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병원이 서창석 병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내부 구성원의 비판 여론에 유례없는 언론통제를 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 16일과 22일, 서울대 의대·간호대 재학생 및 서울대 병원 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이 병원 및 캠퍼스 곳곳에 붙인 서창석 병원장 사퇴 촉구 대자보를 강제로 철거·폐기했다. 서울대 병원은 노조가 직원전용 온라인 게시판에 작성한 같은 내용의 게시물도 사전통지없이 직권 삭제했다.

앞서 서울대 의대·간호대 학생들은 16일 오후 6시경 서 병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서창석 서울대병원장님께 드리는 편지'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의대·간호대 캠퍼스 내 예닐곱 곳에 게시했다. 학생들은 같은 날 노조의 동의를 얻어 병원 내 노조게시판 3군데에도 같은 대자보를 붙였다. 열 여개의 대자보는 19일까지 대다수가 철거된 것으로 확인됐다.

▲ 지난 12월22일 오전 노조가 병원 내 노조게시판에 부착한 서울대 의대·간호대 학생들의 자보가 그 날 오후 즉시 철거됐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

노조는 '노조가 동의한 것이자 직접 게시한 것'임을 알리며 지난 22일 병원 내 노조게시판 일곱 군데에 동일한 글을 게시했다. 게시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은 이 날 저녁, 이들 대자보는 모두 철거됐다.

철거를 한 쪽은 병원이다. 병원 노사협력과 관계자는 언론통제에 항의하는 노조 측에 '병원장에 대한 언급이 있다', '병원 입장과 다른 내용의 게시물', '극단적 의견이 포함된 올바르지 않은 본원 및 병원장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라고 철거 취지를 설명했다. 재게시를 요청한 노조에 병원 측은 '이미 폐기해서 재게시할 수 없다'고 답했다.

이 과정에서 병원 측은 서울대 의대 관계자들을 통해 자보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의대 학생 A씨에게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다. A씨는 서울대 의대 교수 및 학생회 등을 통해 '병원장이 대화를 원한다'면서 자보를 게시한 학생과 병원 간 비공개 대화자리를 제의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함께 자보를 붙인 학생들은 '비공개 자리'는 상대적 약자인 학생을 향한 강요 또는 협박 자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판단, 병원 측에 노조 등 외부인에게 공개된 간담회를 제안했다. 병원 측의 거부로 간담회는 무산됐다.

노조 관계자는 "병원이 지금처럼 일방적으로 노조 게시판 자보를 철거한 적은 (노조 활동이 이뤄진 이래로)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무 이례적인 대응"이라면서 "병원이 원내 언론, 소통을 통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자보를 함께 작성한 의대 학생 B씨는 지난 22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병원장을 향한 (사퇴) 목소리를 없애겠다는 것 아니냐"면서 "학교와 병원, 양측 게시물이 동시에 대다수 뜯긴 것을 보면 누군가의 지시로 이뤄졌다고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서울대 병원 홍보팀 관계자는 23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의혹 수준의 얘기를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사실인 것처럼 써서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노조 게시판은 조합에 필요한 게시물을 붙이라고 만든 건데 (글이) 게시판 성격과 용도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면서 "병원 측은 언론 통제라 보지 않는다. 원칙적으로 노조가 아닌 외부 기관의 게시물은 그렇게 (철거 대상으로) 할 예정"이라 밝혔다.

노조는 지난 22일 게시물이 철거된 것에 대해 "'노조의 게시물'임을 알렸음에도 철거했다. 명백한 부당노동행위"라면서 "노조는 이 같은 언론통제에 대해 공식적인 대응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및 간호대학 학생 88인은 자신의 연서명과 함께 12월16일 학내 곳곳에 ‘서창석 서울대학교 병원장님께 드리는 편지’를 게시했다.

병원 측이 철거·폐기한 게시물엔 서창석 현 서울대 병원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된 정황 근거가 적혀 있다. 서울대 의대·간호대 학생 88인이 붙인 지난 16일 대자보는 “김영재의 가족회사는 청와대의 힘으로 서울대 병원을 통해 중동 진출을 시도했다. 이것이 무산되고 나서 전 대통령 주치의였던 서창석 병원장이 취임했다”면서 “그 한 달 후, 자격미달의 일반의였던 김영재가 서울대 병원 외래진료의사로 위촉됐으며 그의 가족회사에서 개발한 의료재료는 서울대 병원에 납품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글은 “서울대학교 병원을 믿고 찾아온 누군가는 김영재에게 진료를 받고 그의 봉합사로 치료를 받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면서 “병원장이 김영재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고심하던 그 순간에 누군가는 서울대 병원의 병상 위에서 신음하고 있었을 것”이라 비판했다.

이들은 “정치적 간섭에서 벗어나 권력과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수호할 수 있는 병원을 원한다. 최순실의 단골 의사에 각종 이권을 안겨주는 수뇌부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병원장이 그 책무를 내려놓고 한 명의 의사로 돌아가 서울대학교병원을 위해 힘써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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