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지난해 12월 초 국회를 통과한 ‘2017년 예산’에 대해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대부분 언론에서도 ‘슈퍼 예산’이라고 말했는데, 불과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예산이 부족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을 듣고 있으니 말이다. 둘 중 한 쪽은 거짓말을 했거나 기사를 잘 못 쓴 것이다. 미리 밝혀두면 <한겨레>는 2017년 예산을 ‘슈퍼 예산’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긴축 예산’이라고 썼다.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로 발령받아 정부세종청사로 내려온지 근 3년이 다 돼 간다. 기재부는 경제정책의 총사령탑인 덕택에 기자가 파악해야할 사안이 한 둘이 아니다. 국제금융·국내 경제정책·공공기관 관리·산업정책 등등. 아마도 기재부 담당 기자가 경제 담당 기자 중 취재 영역이 가장 넓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영역은 세금과 지출을 포괄하는 재정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재정 정책의 중요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커졌다. 민간 부문의 활력이 크게 줄어든 탓에 재정이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이 어느 때보다 확대된 탓이다. 2013년 4분기에 성장률이 급격히 고꾸러 졌는데, 이는 세수 추계 실패에 따른 재정 절벽이 가져온 결과였다. 지난해 재정의 성장 기여도가 사상 최고치로 집계될 예정인데서도 보듯, 재정 정책의 실패는 일자리·가계 및 기업 소득 전반에 충격을 준다.

3년 간을 되짚어보면 재정정책만큼 거짓말과 꼼수, 그리고 무지가 판을 치는 영역은 없는 것 같다. 정부를 감시해야 하는 정치권이나 미디어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4년간 3번이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할 정도로 재정정책이 엉터리였던 데는 정부 뿐만 아니라 국회와 미디어에도 그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가끔 정부의 꼼수나 거짓말을 헤집고 들어오는 기자들이 있다.

지난해 10월10일 예산담당을 하는 송언석 기획재정부 2차관의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당시는 일부 언론이 지칭한 ‘슈퍼 예산안’에 대한 국회의 심의가 한창 진행될 때다. 당시 한 후배 기자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내년에 추경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본예산안이 막 심의 절차에 들어간 마당에 추경을 거론하다보니 그 맥락을 알길 없는 다수의 기자들은 어리둥절해 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한 듯한 송 차관은 “누가 내년에 추경을 한다고 하던가요?”라고 퉁치고 넘어갔다. 그로부터 2개월 남짓 지난 현재 추경은 편성 시기의 문제가 됐다.

진실은 뭘까. 내년 예산은 일단 사상 최대 수준이며,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지난해 예산 규모보다는 2조원 남짓, 비율로는 0.5%만 늘었다. 사상 최대수준이며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어선 것은 맞으나, 증가폭은 매우 미미했다는 것이다. 올해 명목성장률이 3%는 웃돌 것인데, 불어나는 경제 규모의 반의 반만큼도 재정 지출을 늘리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슈퍼예산이란 명명은 경제적으로 그다지 의미없는 단순 숫자 놀음에만 매몰된 데 따른 것이다.

사실 정부는 수년째 긴축 예산 편성→재정 조기집행·공기업 투자 확대→추경 편성의 수순을 반복해왔다. 최근 기재부가 발표한 업무보고나 지난해 말 내놓은 ‘경제정책방향’의 핵심 내용도 재정 조기집행과 공기업 투자 확대이다. 국회 논의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현재로선 올해 2~3분기 중에 추경 편성이 이뤄지면, 앞서 말한 그 수순을 다시 한 번 밟는 꼴이된다.

기형적 재정운용이 연례 행사가 된 이유는 뭘까. 나는 ‘빚 강박증’과 ‘정부 불신’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세수 확충 없이 지출을 늘리면 국가채무가 증가한다. 국가채무 증가에 대해 국내 여론은 매우 부정적인데, 그 이유는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증세 반대 여론이 높은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내가 낸 세금이 새지 않고 제대로만 쓰인다면 누구든 더 많은 세금을 내려 할 것이며, 필요하다면 지출 확대를 위해 얼마간의 빚을 내더라도 국민은 동의할 것이다.

▲ 김경락 한겨레 기자
그렇다고 정부가 신뢰를 얻을 때까지 증세도 하면 안되고 빚을 늘려선 안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정부와 정치권이 먼저 증세를 이야기하고, 재정 지출 확장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게 어쩌면 좀더 신뢰를 얻는 길일 수 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좋다는 말이 있듯이 반대 여론이 무서워서 앞으로도 기형적 재정운용을 반복하며 경제가 추락하게 되면, 그나마 있던 정부의 신뢰마저 무너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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