 대통령 자격이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깊은 성찰과 고민이 있는지 답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원내대표는 12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 “UN 협약 위반 저촉과 국제사회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그러한 점을 반 전 총장이 (대권 행보 과정에서)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보면 반 전 총장의 리더십을 국민들이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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