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N(Multi Channel Network, 다중채널네트워크)은 여전히 생소하다. “MCM 가방 짝퉁?”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의미가 모바일 콘텐츠 전반으로 확대되고, 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수익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한 행사에서 “MCN 금이냐 꽝이냐”는 주제로 대담을 연 이유다. 아직 척박하지만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사업자와 크리에이터들이 있고, 성과를 내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MCN의 콘텐츠·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고민과 노하우를 듣는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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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으로 시작해 4억8000만뷰까지

“라임이를 데리고 길을 지나가면 아이들이 한번 씩 돌아본다. ‘엄마 길라임이야’” 어린이들 사이에서 길라임(5)양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그가 출연하는 유튜브 채널 ‘라임튜브’는 가장 유명한 키즈 콘텐츠 중 하나다. 장난감 놀이, 그림그리기, 여행 등 길라임양의 일상을 가공해 콘텐츠로 담는다. 길라임양의 아버지 길기홍씨는 “요즘은 다른 길라임이 유명하지만, 원조는 우리 아이”라고 말했다.

길라임양의 아버지 길기홍씨는 타요, 뽀로로 등 애니메이션의 3D 모션 제작 및 기획 업무를 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급성심부전으로 투병생활을 하게 돼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돈을 벌어야 해서 막막했는데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 돈을 벌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병 간호를 하면서 테스트삼아 작업을 해봤다.”

아내가 나을 때까지 생활비를 벌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한국의 대표적인 키즈 유튜버가 됐다. 유튜브 구독자수 40만 명, 전체 동영상 조회수 4억8000만뷰에 달한다. 제2, 제3의 라임튜브를 꿈꾸는 키즈 크리에이터들이 나올 정도다. 길기홍씨는 “라임튜브가 성공했다고들 하는데, 굉장히 많은 실패를 연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길기홍씨가 시행착오 끝에 정립한 키즈 콘텐츠 전략을 들었다.

▲ '라임튜브' 운영자인 길기홍씨와 크리에이터 길라임양. 사진= CJ E&M 제공.

전략1, ‘인물+스토리’가 팬덤을 만든다

라임튜브에 처음부터 길라임양이 등장했던 건 아니다. 처음에는 장난감을 갖고 노는 콘텐츠로 시작했다. 아버지가 장난감을 들고 있다보니 길라임양이 자꾸 화면에 들어왔다고 한다. 길기홍씨는 “처음에는 ‘아빠 일 하니까 안 돼’라며 아이를 화면 밖으로 나오게 했지만 자꾸 그러니 한번은 ‘에라 모르겠다’라며 로보카 폴리 장난감을 갖고 아이와 간지럼 태우고 노는 내용을 편집하지 않고 올렸다. 근데 조회수가 3배가량 많이 나왔다”고 말했다.

키즈 콘텐츠 포맷을 연구하던 중 미국의 ‘에반튜브’라는 콘텐츠를 눈여겨봤다. 에반튜브는 2011년 개설된 장난감 전문 해외 유튜브 채널로 10살 어린이 에반이 진행하고, 부모님이 제작과 편집을 맡는다. “처음에는 아이가 중심이 돼서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을 했다. 에반은 5살 때부터 레고를 갖고 놀았고, 그 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성공사례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때부터 간헐적으로 라임이가 등장하게 됐다.”

라임양이 무대공포증이 없다는 점도 중요했다. “아이를 등장시키는 데 대해서는 고민이 많았다. 4살 때 학예회를 했는데, 합창하는 무대에서 라임이가 혼자 일어나서 춤을 추더라. 홍대 길거리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그냥 춤을 춘다. 애가 무대에 나서는 것에 대해 공포감이 없다는 걸 알고서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길기홍씨는 “인물이 나오는 채널이 성장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충성도 높은 구독자를 확보해야 하는 유튜브의 특성상 ‘팬덤’이 필요한데, 장난감만 등장시켜서는 팬덤이 형성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영화에 주인공이 있는 것과 같다. 장난감만 등장시키는 채널이라면 뽀로로 등 특정 캐릭터를 반복적으로 내보내 팬심을 만들어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인물을 등장시켜야 한다.”

▲ 라임튜브 콘텐츠에는 길라임양과 파랑이(인형)가 등장한다.

라임이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파랑이라는 퍼펫인형(손가락 인형)이 조력자 역할을 하며 스토리를 만든다. 파랑이 인형은 길기홍씨가 직접 조종한다. 매력적인 두 진행자가 서로의 ‘케미’를 보여준다. 파랑이는 라임이보다 더 어린 콘셉트로 라임이가 언니처럼 모든 걸 알려준다. 파랑이가 사고를 치면 ‘파랑아 그렇게 하면 안 되지’하는 식이다.

길기홍씨는 “이 두 인물이 기본이고, 그 다음에 장난감 혹은 장소를 스토리텔링형으로 소개하는 포맷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거미 장난감도 단순히 갖고 노는 게 아니라 라임양과 파랑이가 잠을 자는데 괴물거미가 습격하고 이에 맞서는 스토리로 만드는 식이다.

전략2, 아이가 즐거워야 한다

길기홍씨는 인터뷰 내내 “라임이가 즐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년 째 키즈 크리에이터 선발대회 심사를 맡으며 키즈 크리에이터 지망생들을 만나왔다. “작년에는 아이들만 오는 경우가 많았는데, 올해에는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많이 오더라. 어른이 의욕적인 건 좋지만 중요한 점은 아이가 스스로 원하고 즐거워하지 않으면 좋은 콘텐츠가 나오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라임튜브’도 같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초창기 길기홍씨는 장난감 회사에서 리뷰를 해 달라며 보내준 변신이 복잡한 로봇장난감을 갖고 노는 콘텐츠를 만들었는데, 라임이가 싫증을 냈다. “나는 남자니까 남자애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게 더 익숙했는데 여자애들 감성에는 안 맞았던 거다. 표정에서부터 싫은 게 드러나고, 집중력도 떨어졌다. 그러니 제작시간도 더 오래 걸렸다. 반면 라푼젤, 엘사 드레스룸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건 정말 좋아했다. 아이에게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라임양에게도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길기홍씨의 견해다. “가장 중요한 건 직접경험이다. 아이에게는 글로 본 것 보다 체험을 통해 익힌 게 더 좋은 교육이 된다. 그래서 장난감 리뷰보다 당장은 조회수가 덜 나오지만 여행 등을 콘셉트로 영상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그는 제작자이기 이전에 라임이의 아버지다.

▲ 길라임양이 액체괴물 장난감을 갖고 노는 내용의 라임튜브 콘텐츠.

주위에선 “콘텐츠 성격을 하나로 규격화하라”는 조언을 하지만 길기홍씨 생각은 다르다. “캐리처럼 규격화된 포맷을 갖고 콘텐츠를 통일하면 채널이 더 빨리 성장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라임이의 기호가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취향이 바뀌면 거기에 맞게 콘텐츠 내용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략3, 대리만족하는 콘텐츠를 만들어라

조회수가 많이 나온 콘텐츠 중 하나는 유명한 테마파크형 키즈카페에 방문한 편이다. 라임양이 키즈카페에서 4시간 동안 길기홍씨와 함께 노는 영상이다. 공을 던지고, 장난감을 갖고 놀고, 체험관을 돌아다니고 기구를 이용한다. 이 콘텐츠는 350만 조회수가 나왔다. 그는 처음엔 ‘그냥 노는 거만 보여주는데, 왜 이걸 많이 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곳에 가보지 못한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고, 그곳에서 아버지와 놀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라임튜브는 또래인 3~5살이 많이 보는데 또래를 따라하고 싶은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애랑 그렇게 놀아주지 마세요.” 길기홍씨는 업체 미팅 등을 통해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하소연’을 듣는다. ‘라임튜브’ 영상을 본 아이들이 부모에게 놀아달라고 조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있는 시간이 굉장히 부족하다. 선진국들 보면 저녁 이후를 가족과 함께 보내지 않나. 라임이가 이걸 대신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라임이한테만 좋은 경험이 되는 게 아니라 이걸 보는 친구들한테도 좋은 경험을 선물해준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 키즈카페 방문 콘텐츠는 300만뷰를 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체험 콘텐츠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유치원 다녀와서 학원가기 전에 잠깐 볼 수 있는 스낵컬처를 주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체험과 관련된 정보전달을 더 하고 싶다.” 대표적인 게 제주도 편이다. 라임양은 이곳에서 어린이의 즐길 거리들을 찾고, 열기구를 체험한다. “앞으로 예술관, 미술관, 체험관 등과 협업을 통해 아이에게 볼거리, 즐길 거리를 소개시켜주고 경험하게 할 거다.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다. 소방관 등 직업체험 콘텐츠도 준비하고 있다.”

전략4, 왕도는 없다. 꾸준한 시도가 답이다

“처음 3달 동안 콘텐츠를 만드니까 계좌에 1000원이 꽂혔다. 이걸로 돈을 벌 수 있게 된 거다. 아버지한테 가서 ‘1000원 벌었다’고 자랑하니까 ‘미친놈, 그거 갖고 어떻게 먹고 사냐’는 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와이프도 반신반의했고, 친구들도 전부 다 미쳤다고 했다. 6개월 정도 됐을 때 100만 원을 벌었고, 이제는 회사를 차릴 정도가 됐다. 지금은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지원해드린다.”

길기홍씨는 키즈 채널 운영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유튜브를 하면 쉽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인식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굉장히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콘텐츠 촬영 때도 라임이는 1~4시간씩 노는 게 전부지만 기획, 촬영, 편집 등 가족은 자는 시간을 빼 놓고는 항상 노동을 한다. 현재는 회사를 설립해 직원들과 함께 하고 있지만, 콘텐츠를 매일 제작해 올려야하기 때문에 노동강도는 높은 편이다.

“키즈 콘텐츠가 인기가 있으니까 쉽게 생각하고 유튜브 콘텐츠 제작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단 취미로 시작해보고 아이가 좋아하고, 우리가족과 잘 맞는지부터 판단했으면 한다. 그 후에 본격적인 제작을 결심했다면 적당히 해선 안 된다. 끊임없이 콘텐츠를 고민하고 만들어야 한다.”

“키즈장르 인기 더 높아질 것”

키즈 장르는 뷰티와 함께 대표적인 MCN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유튜브 결산자료를 보면 가장 인기 많은 영상 10위(뮤직비디오 제외)에 키즈 콘텐츠가 3개나 있다. 동요 콘텐츠인 ‘핑크퐁 상어가족 외 43곡 인기동요 모음집’은 1위를 차지했다.

길기홍씨는 “키즈 시장은 더욱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디어 소비패턴이 바뀐 거다. 과거에는 TV에서 틀어주는 시간을 기다리며 콘텐츠를 봐야 했고, 아이들에게 채널 선택권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유튜브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부모가 가사를 하는 시간 동안 틀어 놓는 일이 많다보니 더욱 익숙해졌다.”

키즈 중에서도 음악콘텐츠가 인기가 많다. 핑크퐁의 ‘상어가족’은 국민동요가 됐다. 길기홍씨 역시 당장 음악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지는 않지만 고민하고 있다. “디즈니가 뮤지컬방식의 콘텐츠 제작을 수십년동안 고수하는 이유를 봐야 한다. 음악은 만국의 공통어이자 누구나 좋아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성장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계획이다. “‘헨젤과 그레텔’과 같은 콘셉트를 이용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 현재 매니지먼트를 해주고 있는 다이아TV와 같이 협력을 한다면 다른 키즈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이런 작품을 찍을 수 있다. 나중에는 상암동 CJ E&M 건물 옆에 키즈 방송사를 만드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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