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9시40분쯤, 청와대 5분 거리인 경복궁역 사거리에서 택시를 타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전속 미용사인 정아무개 원장, 그리고 친동생이자 메이크업 담당 직원인 정아무개씨입니다. 

취재진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박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 원장의 미용실에 가서 직접 커트도 하고, 펌도 하면서 출퇴근길을 2주 가량 따라다녔습니다. 알고 싶은 건 단 하나였습니다. 세월호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 정 원장은 세월호 당시 박 대통령의 머리를 손질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비상 상황이니만큼 일부러 머리를 부스스하게 했다는 진술도 했습니다. 하지만 몇 시에 갔는지에 대해선 ‘기억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전 동료는 정 원장이 청와대의 호출을 받고, 다른 손님들의 예약을 취소한 뒤 오후 1시쯤 청와대로 출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 이세영 SBS 기자
공분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의 타임라인을 살펴볼까요? 오전 11시쯤, 박 대통령은 배 안에 300명이 넘는 사람이 갇혀있단 보고를 받습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첫 번째 내린 ‘구체적 지시’는 미용사부터 호출하는 일이었습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방문하겠단 결정은 오후 3시가 돼서야 내려집니다. 머리 손질에 아무리 관심이 많아도 내 자식이 죽어가는데 미용사부터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에 대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관저에서 벌어지는 사사로운 일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이 대형 참사 앞에 ‘사사로운 일’부터 먼저 챙기는 동안 아이들은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 미용사부터 불러 시간을 허비했지만, 청와대는 이에 대해 어떠한 유감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고작 내놓은 해명이 ‘머리 손질을 한 건 맞지만, 20분밖에 안 걸렸다’였습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건 머리 손질을 받았다는 그 자체지, 시간이 중요한 건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이 20분밖에 안 걸렸다는 해명도 석연치 않습니다. 그날 정 원장 옆에는 메이크업 담당 직원인 정씨도 함께 있었습니다. 자매가 청와대에 머무른 시간은 75분입니다. 머리 손질이 그렇게 빨리 끝났다면, 왜 자매가 한 시간가량 더 남아있었던 걸까요. 업무가 끝난 상황에서 관저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여기에 대해서 청와대는 속 시원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 특유의 올림머리를 연출하는 데 최소 30분은 걸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게다가 중대본 방문 당시 피부와 색조 화장까지 하고 나타난 박 대통령의 모습을 봤을 때, 아무리 봐도 ‘20분’은 터무니없단 지적이 많습니다. 실제 취재진이 확인한 정 원장 자매의 근로 계약서만 보더라도, 하루 두세 시간씩 근무하도록 돼 있습니다. 

국민이 청와대를 더 이상 믿지 못하는 건 거짓 해명과 면피성 해명에 능숙하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 당일, 외부인의 출입은 없었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 머리 손질에 관한 보도가 나가자, 그제야 미용사는 계약직 직원으로 외부 손님이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청와대는 세월호와 관련해선 모든 사실을 꼭꼭 숨겨놓은 채, 언론 보도가 나가면 그제야 변명하기에 급급합니다. 각종 의혹, 소문들을 키우는 건 바로 본인들이란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정 원장은 세월호 참사 당일에 대해 묻는 취재진에게 ‘말 잘못했다가는 죽음’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처음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숨겨져 있기에 모두가 침묵으로 일관하는 걸까요. 아직 편하게 눈을 감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한 번이라도 솔직할 수는 없는 걸까요. 대통령의 혈액 시크릿, 헤어 시크릿, 벗겨질수록 허탈함과 분노만 남는 이 과정들을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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