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법원에는 중요한 사건 하나가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삼성 에버랜드에 있는 민주 노동조합인 금속노조 삼성지회 조장희 부지회장의 해고무효소송이다. 오는 12월 29일 선고 예정인 이 사건은 2011년 7월 삼성 에버랜드에서 일하다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당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장희씨는 삼성이 3대 세습을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기업인 에버랜드에 근무했다. 에버랜드에서 노사협의회가 아닌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수년 간 준비해서 만들었지만, 회사는 노동자들을 감시하고 있다가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있자, ‘어용-알박기 노조’를 미리 만들어 놓고, 민주노조의 설립 필증이 나오자, 간부 중 한명인 조장희 부지회장을 해고 했다.

그로부터 5년, 힘겨운 시간이었다. 조장희 부지회장의 가족이 에버랜드 인근에서 하던 식당은, 에버랜드 직원들이 주 고객이었는데, 매출이 높은 식당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손님이 끊겨 문을 닫았다. 회사의 감시 때문에 주변 동료들로부터 외면당했고, 노동조합 동료들도 수차례 징계-고소고발을 받고, 근무시간과 근무지가 수시로 바뀌었다. 소수의 조합원들 함께 모여 회의하기 힘든 상황도 생겼다. 해고 경제적 어려움이야 말로 표현할 수 없었고, 고소고발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 계속됐다.

그동안 삼성 계열사에서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만들던 시도는 수차례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했고,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다 떠난 사람들은 크게 두 종류다. 하나나 돈에 매수되어 양심과 신념을 버리고, 스스로를 버린 사람들이다. 또 한 종류는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으나, 삼성의 철저한 폭력으로 동료와 회사, 사회로부터 철저히 ‘감춰버림’ 당한 사람들이다. 삼성의 노조 탄압이 악랄한 이유는 이렇게 ‘노동자’, ‘인간’의 존재를 지우기 때문이다. 삼성에 노동조합을 만들기 어려운 이유는 ‘인간’을 지우는 삼성의 폭력이 컸다. 2013년 폭로된 삼성의 노조파괴 문건 ‘S그룹 노사전략’에는 조장희 부지회장을 비롯한 삼성 에버랜드(금속노조 삼성지회)를 거론하면서 ‘고사’시키라는 주문까지 할 정도다.

조장희 부지회장의 해고처럼, 삼성은 철저히 노동조합을 파괴해 왔다. 삼성지회가 있는 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제외하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이 있는 삼성계열사는 더 이상 찾기 힘들다. 노동조합이 없던 삼성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유해화학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삼성전자-LCD부문에서만 직업병으로 78명이 죽어가고 있다. 3대 세습을 위해서 국민연금을 주무르고, 인위적인 합병을 하면서 삼성물산의 주가를 의도적으로 떨어트렸다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정권의 비선실세에 500백 억 원이 넘는 돈을 뇌물로 제공했다.

이 모든 사건들을 노동조합이 100% 막을 수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조직 안에서 노동조합이라는 감시 장치가 작동하고, 조직 내 건강한 견제장치로 노동조합이 역할을 했다면 지금보다 나았을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실권을 행사한 2014년 이후 3만 명 가까운 삼성 노동자들이, 쫓겨났다. 노동조합이 없는 삼성에서 명예퇴직 강요, 분사, 매각, 구조조정은 일방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회사 구성원에 대한 존중과 의견이 반영될 통로는 전무한 셈이다. 이재용을 비롯한 총수일가의 독단이 있을 뿐이었다. 삼성은 이렇게 이병철 시대의 삼성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악행’만 세습되는 상황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조장희 부지회장이 해고무효 소송을 하는 동안 에버랜드는 제일모직을 거쳐 삼성의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물산으로 바뀌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3대 세습과 삼성전자 지배를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회사다. 이재용 부회장이 3대 세습을 완성하고, 향후에도 삼성그룹에 대한 안정적인 지배를 위해서는 삼성물산이 중요하다. 삼성물산에 존재하는 민주적인 노동조합은, 삼성 재벌의 1인 총수지배체제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내부 자정세력인 셈이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이 있다. 이번 박근혜-최순실-이재용 게이트를 접한 국민들은, 이번에는 권력자와 재벌들을 반드시 처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특히 최순실에게 직접 돈을 건넨 유일한 기업이고, 이재용이 직접 관련되었다는 분명한 혐의점들이 밝혀지면서 이재용에 대한 처벌 요구도 커지고 있다. 사상 유례가 없는 재벌들의 청문회 동반 출석, 각 재벌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또 특검에서 이재용을 비롯한 재벌 총수에 대해 수사를 예고 한 것은 이런 국민의 감정과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검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내려지게 될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삼성 사건을 다루는 또 하나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검찰과 법원은 삼성 앞에만 서면 유독 작아졌다. 이건희 회장은 수백 억 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수천 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했으나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다른 범죄행위도 마찬가지다. 공정거래를 위반해도,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해 물고기가 집단 폐사해도, 유독가스를 누출해 노동자가 죽고 지역주민이 위험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해도, 삼성이 처벌 받은 사례는 없다.

이번 조장희씨의 대법원 판결은 부당해고를 다투는 문제이면서 동시에 ‘노조파괴’라는 반 헌법적 삼성범죄를 다루는 재판이기도 하다. 삼성이 조직적으로 노동조합을 파괴했다는 정황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미 하급심인 행정법원과 고등법원에서도 조장희씨의 해고는 삼성의 노조파괴문건 ‘S그룹 노사전략’를 따른 것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따라서 대법원에서 조장희씨 해고를 부당해고로 판결한다는 것은 사실상 하급심의 판결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삼성의 범죄를 인정하는 것이다.

최순실-박근혜-이재용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번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이번 대법원 판결에 주목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상식에 따라 판결한다면, 앞으로 삼성에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법을 무시하고 인권을 부당한 권력을 행사해도 언젠가는 정의에 의해 심판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일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때보다 국민들이 삼성 이재용을 처벌하고 올바른 법질서를 실현하자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동안 해오지 못했던 삼성에 대한 처벌, 그리고 삼성에게 피해당한 이들을 구제하는 역할을 법원이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최순실-박근혜-이재용 게이트의 직접적인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삼성의 국정농단, 헌법파괴를 심판한다는 측면에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다. 특검의 삼성수사가 또 한 번의 요식행위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또 한 번의 삼성 봐주기 수사가 되지 않도록 삼성도 처벌 받을 수 있고, 잘못된 삼성의 범죄는 용인해서는 안 된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현재 진행 중인 특검수사에서 삼성재벌 사안을 어떻게 수사할지에 대해서는 이정표를 제시하고 삼성그룹의 무노조 78년 역사에는 종지부를 찍어주길 간절히 바래본다.

무엇보다 부당하게 해고돼 고통스러운 5년을 보낸 조장희 부지회장이 하루 빨리 일터로 돌아가 삼성에 민주노조의 꽃을 피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시 삼성을 묻는다' 기획 연재는 삼성노동인권지킴이 (slw.or.kr) 사이드에 동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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