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가 자사 회장 모친상에 직원들을 동원해 장례 의전을 강제하거나 부조·화환 홍보를 강요한 사실이 확인됐다. 직원들은 성탄절 주말 휴일을 반납하면서까지 사측 ‘장례지침’에 따르게 돼,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파이낸셜뉴스 차장급 이상 직원 10여 명은 24일 12시 경부터 오후 6시까지 아산병원 장례식장을 지켜야했다. 전재호 파이낸셜뉴스 회장 모친상에서 ‘장례식장 조문객 의전’을 맡기 위해서였다. 파이낸셜뉴스는 차장급 이상들을 A부터 E까지 열 여 명씩 다섯 조로 만들어 순환 의전근무체제를 만들었다. A조부터 E조까지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장례식장을 5~8시간씩 지키며 조문객을 맞이하는 것이다. A조 의전이 24일 오후 6시에 끝나면 B조가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장례식장을 지키는 식이었다.

▲ 전재호 파이낸셜뉴스 회장 모친상 동안의 차장급 이상 직원들 장례 업무 분담표.

사진과 영상 등 촬영팀 직원들은 24시간 대기 지시를 받았다. 촬영팀 직원 A씨는 “사진부나 영상팀이나 똑같이 (장례식장에 머물라는) 24시간 오더를 받았는데 담당자가 한 명”이라고 전했다. 부장급 직원들은 부고 소식을 듣는 즉시 장례식장으로 소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차장급 이상 직원들에겐 취재 출입처 및 지인들에게 화환·조문 홍보 지시까지 내려졌다. 직책이 차장급 이상인 기자 B씨는 “화환이나 조의금을 확보하라는 취지로 수차례 상부로부터 연락이 왔다”면서 “처음에 문자를 돌렸다고 하니 ‘직접 전화로 알리라’고 (상부로부터)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부고 홍보 지시는 차장급 이하 직원들에게도 하달됐다. 전 직원은 24일 오전 “회장님 모친상(오늘 오전 7시 20분) 관련 각자 출입처에 부고바랍니다. 조화·부조 다 받습니다. 단 조화는 대표이사 이상만 접수”가 적힌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파이낸셜뉴스 소속 기자 C씨는 “내가 속한 부서는 ‘출입처에 알리라’는 점잖은 표현을 썼다”면서 “나도 오전에 출입처 홍보팀에 카카오톡으로 부고를 다 남겼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장례식장 근무 지침’은 전회장 모친이 심각히 위독해졌던 지난 달 초쯤부터 논의됐다. 사망 시에 대비, 사측의 권고로 차장급 이상 직원들이 모여 업무 분장을 논의했던 것이다.

파이낸셜뉴스의 ‘장례 지침’은 업무 사안이 아닌 일을 직원들에게 전가한 것으로 부당지시 비판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B씨는 “기분은 나쁘지만 상을 당한 일이니 ‘오너 회사’ 직원으로서 도울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도가 지나친 수준이다. 특히 화환·조문 독촉하라는 강요는 너무나도 불쾌했고 이러려고 기자됐나 자괴감까지 들었다”고 비판했다.

B씨는 “직원들 대부분이 어이없어 하고 있다”면서 “이런 부당지시가 내려지는 게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쌓이고 쌓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 회장의 딸 결혼식에 기자들이 접객·의전 인력으로 동원되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고 밝혔다. 당시 사측은 유통·가전제품 생산 기업 등을 출입하는 기자들에게 ‘회장 딸 혼수품으로 저렴하게 (물건을) 공급해달라’는 요구를 출입 기업에 전달하라고 강제하기도 했다.

B씨는 또한 “상부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사내 분위기가 있다”면서 “지시를 따르지 않았을 때 업무적으로나 인사 상으로 보복당하는 사례들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뉴스 직원들은 공휴일인 오는 25일 성탄절에도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의전 근무'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5일장’으로 열리는 전 회장의 모친상은 오는 28일에 발인이 예정돼있다. 차장급 이상 직원 및 촬영팀 등은 28일까지 장례식장 업무를 도맡아야 한다.

한편 파이낸셜뉴스는 24일 오전 10시 경 ‘전재호 파이낸셜뉴스 회장 부고’ 기사를 냈다. 기사엔 전 회장의 형제자매, 그들의 배우자, 사위 및 자녀 등 가족 15명의 이름과 직책을 명시해 전례없이 많은 이름을 올린 부고 기사란 평가가 제기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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