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미국 대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는 뉴스가 페이스북에 등장했다. 출처도 명확하지 않았던 이 가짜뉴스(FAKE NEWS)는 무려 96만 건 공유됐다. 힐러리 클린턴이 IS와 연루됐다는 가짜뉴스도 70만 건 이상 공유됐다. ‘70뉴스’라는 트럼프지지 사이트는 트럼프가 힐러리보다 득표수가 많다는 허위사실을 기사형식으로 유통시켰는데, 해당 URL은 구글 검색 상위에 올랐다.

미국 IT전문매체 버즈피드는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며 미국선거일(11월8일) 이전 3개월 간 인터넷상에서 공유된 가짜뉴스는 870만 건이었으며, 이는 진짜뉴스 공유횟수인 736만 건보다 많았다고 밝혔다. 가짜 뉴스 대부분은 트럼프에 유리하고 힐러리에 불리했다. 결과는 트럼프 당선이었다. 가짜뉴스는 트럼프지지층의 ‘감성적 연대’를 이뤄냈다.

▲ 가짜뉴스로 어려움에 처한 페이스북.
조기대선이 예고된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세금으로 국가정보원이 야당 후보 비난여론을 조작하고 청와대 뉴미디어실이 극우·혐오사이트의 글을 퍼 나르는 곳이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대선이 있던 2012년 정부당국 요청에 따라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순위에서 특정 키워드를 삭제·제외할 수 있는 회사 차원의 지침을 만들기도 했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여론조작 무대는 각종 유머사이트 댓글과 트위터였다. 그러나 조기대선을 앞둔 올해는 페이스북으로 무대가 옮겨질 가능성이 높다. 페이스북 코리아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국내 페이스북 이용자는 1700만 명에 달한다. 공유와 확산이 특징인 페이스북에서 뉴스수용자는 가짜뉴스와 진짜뉴스를 구별하기에 앞서 ‘좋아요’를 누른다.

가짜뉴스는 마치 기사처럼 유통된다. ‘일베’같은 숙주사이트를 기반으로 가짜뉴스가 생산되고 페이스북을 통해 확산되는 식이다. 조나단 올브라이트 美 노스캐롤라니아 엘론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최근 우익 웹사이트가 어떻게 메시지를 퍼뜨리는지를 연구한 논문을 발표하며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처럼 퍼뜨리는 허위 뉴스사이트 총 306개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조나단 교수는 “페이스북은 (가짜뉴스의) 효과적인 확성기 역할을 한다. 페이스북은 바이러스가 퍼지는 숙주였다”고 주장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주도면밀하게 인터넷의 약점을 파고들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집단’이 존재한다.

▲ 조나단 올브라이트 교수가 그린 허위 뉴스 사이트의 정보 유통망.
이와 관련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은 “가짜뉴스의 웹과 우리의 웹이 꽤 여기저기서 얽히고설켜 있다”고 전하며 “수많은 링크를 여러 사이트에 심어놓고 트래픽을 주고받으며 정보를 확산하는 거대한 우익 뉴스나 선전 매체 생태계는 주류 언론 생태계를 둘러싸고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가짜뉴스를 생산·유통한 우익 사이트들은 구글 페이지랭크 시스템에서 자신들의 검색 순위를 높여줄 일종의 속임수를 찾아 공략했다. 그 결과 우파는 무슬림, 여성, 유대인, 홀로코스트, 흑인 등의 주제에 관해 좌파보다 인터넷상에서 정보의 유통과 흐름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한번 메인에 뜨면 지속적으로 첫 페이지에 노출되고 그 결과 ‘클릭→트래픽’이 반복되며 가짜뉴스의 지위는 강화됐다는 지적이다. 집단지성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라는 ‘알고리즘의 함정’이다.

예컨대 구글에서 ‘유대인’(are jews)을 검색했을 때 최상위에 소개되는 글의 제목은 ‘사람들이 유대인을 싫어하는 10가지 이유’다. ‘여성은’(are women)을 입력하면 ‘여성은 사악한가’라는 자동완성 문장이 등장한다. “히틀러는 나쁜사람이었나?”(Was Hitler bad?)라고 검색하면 첫 페이지에선 “히틀러가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었던 10가지 이유”가 뜬다.

이 같은 검색엔진의 문제를 지적해온 웹사이트(searchengineland.com)를 설립한 대니 설리번은 “마치 도서관에 가서 유대인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사서가 가져온 책 10권이 온통 증오와 혐오에 관한 내용뿐인 것과 같다”며 “구글은 검색 알고리즘을 통해 끔찍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구글에선 초당 6만3000번의 검색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점점 구글의 영향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진실의 위상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 가짜뉴스 관련 기사 제목 갈무리.

현재 국내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조치는 제도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일단 가짜뉴스는 언론보도가 아니다. 언론중재위원회 관계자는 “인터넷상에 개인이 개인의 의견을 보도형식으로 올리면 허위여부와 상관없이 언론보도가 아니기 때문에 중재위 조정신청 대상이 아니다. 민법상 정정보도만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명예훼손 신고가 들어오면 망사업자를 통해 URL차단요청을 할 수 있다. 해외사업자의 경우 명예훼손 심의결과를 통보해 자율 규제 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고 밝혔다. 가짜뉴스가 확산돼 유권자에 영향을 주는 시간에 비해 조치까지의 시간은 너무 길다.

이와 관련 페이스북코리아 관계자는 “한국의 페이스북은 해외에 비해 가짜뉴스의 문제가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으며 “가짜뉴스 확산을 막기 위해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 조선일보 2016년 11월25일자 기사.
미국 대선 이후 페이스북의 ‘가짜뉴스’ 확산 비판이 거세지자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가짜뉴스를 줄이기 위해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가짜 뉴스를 신고할 수 있는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밝혔으며 가짜뉴스로 판명된 게시글은 이용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표시하겠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은 지난 6일(현지시각) CNN앵커 출신 캠벨 브라운을 뉴스 파트너십 책임자로 영입하기도 했다. 캠벨 브라운은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과 뉴스를 알리는 방식 모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페이스북이 저널리즘 확장의 도구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구글도 최근 광고 플랫폼 ‘애드센스’에서 가짜뉴스 생산 사이트를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페이스북의 조치는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고 구글의 검색알고리즘은 여전히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 케서린 바이너 가디언 편집국장은 자사칼럼을 통해 “팩트가 ‘느끼는 것이 곧 사실’임을 닮아갈 때, 누군가가 사실인 팩트와 사실이 아닌 팩트의 차이를 말하기란 매우 어려워진다. 동기가 무엇이든, 거짓과 팩트는 현재 같은 방식으로 확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페이스북 뉴스피드 알고리즘을 가리켜 “우리가 각각의 뉴스피드에서 매일매일 마주하는 세계는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믿음을 강화하기 위해 보이지 않게 큐레이팅 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反문재인, 反반기문으로 둘러싸인 뉴스피드를 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이 ‘필터버블’효과다. 구글·아마존·페이스북 등 인터넷 정보제공자가 사용자에 맞춰 개인화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수용자는 이미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춰 필터링 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걸 의미한다. 예컨대 문재인 지지자는 페이스북에서 반기문 지지자의 포스팅을 볼 확률이 매우 줄어들고, 반면 문재인 지지성향의 게시 글은 자주 접하게 된다. 반기문 지지자라면 알 수 있는 ‘가짜뉴스’를 문재인 지지자는 사실로 믿게 될 수 있다. 이는 반기문 지지자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다니엘 시트론 美 메릴랜드대 법학과 교수는 “정보가 틀리거나 잘못되거나 불완전하더라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지적했다. 일종의 정보 캐스케이드(Information Cascade)다. 상품에 대한 호평 후기가 많은 걸 확인하고 구매를 결정하는 것처럼, 수많은 공유를 보고 대선후보를 선택하는 식이다. 가짜뉴스는 여기서 일종의 ‘바람잡이’ 역할을 한다. 필터버블은 뉴스의 진실성을 가린다. 오보라는 사실을 확인하더라도 ‘편견’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짜뉴스와 필터버블 속에 힐러리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당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조기대선을 앞둔 한국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까.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