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치는 걸까.”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맨 처음 든 생각이다. 프리랜서 PD인 내가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이끌어줬던 고마운 선배 중 대부분은 공채 출신이다. 일하면서 경험했던 구조적 문제의 화살이 새삼 선배들을 향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봐 걱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알 수 없는, 혹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후배 PD가 아닌 프리랜서 PD의 입장에서 말이다.

이 일을 시작하고서 프리랜서 선배에게 처음 들은 조언은 바로 '생존 법칙'이었다.

'적어도 3년은 일에 미쳐서 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을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고민해라.'

방송이란 무엇이고, 교양 PD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기대한 내가 너무 순수하고 무지했던 것일까. 세상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도 하고 가슴 찡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드는 이곳 방송국, 그것도 교양프로그램을 만드는 곳에서 처음 드는 조언이 생존법칙이라니. 이제 막 사회에 뛰어든 내게는 이 말이 매우 잔인하게 들렸다. 하지만 5년 차를 바라보고 있는 지금, 그 조언은 경험 속에서 우러난 뼈있는 조언이었음을 느낀다. 어느 직장인들 안 그렇겠냐만, 방송국의 구조는 그야말로 살아남는 자들만 계속 일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PD가 되기 위해서는 크게 몇 가지의 경로가 있다. 각 방송사의 공개 채용, 외주 제작사, 혹은 방송국 내 파견직으로 입사.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 방송국에서 외주 제작사와 파견직, 프리랜서가 직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생각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꼭 어딘가 가서 나를 소개할 때 '프리랜서 PD'임을 밝힌다. 그냥 PD라고만 이야기하면 공채라고 받아들일 때가 많아서 PD가 맞지만 뭔가 속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에 덧붙인다. 이 세 가지를 환경에 비유를 해보자면 공채는 안정적인 집, 파견직은 비닐하우스, 외주 제작사는 야생에서 일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물론 모두 각자의 장단점과 고충이 있다.).

나는 파견직으로 처음 방송 일을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파견직이 무슨 비닐하우스냐, 더 열악하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내겐 4대보험이라는 것이 적용되고 1년 이상 일하고 나면 퇴직금을 주는 최소한의 보호막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중간에서 파견업체가 가져가는 돈은 화가 날 정도로 많다. 예를 들어 본사에서 내게 200만 원을 주면 그중에 6,70만 원가량을 파견회사에서 가져갔다. 명절이면 10만 원의 보너스나 햄 세트를 받아들고서 좋아했던 내 모습이 스스로도 참 씁쓸할 때가 많았다.

나 같은 경우는 2년 동안의 계약 기간을 끝내고 개인 사업자를 등록해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그다음이 외주제작사. 외주를 '야생'이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외주제작사는 본사와 계약해서 제작비를 받고, 그 비용에 맞춰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그 제작비에는 진행비, 교통비, 인건비 모든 것이 들어간다.

본사에서 일하면 배차를 받아서 PD가 직접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외주 제작사에서는 PD가 스스로 운전을 하며 취재를 다닌다. 때에 따라서는 배차를 받기도 하지만 그건 정말 배차가 필요한 경우에만 그렇다. 대부분 직접 운전해서 다닌다. 지방 곳곳을 다니며 5시간 가까이 운전하고 와서 바로 편집하고, 다음날 방송을 내보는 경우도 많다. 웬만한 체력이 아니고서는 버티는 것 자체가 힘들다.

먹는 것도 자유롭지 않다. 심한 제작사의 경우에는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서 식비를 줄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우스갯소리로 어느 제작사에선 냉장고에 음료수가 많이 들어있는 게 그 회사의 복지가 좋다는 근거 중 하나로 이야기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주제작사들은 다른 제작사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한다. 넉넉하지 않은 제작비로 뽑아낼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퀄리티를 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본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결국 죽어나는 것은 현장에서 일하는 피디, 작가, 제작진들이다.

살아남는 것이 목표인 방송국... 괴로운 제작진들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프리랜서 PD인 나는 어떻게 해야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방송을 위해서 밤샘은 기본이다. 집에 다녀오는 시간이 아까워서 편집실에서 잠을 청하고 씻을 시간이 없어서 잠자는 시간이나 밥 먹는 시간을 맞바꿔야 할 때가 태반이다. 주말에 내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방송 스케줄이 따라주지 않는 한 거의 불가능할 때가 많고, 쉬는 날에도 갑자기 취재를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바로 취재를 나가야 한다.

밤 11시에 퇴근하는 게 일찍 퇴근한다고 주변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우선 이런 상황을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거다. 어느 정도의 수준이 지나서 버티는 사람만 남았을 때는 실력으로 경쟁한다. 프리랜서 PD도 각자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작은 외주 제작사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철저하게 평가받는 존재다. 여러 명의 프리랜서 중에서 나만의 강점이 있어야 한다. 동료, 선 후배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과의 끊임없이 경쟁해야 한다.

정말 김빠지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방송사마다 공채로 입사했을 때 처음으로 받는 연봉에 대한 기사였다. 그중에 최고 많은 연봉은 5100만 원. 4년 차인 나의 연봉은 2600만 원이다(주급 50만 원.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과 비교했을 때(주급 5~60만 원) 보통 수준의 연봉이다.).

저 금액을 듣는 순간 어떻게든 아등바등 버텨보려고 했었던 스스로의 모습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직원과 같은 수준을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막 입사한 사람과 4년 차인 나의 연봉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니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물론 나의 실력을 높여서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 되면 저 차이가 줄어들 수 있겠지만 이 레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자꾸만 나를 지치게 만든다. 같은 공간에서 방송을 만들기 위해 같이 밤을 새고, 노동을 하지만 그에 비해서 임금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글을 쓰면서 어느 직종에서나 존재하는 일을 프리랜서 PD인 나에게만 특정된 것처럼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그런 부분이 잘 드러났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다. 프리랜서이더라도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상응하는 임금과 함께. 끝으로 오늘도 치열하게 살고 있는 모든 PD들에게 지치지 말고 힘내보자는 말을 건네며 마무리를 하려 한다. 오늘도 화이팅!

‘바꿈, 세상을 바꾸는 꿈’ (http://change2020.org/) 에서 이와 관련한 카드뉴스를 미디어오늘에 보내왔습니다. 바꿈은 사회진보의제들에 대한 소통을 강화하고 시민단체들 사이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2015년 7월에 만들어진 시민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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