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 PC’를 두고 검찰 측과 끊임없는 공방전을 치르고 있는 최순실씨가 ‘태블릿 PC 전문가’라며 우익 논객 변희재씨를 재판 증인으로 신청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자신의 업무수첩 사본 증거 채택을 일절 부동의한 가운데, 국정농단 혐의자들이 핵심 물증을 부정함으로써 논란의 본질을 호도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근헤 정부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으로 지목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순실씨(60·최서원으로 개명) 변호인단은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에 변희재씨를 비롯해 미르재단 임직원, 더플레이그라운드 등 최씨의 차명회사 임직원 등이 포함된 증인 9명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부는 11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2회 공판을 열며 이같이 밝혔다.

재판부는 이 중 7명에 한해서만 “증인신문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며 신청을 받아들였다. 채택되지 않은 나머지 2명은 태블릿 PC의 증거능력 규명을 위한 증인인 변희재씨(42)와 김아무개씨다.

재판부에 따르면 최씨 측 변호인은 “태블릿 PC 전문가로 태블릿 PC의 진정성에 대해 신문하겠다”는 취지로 변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익명으로 신청된 김씨의 경우 변호인은 “PC의 실제 소유자가 누구인지 신문하고 싶다”는 취지를 밝혔다.

재판부는 제1회 공판준비기일부터 태블릿 PC 감정신청 등 해당 증거의 증거능력을 검증하려는 최씨 측 요청을 보류해왔다. 최씨 측 혐의와 관련이 없는 증거라는 이유에서였다. 태블릿 PC에 저장된 파일 등은 피고인 정호성의 공무상비밀누설죄에 적용된 증거다.

▲ 1월10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태블릿PC조작 진상규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에서 변희재 미디어워치 전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JTBC가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증거물로 제시한 태블릿PC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며 이에 따른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재판부는 이번에도 변씨 및 김씨에 대한 증인신청을 보류했다. 김세윤 부장판사는 11일 최씨 측 증인 신청에 대해 “정호성 피고인의 증거조사 과정에서 그 부분이 다투어지고 증인 신문이 이뤄질 것”이라며 “2명에 대해선 이를 지켜 본 다음 채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최씨의 법률대리인 최광휴 변호사(법무법인 지원)는 증인신청과 함께 태블릿 PC에 대한 증거 감정을 요청하는 의견서도 제출했다.

최씨 측이 변씨를 증인으로 신청한 이유는 법정에서 태블릿 PC 조작설을 이끌어내 증거 능력을 부정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변씨는 지난해 10월 JTBC가 태블릿 PC를 입수해 최씨의 국정개입 사실을 폭로하면서부터 태블릿 PC가 조작됐다고 주장해왔다.

변씨는 지난해 12월22일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과 새로운한국을위한국민운동이 주최한 ‘대통령 탄핵사유에 관한 국민 대공청회’에서 “우리는 (현 상황을) 손석희 게이트로 명명했고 (미디어워치 2017년 1월호) 3분의2를 태블릿PC 조작으로 채웠다. 의혹이 아니라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변씨는 ‘최씨의 PC라면 최순실씨 외조카 이모씨가 아니라 딸 정유라씨 사진이 있었어야 하는데 없다’거나 ‘독일 승마장 사진이나 정유라씨 승마장 사진도 없으니 최순실씨의 태블릿PC가 아니’라는 취지의 근거를 제시했다.

변씨는 JTBC의 태블릿PC 관련 첫 보도에서 나온 카카오톡 그래픽 화면에서 말풍선의 위치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태블릿PC) 화면을 그대로 베껴서 (그래픽으로) 그리다가 똑같이 만든 것이다. 이 카톡만 보면 (태블릿PC)는 김한수(태블릿PC 명의자) 꺼다. 완전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변씨가 ‘태블릿 PC 전문가’라고 밝혔으나 변씨의 주장은 전문적 지식에 근거했다고 보기 어렵다. 변씨의 문제제기는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제시한 근거를 반박할 수 없다. 특수본은 최씨가 태블릿PC이 실사용자라는 근거로 △최씨가 독일을 방문한 시점(2012년 7월14~29일, 2013년 7월28일~8월7일)에 이동통신업체에서 보낸 독일 내 로밍요금 안내 메시지 △외교통상부가 발신한 영사콜센터 안내 문자 등이 해당 태블릿PC 수신에 수신됐다는 점 △최씨가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2012년 8월14~16일) 조카 장시호씨가 보유한 서귀포 빌라 인근에서도 태블릿PC가 사용된 기록 등을 댔다.

한편 안종범 전 수석 측은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17권이 사본으로 제출된 검찰 측 증거에 부동의했다. “본인 수첩의 사본인데 어떤 취지로 부인하는 것이냐”는 재판부의 물음에 홍영권 변호사(법무법인 평정)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면서 “예비적으로는 내용을 부인하는 취지”라고 밝혔다.

검찰은 “자필 기재 수첩을 (증거로) 부동의한 경우는 처음 본다”며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김민형 검사는 “안 전 수석은 업무수첩을 모두 자필로 기재했고 대통령 지시를 받아적은 것이라 진술했다. 그 (수사)과정에서 변호인이 많게는 4명이 입회하기도 했고 조서 열람도 한자 한자 꼼꼼히 열람해 2시간이 걸린 적도 있었다”면서 “국조특위 의원들이 남부구치소를 방문했고 (안 전 수석은) 그 자리에서 수첩에 대통령 지시사항을 받아적었다고 인정했다. 피고인 변호인도 변호인 의견서에 수첩 중 일부를 발췌해 반영했다”고 반박했다.

김 검사는 이어 “대통령에 불리한 증거가 이 법정에서 제출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라면서 “최씨는 수첩에 대해 감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더니 지금은 안 전 수석이 수첩을 부동의한다. 피고인 안 전 수석의 판단이겠느냐. 법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주장의 배후에는 대통령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검사의 반론 제기로 검찰과 변호인 간 공방전이 격화됐던 가운데, 최씨의 변호인 이경재 변호사는 “한 시대 획을 긋는 재판이다. 여기 앉은 검찰의 열의를 이해한다”며 “그러나 실체적 진실을 가려야 하는 법정에서 막연한 추측을 들어, 변호인들이 사전 연락해서 탄핵을 지연시키기 위해 하는 거 아니냐는 감정섞인 제기는 우려스럽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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