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박근혜를 위해 대형수갑을 준비한 모습과 손석희 JTBC 사장의 포승줄에 묶인 대형사진은 묘한 대조를 이루며 국민을 혼란스럽게 했다.

24일 9차 범국민행동(촛불집회)에 참여한 촛불시민들은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박 대통령을 위한 선물을 공개했다. ‘대형 수갑’이었다. 산타 복장을 한 ‘청년 산타’ 300여 명은 이곳에서 캐럴을 부르면서 박 대통령 모형 조형물에 수갑을 걸었다. 시민들은 “아이들에겐 선물을, 박근혜에겐 수갑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즐거워했다. 청년 산타는 연하장도 준비했다. 연하장을 펼치니 긴급체포영장이 있었다.

‘수갑’이라는 무시무시한 족쇄를 선물로 준비하고 연하장은 긴급체포영장으로 만든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이야말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했다. 국민적 분노를 촛불시위자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 9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월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산타 복장을 한 박근혜정권 퇴진 청년행동 회원들이 박 대통령 조형물에 대형 수갑 선물 증정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또 다른 생경한 풍경이 연출됐다. 같은 날 거의 동시에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 주최 집회 참가자들이 ‘조작보도, 내란선동’이란 팻말을 목에 멘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손 사장의 사진을 들고 가두 시위를 벌였다. 박 대통령 퇴진 촉구 촛불 집회에 맞서 포승줄에 묶인 손 사장의 사진을 내세워 불만을 표출했다.

오늘날 박 대통령이 탄핵을 맞아 집무정지가 된 이유를 손 사장의 JTBC 보도때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정직한 보도가 아닌 조작보도를 통해 내란을 선동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각자 오늘의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하면 된다. 사상의 자유를 그 누구도 제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생각을 대중에 공개적으로 표현하게 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개개인 생각의 자유가 다른 개인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수갑과 포승줄로 대비되는 두 인물에 대한 대중의 분노 표출을 어떻게 보고 판단해야 할까? 이미 대중에 공개적으로 표현된 두 공인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해석, 판단해야 할지 세 가지 나름의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현재의 지위에 부여된 권한과 책임에 합당한 행동을 했는가 여부를 따져야 한다.

대통령에 부여된 권리와 책임을 비선실세 최순실과 나눠가졌다면 민주주의 국정시스템을 붕괴시킨 책임을 져야 한다. 세월호 재난사고와 같은 국가비상상황에서 올림머리하거나 미용주사를 맞는데 시간을 허비했다면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리와 책임을 다하지않았다는 지탄을 받게 된다. 검찰수사와 청문회에서 드러나고 있는 부분적인 사실은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정당화 하고 있다.

방송사 뉴스부문 사장이자 앵커에게 부여된 권한과 책임은 진실하고 공정한 보도를 위한 노력여부다. 손 앵커는 태블릿 PC를 훔쳐서 조작보도를 했는가. 이런 문제제기에 대해 JTBC는 입수과정을 자세하게 공개적으로 보도했다. 국정농단의혹 보도내용이 조작인지 사실인지 그것은 수사기관에서 현재 수사하고 있다. 아직 조작인지 진실인지 판단할 수 없다면, 의혹만으로도 공익적 차원에서 문제제기, 보도할 수 있는 것이 언론기관과 사법기관의 차이점이다. 손 앵커는 자신의 권한안에서 보도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월권이나 불법적 행위는 현재까지 드러난 바가 없다. 국민은 JTBC의 보도로 국정농단 사태를 좀 더 일찍 중단시키게됐다면 그에게 상을 내리고 고마워해야 하지않을까.

둘째,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살펴야 한다.

어떤 사안을 판단할 때는 동기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매우 중요하다.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개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고자하는 동기가 나름대로 있었다하더라도 그 결과가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가는 상황을 판단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최순실을 중간고리로 대기업으로부터 기금을 모으고, 그 딸을 대학에 부정입학시키는 등 국가의 법과 정의를 흔드는 결과로 나타나 결과적으로 국회의 압도적인 탄핵가결을 받게 됐다.

손 앵커는 취재기자들이 입수한 태블릿 PC 내용을 검토한 후 공익적 차원에서 보도하기로 판단했다. 그리고 그 취득물을 검찰에 제출했다. 훔치지 않았으며, 불법적으로 입수한 것이 아님을 건물관리인의 인터뷰까지 공개하면서 노력했다. 그 안에 담긴 기밀유출과 인사전횡 등 일개 사인에 불과한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고스란히 들어있는데, 보도책임자가 보도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대통령의 사과까지 나왔다는 것은 보도의 내용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조작이고 무엇이 불법이라는 말인가.

셋째, 그 행위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파급효과와 공익적 가치를 따져야 한다.

만약 손 앵커의 보도가 조작이라면 JTBC는 지금쯤 문을 닫았을 것이다. 최고권력을 상대로 엄청난 조작보도를 했다면, 권력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검찰 등 수사기관, 국세청 등 조사기관을 앞세웠을 것이다. 지금쯤 손 앵커는 최순실대신 감방에 있을 것이고 대통령은 직무정지 대신 눈을 부라리며 언론탄압을 정당화 하고 있을 것이다. 함부로 근거없이 조작이라고 주장하면 안된다.

진실은 힘이 세다. 국민은 개인적으로 박 대통령의 처지에 연민의 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순실과 공모, 합세하여 국정을 망치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붕괴시킨 데 대한 공적책임을 묻는 것은 별개의 논리다. 2016년 박 대통령의 탄핵은 일본에서 국제 10대 뉴스로 꼽을 정도로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더 이상 사사로운 정(精)과 정의(正義)를 혼동하여서는 안된다.

▲ 9차 촛불집회가 열린 12월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산타 복장을 한 박근혜정권 퇴진 청년행동 회원들이 박 대통령 조형물에 대형 수갑 선물 증정 퍼포먼스를 마친 후 춤을 추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양쪽 모두 국민을 위한다면서 한쪽은 진실을 감추고 한쪽은 찾아내 밝혀야 하는 입장의 차이가 있다. 대통령이 합법적이고 정당한 책무를 행했다면 언론사의 부당한 조작보도는 처벌을 면치 못한다. 그러나 대통령이 불법적이고 부당하게 책무를 방기했고 그것을 언론사가 권력감시 차원에서 보도했다면, 그 보도로 국정농단 사태를 그나마 현 시점에서라도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면 그 언론사에 상을 내려야 하지않을까. 적어도 민주주의를 걱정하는 시민이라면 공영방송사가 침묵하는 사이 용기를 내 타락한 권력을 고발한 앵커에게 국민의 이름으로 훈장이라도 수여해야한다. 포승줄 퍼포먼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무지와 맹목에 혀를 차게 된다. 무지는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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