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22일 ‘MBC 김세의 기자의 인터뷰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방문진 감사보고에서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감사보고를 위해 이사회에 출석한 MBC감사가 명예훼손 및 자료유출이 우려된다며 방문진 이사들에게 보고 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감사는 감사의 독립성과 중립성 때문이라는 이유를 달았는데 그것이 자료 제공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방문진 이사회에서 보고하는 MBC 임원들이 ‘기밀사항’을 내세워 회의의 ‘비공개’를 요구하는 일은 종종 있었지만, 이사들에게 보고하기 위해 가져온 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고 한 일은 없었다. MBC에서 일어난 주요 사안에 대해 소상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경영의 관리·감독 책임을 진 방문진의 정당한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방문진은 MBC 경영진이 저지른 수많은 불법과 비리 행위를 비호하고 은폐하는데 급급했고 이로 인해 ‘안광한의 호위무사’라는 굴욕적인 비난을 받아왔다. 22일 감사가 자료제공을 거부한 행위는 사실상 감사가 MBC 경영진과 한통속이 되어 임명권자인 방문진을 대놓고 불신하고 무시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는 방문진이 MBC 대주주로서의 권한은커녕, 존재 이유마저 찾을 수 없는 막다른 상황까지 왔음을 의미한다. 방문진은 경영의 관리감독 따위의 호칭이 무색한 식물 감독기구가 돼 버린 것이다.

방문진이 이토록 참담한 상황까지 오게 된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니요 방문진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그동안 안광한 사장을 비롯한 MBC 경영진은 MBC를 특정 이념과 정치세력의 홍보도구로 전락시켰고, 이념과 정파의 노예가 된 방문진은 법도, 규정도, 상식도, 여론도 모두 내팽개치면서 이들을 비호해 왔다. 가지고 온 자료조차 주지 않고 ‘깜깜이 보고’를 하겠다는 감사의 오만한 태도는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날도 6인의 여권추천 이사들은 감사의 자료 제공 거부에 동조하거나 침묵하는 비굴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야권추천 이사들의 고성이 나오고 한바탕 진통을 치룬 뒤에야 자료가 복사되어 올라왔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찌할 수 없다.

방문진이 이번 특별감사를 지시한 것은 김세의 기자가 취재·제작한 3개의 기사가 날짜와 내용이 각각 다른데도 거기에 등장하는 인터뷰이는 동일 인물이라는 의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2일 감사보고는 감사결과 자체를 신뢰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대한 문제점들이 노출되었다.

우선 감사국이 2차례에 걸친 음성파일 성문분석을 실시했는데 1차 성문분석 결과는 통째로 무시하고 2차 성문분석 결과만 채택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1차에서는 3개의 음성파일 모두에 대해 성문분석이 이루어졌는데, 2차에서는 방송이 나간 2개의 음성파일에 한정해서 성문분석이 이루어졌고 방송되지 않은 음성파일에 대해 아예 성문분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론이 정해진 짜맞추기 감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대해 감사는 방송된 내용에 대해서만 제재를 가하는 방송법 제32조와 방송심의규정 제14조를 들어, 미방송분은 감사의 범위도 대상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감사의 목적과 역할을 크게 착각했거나 진실을 왜곡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사를 기피하기 위한 언어도단이자 궤변일 뿐이다. 이 사안은 김세의 기자의 취재․제작 과정에서 인터뷰를 조작했는지의 여부, 즉 불법 또는 부도덕한 행위가 있었는지를 감사하는 것이지 그것이 방송되었는지 여부와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1차 성문분석은 3개 기관이 참여해 객관성을 담보했는데 반해 2차 성문분석은 1개 기관만이 참여한 것도 이상하다. 더구나 2차 성문분석에 유일하게 참여해 “동일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냈던 디지털과학수사연구소는 1차 성문분석에서는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반대의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보고 과정에서의 감사의 태도 또한 문제다. 감사는 감사인이 누구냐는 질문에 “밝히지 못하겠다”고 거부했다. 또한 “미방송분에 대한 성문분석을 했느냐”는 질문에는 “안 했다고 말한 적 없다”고 했다가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하는 등 모호한 태도를 취하더니 질문이 계속되자 겨우 “했다”고 시인했다. 이러한 감사의 보고태도는 어떻게 해서든 관련 정보를 숨기려는 것으로 비쳐져 의혹을 키우고 있다.

▲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여권추천 6인의 이사들 역시 감사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보다는 은폐하려는 태도가 역력했다. 고영주 이사장은 “방문진에서 2개를 감사하라고 했는데 감사국에서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해서 문제를 일으키느냐”고 나무랐지만 방문진이 2개 파일만을 감사하라고 했다는 고 이사장의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허위사실이다. 특히 이 주장은 어떤 시각에서는 고 이사장이 사전에 감사실과 교감이 있었다는 의미로도 들린다. 유의선 이사는 감사가 언급했던 방송법과 방송심의규정의 논거를 그대로 차용하면서 미방송분을 감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인철 이사는 이 사안을 노조끼리의 싸움으로 규정하고 “제일 큰 노조가 갑질하는 것”이라는 망발을 했다.

MBC의 간판뉴스 시청률이 2%대로 추락하고, 동일 시간대에 생중계 하는 9개 방송사 중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기자들이 시민들로부터 욕설을 듣고, 취재현장에서 쫓겨나고, 리포트 하면서 MBC 로고를 떼고 이름도 밝히지 못하는 폐족의 신세가 되어 버린 MBC의 현실은 이제 뉴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근자에 예능과 드라마의 PD들이 MBC를 떠나는 상황은 마치 침몰하는 배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드라마에서 조차 국정농단의 정윤회 그림자가 드리워 진 현실에서 경영진의 비리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감사마저 경영진과 유착되어 있는 이 상황은 절망적이다. 사장과 보도책임자를 방문진 이사회에 불러 극복할 방안을 찾아보자는 야권추천 이사들의 제안에도 “중요하지 않다”, “언론자유 침해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치며 거부하는 한심한 방문진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식물 감독기구 방문진과 폐족이 되어버린 MBC의 앞날이 캄캄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