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 청소년 단체는 실험에 나섰다. 당시 2002년 12월19일은 16대 대선이 있던 날이다. ‘낮추자’라는 이름의 18세 선거권 운동 단체는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들의 대통령 모의선거를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병행했다. 청소년들만의 대선 결과,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회창 후보의 1·2순위는 실제 대선 결과와 동등했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제 득표율인 48.9%와는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았다.

이들의 실험은 한 가지의 유의미한 시사점을 남겼다. 참정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실제로 대선 때 표를 던지게 된다면, 일부 ‘어른’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어른들과 특별하게 다른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가능성이다. 일각에서 지적하듯 ‘미성숙한’ 존재라고 평가받는 청소년들이 실제로 투표권을 손에 쥘 경우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는 19세 이상 다수의 어른들과 비슷한 판단을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만 18세가 이번 조기대선에서도 투표를 할 수 있다면 결과를 좌우할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까.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선거권을 만 18세에게도 줘야 한다는 논의에 불이 붙고 있다. 조기 대선 국면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가운데 야권을 중심으로 선거권의 18세로의 인하 공약이 속속 등장하는 모습이다.

지난 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선거법심사소위를 열고 선거 연령을 현행 만 19세에서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일부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이 향후 안행위 전체회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올해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서도 만 18세의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1월 임시국회에서 공통적으로 선거연령 18세로 하향조정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다만 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새누리당의 반대를 뚫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남아있다. 새누리당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신중하게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특히 ‘교실의 정치화’를 반대 근거로 제시한다. 전교조 등 ‘좌파 성향’ 교사들이 학생들을 선동해 결과를 좌우하려 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이다.

바른정당 역시 미적지근한 반응이긴 마찬가지다. 바른정당은 선거연령 18세 하향 조정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가 일부 의원들이 반대하자 이튿날 입장을 철회하기도 했다. 바른정당 권성동 의원은 “고3을 무슨 선거판에 끌어들이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지”라며 반대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다만 바른정당은 이를 개혁입법 의제 중 하나로 채택하면서 다시 긍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일반적으로 새누리당 등 보수세력이 선거연령 하향 조정에 반대하는 이유로 꼽히는 것은 젊은 세대의 야권성향이다. 통상적으로 젊은 세대일수록 야권을 지지하는 경향이 높다. 또한 대선뿐만아니라 총선 등에서도 젊은 층의 확대는 야권에 더욱 유리할 수 있다. 특히 수도권은 지금도 근소한 차로 당선이 갈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유철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역시 “수도권에서는 18세 선거연령 인하는 파장이 너무 커 수용이 어렵다”며 “수도권에선 오차 범위 내 박빙의 초접전 지역이 대부분인데 선거연령을 줄이는 것은 부담스러운 제안”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만약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1월 임시국회를 통과하게 되면 조기대선부터 투표권을 갖게 되는 이들은 약 62만명 정도다. 2002년 당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 간 득표수 차이는 약 57만표였다.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 간 득표수 차이는 이보다 더 적은 약 39만표에 불과했다. 오는 조기 대선 국면에서 약 62만명의 18세가 표를 던지게 될 경우 대선 향방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의 표가 늘어난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보수 정당의 경직된 태도는 이러한 가능성에 근거한다.

▲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가 지난해11월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18세 선거 연령 인하 현판식 후 관계자들과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실제로 야권에 유리할까. 당장 올해 치러질 조기대선 국면에서는 야권에 유리하다는 분석은 가능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가장 젊은 층을 분노케 했던 정유라에 대한 이화여대 입학 및 학사 특혜 때문이다. 일반적인 청년들과 달리 노력 없이 일류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던 ‘금수저’ 정유라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셈이다. 또한 국정농단과 연루된 박근혜 대통령의 정책이 실제로 국정교과서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에게 직접 영향을 끼친다는 데에 대한 반발심에서도 이들은 거리에 나섰다.

지난해 3일 열린 촛불집회에서는 ‘박근혜 하야 전국 청소년 비상행동’ 소속 청소년 200여명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즉각 하야를 요구하기도 했다. 강원도 홍천에서 온 홍천여고 3학년 용경진씨는 “우리에게 바랄 것이 있나. 안정된 일자리를 바라지 못하는 사회다. 노력이 보답받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 무기력함을 더 이상은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국선언을 통해 “교육의 주체인 청소년들과 국민들이 반대한 국정교과서가 지난 월요일 발표되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독재자를 위한 찬가를 방불케하는 왜곡되고 편향된 역사를 보이고 있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선거연령 하향 조정으로 인한 정치권의 유불리를 일률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지금 국면에서는 야권에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촛불집회를 보면 젊은 층의 분노가 상당히 분출되는 모습이었고, 특히 정유라 특혜입학 사태에는 대학생뿐만아니라 청소년들까지 상당히 분노했다. 여당 등 보수정당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실제 대선 결과에 따르면 만 19세의 경우 20대보다도 투표율이 높은 결과가 나온 바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2007년 17대 대통령 선거 당시 만 19세의 투표율은 54.2%,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때는 74%였다. 20대의 투표율이 각각 46.6%, 68.5%였던 것을 고려해볼 때 20대보다도 첫 투표참여층이 더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한다는 경향도 포착된다.

다만 특정 연령에 대해 투표 성향을 유형화하기에는 빈틈이 많다. 표본도 매우 적기 때문에 특정 성향을 분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19세 등 특정 연령만 두고 정치 성향과 정책 찬반 등 여론조사를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20대 초반 연령대 등 처음 투표에 참여하는 경우 야당에 표를 던지는 경향이 있으며 해외에서도 젊은 층의 투표가 급진 정당에 유리한 경향이 있다”면서도 “현재 만 18세가 어떤 경향이 있는지 유의미한 통계를 뽑아낼 수 없다. 선거연령 인하로 인해 단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야권에 유리한지를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인 지난해4월13일 춘천시 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소중한 한 표를 투표함에 넣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실제로 일본의 경우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부터 선거 연령을 만 20세에서 18세로 낮춰 적용한 바 있다. 이때 참의원 선거에서 만 18세~19세 투표율은 46.78%로, 전체 연령의 평균 유권자 투표율보다 약 8%p 낮았다. 올해 조기대선에서 만 18세가 투표권을 갖게 됐을 때 이들이 적극적인 투표를 행사할 것인지도 단정지을 수 없다.

안보 등 일부 이슈에서는 20대가 보수적인 성향을 갖는다는 점도 18세가 투표에서 미칠 영향을 단정지을 수 없는 요인이 된다. 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장도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새누리당 일부에서도 만 18세면 해볼만 하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청소년들이 생각보다 보수적이다. (조기 대선에서 누구한테 유리할지는) 결국 뚜껑을 열어봐야 아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선거 연령 인하 이슈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유불리 문제로만 비춰지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본질은 나이를 기준으로 국민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며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그 다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건희 소장은 “정치 유불리에 따라 추진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의 삶과 삶에 영향을 미칠 정책을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투표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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