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숙하고 불완전하다. 그러므로 학교와 가정의 보호가 필요하다. 공부에만 집중해라. 청소년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4년 “19세 미만인 미성년자는 개인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아직 정치적·사회적 시각을 형성하는 과정에 있거나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현실적으로 부모나 교사 등 보호자에게 어느 정도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선거연령 제한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는 외국과 비교해도 이례적이다. 세계 232개국 중 215개국에서 선거 가능 연령을 18세로 정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국가들을 따져봐도 유일하게 선거연령이 19세인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32개국은 18세부터 선거권을 갖도록 했다. 오스트리아는 심지어 16세부터 투표가 가능하다. 선거권을 ‘미성숙한’ 18세에게 줄 수 없다는 주장은 절대적인 근거와 기준이 아닌 한국 사회의 청소년에 대한 편견에 기댄 주장인 셈이다.

미디어오늘은 9일 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장(46)과 전화로 만 18세로의 선거연령 하향 조정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 소장은 지난해 9월부터 출범한 ‘18세 선거권 공동행동네트워크’의 실무책임자다. ‘18세 선거권 공동행동 네트워크’는 청소년 참정권 확대를 꿈꾸는 전국 139개 기관 및 단체가 모인 네트워크 조직이다.

▲ 정건희 청소년자치연구소장.
-요즘 정치권에서 만 18세로의 선거연령 하향 조정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왜 만18세로 선거연령 하향 조정이 필요할까.

“나는 18세 뿐만아니라 10대 초반이라도 참정권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청소년도 시민이고, 시민이라면 당연히 자신의 삶과 여러 상황에 대한 선택의 자유가 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자신만의 입장과 생각이 있고, 자기 삶에 대한 고민이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든지 참정권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나이를 기준으로 이를 제한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10대부터 참정권을 가져야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과 자신의 의견을 정책에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고민할 줄 아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대중문화나 부모·어른들의 영향을 많이 받고 정치적 판단을 스스로 할 수 없는 미성숙한 존재이기 때문에 선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사례를 한 가지 들어보겠다. 최근 박사모 카페에 박근혜 대통령이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썼던 편지를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쓴 편지인 것처럼 누군가 올린 적이 있다. ‘빨갱이’부터 시작해서 욕이란 욕은 다 올라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쓴 것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욕이 일부 지워졌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소신이나 신념이 미성숙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선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생각일까. 일부 어른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 말이 맞다면 고령자는 치매로 판단력이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연령 상한 제한도 두는 게 맞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현병, 정신분열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진짜 그렇게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청소년들이 미성숙하다는 과학적 근거도 없는데다 미성숙하다며 선거권에 제한을 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 박근혜 하야 전국청소년비상행동 소속 학생들이 지난8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만 16세 선거권 부여를 요구하는 '세월호 진상규명, 세월호 세대의 투표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일각에서는 고등학교 3학년생인 만18세도 투표하게 되면 교육현장이 정치화될 수 있다는 지적을 한다.

“정치화를 문제로 삼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화돼야 한다. 독일 같은 경우는 10대 청소년들이 정당 가입하고 정당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독일에는 19세 국회의원인 안나 뤼어만이 있었다. 안나 뤼어만은 10대 초반에 녹색당에 가입해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정당 활동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세우고 환경 문제에 대해 지적하고 청소년의 입장도 대변하는, 소위 우리나라 사람들 표현대로 ‘정치화’된 것이다.

이런 활동들은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들이다. 우리나라는 10대까지 입시공부 말고는 아무 것도 못하게 하지 않나. 그래놓고 20대가 되면 갑자기 정치에 관심갖고 사회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가지라고 한다. 대학 가는 공부가 (10대에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아주 무식한 소리 아닌가.

우리 사회가 지금처럼 진보와 보수로 분열하고 생각없이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현상은 오히려 어릴 때부터 정당 가입도 해보고 정치적 고민을 해보는 ‘정치화’ 과정을 겪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시민으로서 정치적 신념을 갖는 것과 종교성향을 갖듯 지지하는 것이랑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민법상 의무와 책임을 지게 되는 성년 기준은 만 19세인데, 여기에도 사람은 19세로 성년에 이르게 된다는 조항이 있다. 민법에 따라 성년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갖지 않는 만 18세가 투표를 하는 것이 정당한지를 묻는 주장도 있다.

“현행 법을 들여다보면 청소년의 기준이 되는 나이는 법마다 다 다르다. 청소년기본법에서는 청소년을 9세 이상 24세 이하인 사람으로 규정한다. 아동복지법에서의 아동은 18세 미만인 사람이다. 형법상 형사책임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의 경우 10세 이상 14세 미만으로 규정한다.

법은 바꾸면 된다. (청소년의 투표권을 제한하는) 법도 법으로 그렇게 정했기 때문에 만19세 이상이 돼야 투표가 가능한 것이다. 그 법이 (청소년의 참정권을 제한하므로) 잘못됐기 때문에 바꾸자는 건데, 다른 법을 기준으로 만 18세 인하가 안 맞다고 하는 건 적절한 주장이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청소년과 청년의 나이도 명확히 구분이 안 돼있거나 법마다 기준이 다 다르다는 점 등 복잡한 부분은 점차 개선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일부 여론조사에서 청소년 스스로도 선거권을 청소년에게 주면 안된다고 보는 입장도 적지 않다. 젊은 층들도 투표에 잘 참여하지 않는 경향도 있는데 굳이 선거연령 하향 조정이 필요하냐는 주장도 나온다.

(대구 청소년 단체인 청소년교육문화공동체 반딧불이가 지난해 5월21일부터 6월11일까지 청소년 선거권·정치참여 인식에 대한 온·오프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체 응답자 668명 중 청소년이라고 응답한 만 8~18세는 582명이었으며 만 19세 이상 성인은 86명이었다. 조사 결과 57%인 331명이 선거권 연령 기준을 낮춰야 한다고 답했다. 다만 적지 않은 수인 43%(251명)가 선거연령을 유지하거나 높여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다. 이에 동의한 이들의 다수인 191명은 ‘어리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를 꼽았다.)

“기성세대도 아마 찬반비율이 반반 정도로 나올 것이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지난 4일 하루 동안 전국 19세 이상 504명을 대상으로 선거 연령 하향 조정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찬성한다는 응답이 46.0%, 반대한다는 응답이 48.1%로 오차범위 내에서 입장이 팽팽하게 갈리는 모습이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학교에서의 체벌이 필요한지를 두고 청소년들에게 찬반 입장을 물어보면, 당사자이니까 90% 이상이 체벌 금지에 찬성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청소년들 중에서도 ‘맞아야 한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30~40%에 이른다. 청소년들도 사회로부터 경험한 폭력이 체화된 것이다.

참정권이 굳이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청소년들도 이와 비슷하다. 사회 통념 안에서 언론, 혹은 주변 어른들로부터 ‘너네는 미성숙하고 어리니까 가만히 있어’라고 들어왔던 이야기들이 경험으로 쌓인 것이다.

최근에 청소년들과 함께 참정권 문제를 두고 토론하다가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왜 참정권을 청소년에게 강요하냐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그대로 감옥에 남아있겠다는 말로 들린다. 20대 젊은 층의 투표참여가 60대 이상보다 많이 낮은 경향이 있다 하더라도 권리가 주어진 상태에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것과 투표권 자체를 통제당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선거 연령 하향 조정이 이뤄지면 함께 달라져야 하는 부분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맞다. 선거권 뿐만아니라 피선거권, 정당가입 등 청소년들이 (실질적인 정치참여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현재는 정당가입은 만19세 이상이 돼야 할 수 있고, 피선거권은 국회의원의 경우 만 25세가 돼야 얻을 수 있다. 다만 지난 9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거친 만18세로의 선거연령 하향 조정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정당가입 연령도 함께 만18세로 낮아진다. 다만 국회의원 피선거권은 여전히 만25세로 유지된다.)

여기에 덧붙여 야간 자율학습이나 학원가는 시간 등에 구애받아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투표를 못하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관련 정책을 통해서도 보완해야 할 것이다.“

-만18세가 투표할 수 있게 되면 생기는 변화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20세 이상 성인 기준의 정치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만약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선거를 할 수 있게 되면, 이들이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대선부터 시작해서 유권자로서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도 정책 입안 과정에) 당사자인 10대 청소년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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