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 메디아티 이사의 미디어오늘 기고로 촉발된 JTBC취재윤리 위반 논란은 여론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박상현 이사는 JTBC 기자가 덴마크 경찰에 정유라를 신고한 뒤 취재한 행위를 두고 “보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관찰자로 남았어야했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의 기고에 달린 포털사이트 다음 댓글은 1만여 개가 넘었는데, 대부분 박 이사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아이디 ‘TAK사랑’은 “관찰자로 남아야 한다고요? 그런 언론 덕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까요? 언론의 역할은 진실을 찾고 드러내는 것 같은데”라고 적었고 아이디 ‘pflege’는 “대한민국 공중파들이 정권의 나팔수로 활약하는 건 찍소리도 안하다가 그나마 제 목소리 내는 언론은 원칙 들이밀며 까대는 수준이란”이라고 적었다. 두 댓글은 베스트 댓글에 올랐다.

▲ 1월2일자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기자사회에선 논쟁이 벌어졌다. 변상욱 CBS 대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전두환 정권 때 양심선언하고 경찰에 쫓기는 군 내부 고발자를 CBS사무실에 숨겨주고 박노해 시인 정체와 은신처를 취재하고도 특종을 포기했다”며 “사건에 개입되지 않는 순수 취재는 탁상논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변상욱 대기자는 “언론이 침묵과 왜곡으로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건 역사 개입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시대현실에서 발을 빼고 진실, 정의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다고? 무 판단을 보류하라”고 주장했다.

김형민 SBS CNBC PD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JTBC 기자가 함정을 파서 정유라를 끌어들였다거나 정유라를 협박했다면 명백한 취재 윤리의 문제이겠지만, 취재를 거부하는 용의자, 자금 세탁에 그 이름이 쓰였고 외환 도피의 혐의도 있으며 그 외 중대 범죄의 혐의자 내지 참고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를 자신의 ‘취재’를 위해 방치했다면 그것도 아주 엄중한 ‘취재 윤리’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김형민 PD는 “휴머니즘 없는 프로페셔널만큼 위험한 건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김형민 PD는 이어 “(정유라가) 취재를 거부하고 은신해 있을 때 기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신병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공권력의 힘을 빌리는 것 밖에 없다. 보도하되 개입하지 말라면서 신고를 하려면 취재하지를 말아야 한다는 ‘윤리’는 솔직히 배운 적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장은 대체로 온라인에서 지지를 얻었다.

▲ 1월2일자 JTBC '뉴스룸' 보도화면 갈무리.
반면 박은하 경향신문 기자는 “JTBC는 경찰과 한 팀을 이뤄 수사에 가담한 셈이다. 두 권력 기관이 팀을 이룬 건 사실 섬뜩하고 쇼킹한 일”이라고 밝혔다. 박은하 기자는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직업인으로서의 자신과 시민으로서의 자신을 엄격히 분리하는 행위는 시민적 삶의 자유를 누리고 직업적 결과물에 의도를 의심받지 않기 위한 자기 보호 장치로, JTBC의 보도가 기자사회에 충격을 준 것은 보도 결과와 별개로 셀프 보호장치를 해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은하 기자는 “언론사가 판을 짜고 수사당국 등 권력기관과 팀을 이뤄 혹은 단독으로 플레이어로 행한 사례는 솔직히 무지하게 많다. 이번 JTBC의 건만 빼면 다 나쁜 사례다. 그렇다면 이 사례를 어떻게 판단해야 하나. 쉽지 않은 문제다”라고 전하며 “JTBC의 이번 보도가 선의에 기반 했고 비윤리적이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으며 통쾌한 결과를 가져왔더라도 논쟁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적었다. 이 같은 박 기자의 지적에도 동의하는 이들이 제법 많다.

그러나 여론은 이번 일을 둘러싼 논쟁에 비판적이거나 냉소적이었다. 왜 그랬을까.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건강한 논쟁일 수 있지만 (경찰에) 신고했으면 취재하면 안 된다는 식의 생각은 실제 언론사에서는 적용되기 어려운 명제”라고 지적했으며 “신고한 행위가 비판을 받을 정도의 사안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다른 매체에서도 신고와 취재가 병행되는 경우가 있다”고 전하며 “유난히 JTBC에 까칠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신고행위가) 특종에 대한 욕심이나 시청률에 기초했다면 문제일 수 있지만 그건 오로지 기자 당사자만 알 수 있다”고 말했으며 이번에 제기된 언론윤리위반 논란과 관련해선 “언론윤리는 시민들의 공감을 받아야 보편적 윤리로 기능할 수 있다. 인정을 못 받으면 직업적 이데올로기 수준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남재일 교수는 “시민대부분이 경찰 신고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금까지 기자들이 내세웠던 객관저널리즘의 가치를 기자들 스스로가 잘 못 지켜낸 결과”라고 지적했다. 즉 언론이 시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결과 이와 같은 문제제기 자체가 시민들에게 무의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여기에 더해 최순실게이트 국면에서 시민들로부터 가장 높은 신뢰를 받고 있는 방송사에 보도윤리 문제를 제기하며 필요 이상으로 공분을 샀다는 설명이다.

▲ 2013년 7월27일자 중앙일보.
사실 기자가 어디까지 사건에 ‘개입’할 수 있느냐는 물음은 간단하게 답하기 어려운 주제다. 2013년 7월26일 남성연대 대표 성재기씨는 마포대교에서 투신했다. 현장에 있던 KBS취재진은 자살을 방조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당시 KBS는 “취재보다 인명구조가 우선이란 생각에 오후 3시7분 경찰과 수난구조대에 1차 구조신고를 했고, 성 대표가 마포대교 난간에서 뛰어내린 직후 수난구조대에 2차 구조신고를 했다”고 해명했다. 그 때 KBS는 촬영 대신 투신을 막았어야 할까.

김지방 국민일보 기자는 최근 기사에서 성재기씨 사건을 언급하며 “취재를 하는 것과 안 하는 것, 모두 언론의 현실 개입 행위다. 언론이 현실에 개입하지 않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만 개입할 것인지 선을 긋는 게 중요하다. 그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 판단은 상황마다, 기자마다, 매체마다 그리고 시대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김지방 국민일보 기자는 이어 “애초에 기자가 현실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윤리강령이 만들어진 이유는 기자를 보호하고 저널리즘을 보호해 진실을 보도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남재일 교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언론계 토론이 확산돼야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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