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기자들이 자사 보도와 인사의 불공정성을 비판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리며 동참하고 있는 가운데,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은 23일 “부서 책임자들이 후배들을 만나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들어봐야 한다”며 부장들을 압박했다.

기자들의 비판 성명이 ‘불통’에서 비롯했다고 판단, 책임을 부장단에 돌리며 압박한 것으로 보인다. 

2008년 이후 입사한 기자들을 중심으로 97명의 연합뉴스 기자들은 지난 21일 “우리 젊은 기자들은 출근길이 두렵고 퇴근길이 부끄럽다”라는 제목의 연명 성명을 통해 정부 편향적인 자사 보도와 불공정인사를 비판했다. 

23일 오전 기준으로 연명한 기자 수는 209명으로 늘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내 여론이 불어나고 있는 것이다.

▲ 박노황 연합뉴스 사장. (사진=연합뉴스)
박노황 사장을 포함한 간부들은 22일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이 사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박 사장이 ‘정부 지원 받지 말고 월급 반으로 깎고 공정보도하든지 하라’는 식으로 분노했다는 전언이 연합뉴스 기자들 사이에서 입말로 돌기도 했다.

구독료와 사업 지원금 명목으로 연 380여억 원의 국고가 투입되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의 사장이 스스로 ‘불공정 보도’를 자인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 배경이다.

박 사장은 23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어제 회의에서 한 발언은 ‘국가가 국가기간뉴스통신사에 부여한 공적 책무를 하지 않을 것이냐. (국가기간뉴스통신사가 아닌) 일반 언론이 될 것이냐’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 받지 말고 월급 반으로 깎고 공정보도하든지 하라’는 식으로 말한 적은 없다는 것.

박 사장은 “국가가 연합뉴스에 구독료를 지급하는 이유는 특파원, 외국어뉴스 등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공적 역할 때문”이라며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는 만큼 공적인 역할을 많이 해야 한다”고 밝혔다.

21일 연합뉴스 ‘젊은 기자’들이 낸 성명은 여러 매체를 통해 기사화됐다. “국가기간통신사가 아니라 국가기관통신사가 아니냐는 바깥의 야유에도 우리는 제대로 분개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는 기자들의 절규에 많은 누리꾼들이 공감하거나 분개했다.

연합뉴스 기자들에 따르면, 일본군 위안부나 국정교과서 기사,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관련한 기사들이 데스크를 거치면서 ‘난도질’되거나 정부에 유리하게 ‘물타기’ 됐다고 한다.

박 사장은 1차적 책임을 간부들에게 물었다. 그는 “어제 회의에서 ‘후배들이 이렇게까지 성명을 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후배들을 만나서 물어보긴 했느냐’고 간부들을 크게 꾸짖었다”며 “후배들은 소중한 자산이다.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파악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됐다”고 말했다.

▲ 연합뉴스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박 사장은 ‘불공정 보도’ 논란과 관련해 “위에서 내리는 ‘보도 간섭’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며 “어제 일부 에디터가 (최순실 보도와 관련해) ‘실상을 쫓아가면 80%가 오보였다’고 말하더라. 또 특정 언론에 먼저 제보가 가다보니 첫 발이 늦고, 뒤늦게 쫓아가 확인이 안 되는 어려운 상황이 있다. 이에 대해 후배들이 궁금해 하면 (부장들이) 설명하고 대화하면 풀릴 문제”라고 말했다.

기자들은 박 사장이 ‘공포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사소한 실수에도 경위서를 요구하거나 전직 노조 간부를 지역 발령하는 등 경영진이 “공포정치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 사장은 ‘경위서 작성 요구’에 대해 “공포정치라고 했지만 잘못된 관행을 고치기 위한 조치들”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이전에는 노트북이 사라지면 관리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관리 목적 하에 경위서를 작성하며 기존 관행을 개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벌어들이는 예산도 있지만 아껴야 한다”, “자기 물건처럼 회사 물건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 인사의 지역발령’에 대해서는 “발령을 받아 지역으로 간 사람들은 ‘지역의 사령관’들”이라며 “지역에는 자기 책임이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을 보낸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으로 가신 분들 가운데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지난해 5월 2012년 103일 연합뉴스 파업을 이끈 공병설 전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장과 2010년 연합뉴스지부 공정보도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이주영 기자 등이 지역 발령을 받아 ‘보복 인사’라는 비난 여론이 크게 일었다. “인사와 징계가 뒤섞이는 바람에 인사의 원칙과 징계의 원칙도 무너졌다”는 비판이었다.

▲ 박노황 연합뉴스·연합TV 사장(맨 오른쪽)이 지난해 3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국기게양식은 박 사장의 취임 직후 일정으로 지나친 ‘애국 코드 맞추기’라는 안팎의 반발을 산 바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통화 내내 박 사장은 “부장이 부원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 부장은 부원으로부터 물건 취급 받는다”, “소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후배들이 부끄러워한다면 그 이유를 물어야 개선안을 만들 수 있다”, “남 쳐다보듯이 하면 안 되고 후배들과 가슴을 열고 대화해야 한다”며 부장들의 책임을 강조했다.

부장급 간부들에 대한 사장의 압박은 일선 기자들에 대한 압박으로 되돌아올 공산이 크다. 실제 연합뉴스 한 기자는 “부장들이 연명에 동참하지 말라고 부원들을 압박하고 종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선 기자들과 소통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박 사장은 “사실 망년회 등에 사장은 나타나지 않아야 후배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부 간부들이 ‘그래도 오셔서 후배들 격려 좀 해주시라’고 말하더라”며 “요즘은 만나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 회사 현안에 대해 후배들이 모르고 있는 게 많다. 하나하나의 의견이 소중하다. 활발하게 대화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3월 취임한 박 사장은 첫 대외 일정으로 동작동 현충원을 참배하고, 연합뉴스 임직원 70여 명을 모아 ‘국기게양식’을 여는 등 ‘애국 퍼포먼스’로 입길에 오르내렸다.

박 사장은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가 2012년 파업을 통해 쟁취한 편집권 보장제도인 ‘편집총국장제’를 무력화시켰다. 지난해엔 노동조합 활동 경력이 있는 한 기자를 ‘근무태도 불량’, ‘부적절한 언행’ 등의 이유로 해고했다가 지난 9월 법원이 무효판결을 내려 ‘보복 인사’ 논란에 휩싸였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