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N(Multi Channel Network, 다중채널네트워크)은 여전히 생소하다. “MCM 가방 짝퉁?”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의미가 모바일 콘텐츠 전반으로 확대되고,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수익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한 행사에서 “MCN 금이냐 꽝이냐”는 주제로 대담을 연 이유다. 그럼에도 척박한 시장을 개척하는 사업자와 크리에이터들이 있다. 미디어오늘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MCN의 콘텐츠·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고민과 노하우를 듣는다.

“돈 안 되는 MCN? 이미 멀티 커머스 네트워크다”(이은영 SMC TV 부사장)
“지상파스럽다고? 같은 칼로 요리, 그릇이 달라졌을 뿐”(박재용 SBS 모바일제작사업팀장)
한 연예인 필라테스 강의 120만 클릭의 비밀은(박성조 글랜스TV 대표)
“아저씨들 팟캐스트? 20대들에겐 안 먹힙니다”(국범근 쥐픽쳐스 대표)
“MCN, 장르 확장이 곧 수익모델 확대”(유진희 MCN협회 사무국장)
⑥ 지금 유튜브에선 뽀통령 대신 '라임튜브'(길기홍 라임튜브 운영자)

“아이 참, 갑자기 판매자가 오늘 못 온다고 하네요.” 불과 2시간 앞두고 촬영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 인기 웹예능 콘텐츠 ‘연예인 중고나라 체험기’촬영에는 돌발 상황이 잦다. 연예인이 중고나라에 올라온 자신의 앨범을 직접 구매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몰래카메라를 하는 콘셉트인데, 판매자가 거래에 응하지 않거나 일정을 바꾸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택시비를 줄테니 와 달라. 오늘 꼭 사야겠다”는 제작진의 회유가 성공해 예정대로 진행됐다. 

거래는 지난해 12월20일 오후 8시40분에 이뤄질 계획이었다. 장소는 홍대입구역 인근 카페. 오후 7시30분부터 제작진은 카페 카운터와 천장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테이블 곳곳에 파란색 상자가 놓여 있었다. 외부에선 내부가 안 보이지만 내부에선 외부를 볼 수 있는 함에 핸디캠을 넣었다. 카메라가 달린 안경 등 온갖 장비가 세팅됐다. 8시20분 산이가 나타났다. 그는 한 스탭과 똑같은 차림으로 검은 옷에 마스크를 끼고 모자, 안경을 쓰고 대기했다. 8시37분. “슬슬 나갈 사람 나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8시50분이 조금 넘자 여성 판매자가 카페에 입장했다. 자리에 앉은 판매자는 산이 미니앨범 2장과 정규앨범 1장 등 총 3장의 앨범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가격은 7만 원. 스탭은 급작스럽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선 자리를 뜨고 똑같이 분장한 산이가 입장했다. 마스크와 안경 때문에 판매자는 산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산이는 태연하게 “산이 노래 중에 뭐 좋아하세요? ‘아는 사람 얘기’ 좋아하세요?”라고 물었고, 랩을 하면서 정체를 드러냈다.

▲ 지난해 12월20일 '연예인 중고나라 체험기' 산이편 촬영현장.

산이는 “(앨범을) 뜯지도 않았네. 대박이다. 왜 파는거야, 파는 이유가 뭐야”라고 웃으며 다그쳤고 판매자는 “죄송해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산이는 촬영이 끝나고 “민망한 상황이었다”면서 “그래도 판매자가 착했다. 하하형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이라고 말했다. 하하편에서는 하하의 싸인CD를 판매한 시민이 “이 CD필요 없어요” “하하 별로 안 좋아해요”라고 말해 당황스럽게 했다. 이날 촬영은 세팅부터 종료까지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모바일은 퀄리티보다 스피드, 방송사 시스템은 느려”

다음날 오후 홍대 인근에 위치한 모모콘(MORE THAN MOBILE CONTENTS) 사무실에서 만난 모모콘의 이재국 기획본부장은 “‘연예인 중고나라 체험기’는 방송사에서 선보이기 힘든 기동성 있는 콘텐츠”라고 평가했다. 그는 방송계에서 잔뼈가 굵은 작가다. ‘SNL KOREA 시즌2’가 대표작이고 현재는 SBS 라디오 ‘김창렬의 올드스쿨’ 작가로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뮤지컬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을 집필했다.

“방송사에서 일하다 보면 ‘트렌드에 맞는 신선한 아이템’이 떠오른다. 그러면 CP(Chief Producer, 책임 프로듀서)까지 올라가는데 1~2주 걸리고, 본부장한테 허락을 받는데 길면 2달까지 걸린다. 다시 돌아온 기획안은 초안과 달리 온갖 양념이 들어가고 ‘너덜너덜’해진다. 내용도 문제지만 그 기간 동안 트렌드는 바뀐다. 이런 경험을 하다 보니 우리는 기동성이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이재국 모모콘 기획본부장. 사진=금준경 기자.

모모콘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1주일 안에 콘텐츠 제작을 끝낸다. 이 본부장은 “우리는 음향, 조명, 세트에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면 ‘헤비’해진다. PD들이 직접 카메라 들고 나가서 찍는다. 모바일은 퀄리티보다는 스피드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방송사를 비판만 하려는 게 아니라 우리는 모바일 콘텐츠 노하우를 쌓고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방송 콘텐츠의 체질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유홍석 모모콘 제작본부장은 편집과정에서의 차이를 강조했다. 그는 KBS ‘스펀지2.0’, ‘생생정보통’ ‘VJ특공대’ 등의 외주제작을 주로 해왔다. 지금은 모바일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다. 그는 “방송은 60~100분이라는 시간을 정해놓고 콘텐츠를 늘리다보니 재미있는 포인트를 놓치고 늘어지는 반면 모바일 콘텐츠는 분량 자체가 짧다보니 편집 포인트가 정확해 엑기스를 뽑기 수월하다”고 했다.

이 본부장이 거들었다. “기차나 비행기에서 10대들을 관찰하면 ‘무한도전’이나 ‘아는 형님’ 같은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지루해서 계속 손으로 넘긴다. 이렇게 미디어를 소비하는 세대에겐 방송분량을 지키는 게 아니라 함축해서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게 먹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영상이라고 해서 인터넷에 있는 클립영상과 같은 개념은 아니다. 맥락 없이 재미있는 하이라이트만 잘라 넣어서는 팬을 확보하기 힘들다. 짧지만 일반 스낵컬쳐처럼 3~5분 분량이 아니라 10분가량으로 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 본부장은 “짧더라도 스토리를 담는 게 중요하다. 기승전결이 있고, 깔끔하게 하나의 스토리를 본 느낌을 줘야 더욱 재미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크리에이터 대신 연예인? “판을 키우는 방법”

MCN은 일반적으로 크리에이터 중심의 콘텐츠가 많지만 모모콘은 연예인 중심의 콘텐츠를 만든다. 대표작인 ‘연예인 중고나라 체험기’와 ‘블랙박스 라이브’ 모두 연예인이 출연한다.

이 본부장은 “크리에이터들이 만든 기발한 콘텐츠들도 중요하다”면서도 “다만, 연예인이 이 시장에 오지 않으면 시장이 커지는 데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케이블과 종편이 언제 성장했나. 스타들이 건너가면서 시장이 커졌다. 유재석과 강호동 같은 스타들이 종편의 성장을 견인하기도 했다. 모바일 역시 연예인이 출연하면서 ‘여기도 시장이 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일방적으로 연예인을 원하면 콘텐츠를 만들기 쉽지 않겠지만, 모바일 콘텐츠는 연예인에게도 매력적인 시장이 되고 있다. “하하씨가 그러더라. 형 이슬라이브(가수가 술자리에서 노래하는 콘셉트의 ‘딩고’ 콘텐츠)는 가수들에게 상징적인 거야. 여기에 나오면 실력이 있다는 의미거든.” 이 본부장은 “우리 콘텐츠에 출연했다는 건 팬을 충분히 확보한 인기 연예인이라는 의미가 됐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 '연예인 중고직거래 체험기' 하하편.

모모콘은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연예인의 만족도를 고려한다. 이 본부장은 “물건을 팔고 ‘탈덕’을 하려는 팬을 스타가 만나고 만류한다는 점이 연예인에게도 어필이 됐다”고 말했다. 스타들이 직접 팬과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 힘든 상황에서 ‘왜 자신을 잊으려고 하는지’를 들어보는 게 연예인에게도 좋은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특히 가수 바다편은 촬영을 오래했다. 30분이면 촬영이 끝나는데 바다씨는 팬과 계속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다.” 이 본부장에 따르면 바다는 “처음에는 SES 20주년 앞두고, 이미 끝난 그룹인데 괜한 추억을 꺼내는 거 아니냐는 고민이 있었는데 팬을 만나고 용기를 얻었다”고 제작진에 전했다. 임창정은 실제로 친하게 지냈던 팬을 만났다. 이 팬은 “백수라서 돈이 없다”면서 앨범을 파는 이유를 밝혔다. 임창정씨는 “잊고 지냈던 팬의 삶을 생각하게 돼서 좋았다”는 평을 남겼다.

다만, 모바일 콘텐츠의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매주 연예인을 출연시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제작비 문제다. 이 본부장은 “일반적으로 촬영시간이 짧아 출연료가 많지 않고, 연예인이 먼저 도전하고 싶어 하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출연료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방송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섭외는 오히려 수월하다”면서 “모바일 시장은 조회 수가 정확히 나온다는 점에서도 연예인들이 만족한다. 서로 ‘니즈’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은 독자에게 말을 건네야 한다”

모모콘의 대표작인 ‘연예인 중고나라 체험기’와 ‘블랙박스 라이브’는 공통적으로 일반인이 출연한다. 블랙박스 라이브는 ‘내 애인 차량에 테이가 왔으면 좋겠어요’라는 식으로 사연을 보내면 블랙박스 앞에서 몰래 라이브를 하고 떠나는 형식이다. 이 본부장은 ‘블랙박스 라이브’를 두고 “독자들과 소통하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며 독자의 관여를 강조한 뒤 이렇게 말했다.

▲ 블랙박스 라이브 비와이편 화면 갈무리.

“왜 10대가 아프리카TV에,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열광하는가.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0대들이 방탄소년단 CD를 팔면, ‘방탄이 내게 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스튜디오에서 노래하는 건 나한테 일어나는 일이 아니지만, ‘혹시 내 블랙박스에 영상이 찍혀있는 건 아닐까’하는 기대도 든다. 우리는 매주 누군가를 찾아가고, 너희에게도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간다는 메시지를 주는 거다. 다른 곳보다 우리가 관리하는 페이지의 피드량이 많은 것도 우리가 최대한 많이 답글을 달면서 그런 기대감을 높이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맞는 플랫폼을 찾는 것도 소통의 과정이다. 이 본부장은 “10대에게 우리 콘텐츠를 알리고 플랫폼 테스트도 해볼겸 도티(10대에게 게임방송으로 인기가 많은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협업을 제안했다. 콘텐츠를 만들어 네이버에 먼저 올렸더니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네이버에서는 ‘도티가 뭔가요?’ ‘얘 누구야?’라는 댓글이 달렸고 조회수도 저조했다. 반면 유튜브에서는 100만 조회수를 넘겼다. “유튜브는 댓글이 너무 많아서 읽다가 지칠 정도였다.”

“브랜디드 콘텐츠는 결국 광고, 콘텐츠 포맷을 키워야”

‘연예인 중고나라 체험기’는 원래 ‘연예인 중고직거래 체험기’였다. 중고나라에서 협찬 제안이 들어오면서 프로그램 이름을 바꾸게 됐다. “중고나라에서는 워낙 사건사고가 많다보니 검색하면 ‘사기’가 연관검색어로 뜰 정도다. 이미지 제고가 필요했는데, 우리 방송이 나간 이후 연관검색어가 하하 등 연예인 이름이 됐다. 또, 10대에게는 유명하지 않은 사이트이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알릴 필요성도 있었다. 중고나라에서도 TV광고보다 이게 더 효과적이라고 좋아하더라.” 이 본부장의 말이다,

그러나 콘셉트에 맞지 않는 과도한 브랜디드 콘텐츠는 지양하고 있다. “중고나라 체험기가 뜨니까 여러차례 브랜디드 콘텐츠 요청이 왔는데, 결국 광고이기 때문에 콘텐츠의 생명력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차라리 하나의 예능 포맷을 만들고 이게 성공하면 PPL이 붙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콘텐츠에 집중하고, 나중에 광고를 많이 붙이는 것, 또 포맷을 수출하는 게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본다.”

MCN사업자가 대개 그렇듯 아직까지 수익모델이 확보된 건 아니다. 중국 현지와 몇 차례 논의가 오갔지만 사드배치 결정 이후 감감무소식이다. 이 본부장은 “그래도 음악 콘텐츠는 ‘딩고’가 잘 만들고 드라마는 ‘72초TV’가 잘 만들고, 예능은 우리가 잘 만든다는 점을 충분이 알린 한 해가 됐다”면서 “이대로 콘텐츠를 더 키우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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