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13 총선을 요약하면 ‘더민주 1당, 새누리 참패, 국민의당 돌풍’이다. 주류언론은 이 세 가지 중 하나도 예측하지 못했다. 언론계는 선거 결과만큼 충격적인 오보를 마주해야만 했다.

언론계는 예측실패를 면피하려 여론조사 탓을 했다. 신문협회·방송협회·신문방송편집인협회·기자협회·인터넷신문협회 등 5개 단체는 8개월 뒤인 지난해 12월8일 선거여론조사보도준칙을 공동으로 제정해 선포했다. 28개 조문으로 구성된 준칙은 총선예측 실패를 개선하기 위해 6개월 간 논의를 거쳐 마련했다. 그러나 준칙에는 ‘주관적 표현 자제’, ‘순위 일변도 보도 지양’처럼 저널리즘 원칙을 강조하는 내용뿐이었다.

중요한건 정확한 여론을 집계하는 ‘조사방법’이다. 총선 예측에 실패했던 여론조사는 조기대선을 앞두고 얼마나 달라졌을까. 답을 듣기 위해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을 지난 6일 만났다. 그는 “총선과 비교했을 때 근본적으로 달라진 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은 언제 ‘여론조사 맹신’을 반성했느냐는 듯 대선후보 여론조사결과를 경쟁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지난 4.13 총선 이후 여론조사를 비판하던 신문보도 갈무리.
지금 나오는 대선후보 여론조사는 믿을 수 있을까.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에 따르면 총선이후 조사업계는 RDD(Random Digit Dialing, 무작위추출 임의번호걸기)기법의 확대적용, 연령·지역·성별 쿼터를 최대한 충족시킴으로서 사후보정가중치 최소화, 선관위 신고를 거쳐 질문구성 등 조사 과정이 엄격해지는 변화는 있었지만 기본적 틀에서 근본적 변화는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총선보다는 대선의 예측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조사업체가 휴대전화 사용자의 지역정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총선에선 가구전화 중심의 조사가 불가피했다. 총선은 국회의원 지역구 254곳으로 나눠 조사하다보니 표본의 대표성에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대선에선 전국이 하나의 선거구여서 100% 휴대전화 RDD조사를 하는데 문제가 없다.”

예컨대 여론조사기관이 보유한 휴대전화 패널이 10만 명이라면 총선은 지역 단위로 쪼개야 하고, 이 경우 지역별 패널 중 응답률이 높은 패널을 위주로 수십 번 조사하다보면 여론과 다른 조사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반면 대선에선 이 같은 위험성이 줄어든다.

총선보다 대선의 예측확률이 높아지는 또 다른 이유는 투표율이다. 선거결과는 ‘투표한 사람들만의’ 여론이다. 총선 투표율은 50%대인데 반해, 대선 투표율은 70%를 상회한다. 여론조사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까지 포함한 지표이기 때문에 투표율이 높을수록 여론조사의 정확도는 높아진다.

▲ 2016년 4·13 총선개표방송 화면 갈무리.
그러나 국가적인 거대 단일 지역구의 투표율 높은 여론조사가 총선보다 정확하다해도 문제는 남는다. 지난해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미국 대선에서 여론조사 예측은 대부분 빗나갔다. 예측 실패는 비단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윤희웅 센터장은 ‘투표의지’(Strength)에 주목한다.

“중요한건 유권자의 투표의지다. 실제 막연한 여론과 달리 투표는 투표장에 직접 나가는 적극적 행동이다. 특정 그룹의 투표의지가 높고 특정 그룹의 투표의지가 낮은 경우 실제 투표에서는 여론조사와 다른 경우가 나타난다. 브렉시트에선 이민자들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생각한 국민들의 투표의지가 높았고 이들의 적극적인 투표 참여가 이어져 여론조사와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미국 대선도 마찬가지다.”

선거는 투표점유율을 높이는 정당 간의 싸움이다. 정치는 투표의지가 높은 유권자를 최대한 많이 조직하는 행위다. 여론조사의 예측도 투표의지가 높은 응답자를 가려내는 작업의 정확성이 관건이다. 물론 지금도 여론조사에선 ‘이번에 투표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적극적 투표 층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결과도 나온다. 그럼에도 예측은 번번이 실패한다. ‘투표의지’가 있는 여론을 예측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윤희웅 제공
윤희웅 센터장은 “‘이번에 투표하시겠습니까’란 질문을 받은 응답자들은 선거에 참여하지 않으면 민주시민이 아니라는 인식이 강해 실제 나갈지 안 나갈지 모르지만 일단 나간다고 응답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투표장에 나갈 생각이 없어도 투표를 하겠다고 답하는 ‘거짓말’을 잡아내기란 쉽지 않다. 응답자가 이전 선거에서 지속적으로 투표를 했었는지를 물어 투표의지를 확인하곤 하지만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투표는 해야 한다’는 일종의 윤리규범이 오히려 ‘투표의지’ 허수를 만들어내 결과적으로 예측을 어렵게 만드는 셈이다.

투표의지는 예측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7월 발표한 20대 총선 투표율 분석에 따르면 2030세대 투표율은 19대 총선에 비해 대폭 상승했다. 20대 전반은 45.4%에서 55.3%로, 20대 후반은 37.9%에서 49.8%로, 30대 전반도 41.8%에서 48.9%로 증가했다. 지난 총선에서 처음 실시된 사전투표도 19세(18.1%)와 20대(17.9%) 등 청년층 참여율이 높았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젊은 층의 높은 투표의지를 사전에 파악해내지 못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은 예측이 더욱 어려운 사회다. 유권자의 특성 때문이다. 윤희웅 센터장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태도가 매우 안정적인 사회일수록 사전조사의 예측성을 높일 수 있지만 한국은 부동층이 많다. 양당제가 오랜 기간 형성된 미국에서도 지난 대선 예측에 실패했다. 한국 유권자의 정당일체감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점은 예측을 더욱 어렵게 한다”고 말했다.

▲ 지난 총선 당시 정세균 후보는 여론조사 결과에 의문을 제기했고, 왜곡임을 증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서울 종로에서 당선됐다.
실제로 대선이 있던 새해 첫 여론조사는 번번이 빗나갔다. 16대 대선이 있던 2002년 새해 여론조사에선 이회창 1위, 이인제 2위, 노무현은 순위권 밖이었다. 이회창은 거의 모든 조사에서 유력한 후보였다. 17대 대선이 있던 2007년 새해 여론조사의 경우도 여권의 유력후보는 고건이었다. 하지만 최종 대선 주자는 정동영이었다. 18대 대선이 있던 2012년 새해 여론조사에선 안철수가 박근혜를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당에 기반하지 않은 여론의 ‘역동성’이 여론조사 예측을 더욱 어렵게 한다.

그럼에도 한국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한 반응도가 매우 높은 ‘여론조사공화국’이다. 윤희웅 센터장은 “정부 결정에 대한 불신이 크다보니 실제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의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대선에서는 여론조사가 사실상 대선 구도 프레임까지 만들고 있다. “순위가 나오면 언론이 보도하고 대중은 상위권 주자에 대한 관심을 강화하며 후발주자들의 미디어 공간은 매우 좁아지는 식”이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는 지금보다 더 완벽하게 이뤄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이에 대한 윤 센터장의 답변은 이랬다.

“여론조사는 지역·연령·성을 고려한 표본 집계가 이뤄지는데, 그 외 사회경제적 요인(직업 등)에 따라서도 정치적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정확성을 높이려면 인구배경학적 요소 외에 사회경제적 요소까지 반영해 표본의 대표성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 모든 걸 고려하기가 어렵다. 여론조사의 3요소는 정확성·신속성·경제성이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적 문제가 있다. 또한 한국은 정치적 역동성이 세계 최고수준이기 때문에 기간을 늘려 응답률을 높이는 경우 급변하는 민심을 읽기 어려워 5일 이상 조사기간을 가져가기 어렵다.”

결국 우리는 대선 여론조사가 총선 여론조사처럼 완벽하지 않다는 당연한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표본 오차에 민감해져야 하고, 순위를 맹신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여론조사를 공세와 방어의 도구로만 이용하는 정치세력을 경계하는 성숙한 뉴스수용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언론은 무분별한 ‘여론조사 받아쓰기’ 대신, 여론조사가 확인할 수 없는 밑바닥 민심을 훑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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