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12월 19일은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 사실 '통진당'이라는 용어는 언론들의 의도적 악의가 담긴 용어이고, 통합진보당 자신도 진보당이라는 약칭을 원한다고 표방해 왔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무시한다.)이 헌법재판소에 의해서 강제해산당한지 2년째 되는 날이었다. 김기춘이 헌재를 압박해 정당해산을 주문 생산한 것이 드러나며 이날은 더욱 가슴아픈 날로 다가왔다.

우파 결집과 진보 분열로 이어져 온 종북몰이는 박근혜의 핵심병기였고, 특히 진보당은 그 핵심 표적이었다. 몇 년전 인터넷에서 '종북 셀프테스트'가 유행할 때 첫째 질문이 바로 '당신은 통합진보당 당원인가?'였다.

이런 종북몰이는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요즘 탄핵 국면으로 넘어가면서 조중동과 우파가 반격의 핵심 고리로 삼은 것도 종북몰이다. 며칠 사이에 '촛불 집회에 웬 이석기 석방 구호' 이런 식의 기사, 칼럼이 부쩍 늘었다. 민주당과 문재인 등을 종북으로 몰아가는 공격도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게 여전히 먹히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 '진보당 세력은 숟가락 얹지 말라'거나 '반성과 사과부터 하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억울하겠지만 사람들 눈높이에 안 맞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하는 반응이 그마나 낫다. 물론 종복몰이가 낳은 편견과 오해, 위축 효과 때문에 난점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200만 촛불이 등장한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인가'라고 묻고 싶다. 그런 식으로 영원히 오지 않을 '적절한 때'와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보다, 지금이야말로 힘을 모아 사람들의 편견을 벗겨내고 눈높이를 끌어올릴 기회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끈기있게 알려내고 설득, 토론하면서 말이다.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 과정에서 진보당 해산 문제를 '정치, 사상과 표현의 자유'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은 반만 맞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진보당 주도 세력의 정치와 사상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당 세력이 경선부정을 저질렀고, 북한에 대한 잘못된 태도와 위험한 노선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이란 전제 아래, '따라서 방어할 수 없다'는 주장과 '그래도 방어하자'는 공방이 이어져 왔다. 그렇게 접근하면서 '나는 진보당은 아니지만', '나도 이석기를 반대하지만'을 말머리에 덧붙이는 게 진보진영의 관행이 돼버렸다.

'나는 당신의 생각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생각 때문에 탄압받는다면 함께 싸우겠다'는 유명한 볼테르의 말(볼테르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도 있다.)도 이런 타협의 맥락에서 자주 인용됐다. '나는 당신의 생각에 반대한다'는 말을 꼭 덧붙여야 하는 것처럼 돼버린 것이다.(그래서 건국대 법학과 한상희 교수는 이 말이 오해돼 왔다고 지적한다."뒷 문장을 얘기하기 위해 앞 문장을 실토할 필요가 전혀 없죠" "앞 문장을 얘기하도록 강요하고 있는 이 사회")

물론 '그래도 방어하자'는 입장이 명백히 더 낫다. 하지만 이 입장은 진보당과 선을 긋거나 거리를 두려는 태도로 연결되기 쉽고, 더구나 방어에도 효과적이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문제와 잘못이 많고, 나도 저 사람들이 별로지만 그래도 방어하자'는 논리로 들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가지가 핵심이라고 본다. 첫째는 '진보당 세력이 의원 자리를 차지하려고 경선부정을 저질렀고, 전쟁이 터지면 북한에 호응해 봉기하자는 논의를 자기들끼리 모여서 했다'는 것이 누명, 조작이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마녀사냥의 출발점이자 핵심고리 구실을 한 경선부정은 나중에 거듭해서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으며, 내란음모는 김기춘과 국정원이 '조작'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프락치 침투와 녹취록 날조를 통해서 말이다. '구체적 준비와 실행이 없었다면 내란에 대한 논의도 사상의 자유'라는 식으로 흐려서는 안 된다. '조작'을 분명히 해야 한다. 예컨대 왜 우파가 지금까지도 유서대필 '조작'이란 프레임과 용어를 굳이 피하는지 봐야 한다.

둘째는 진보당 해산이 특정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이 나라 민주주의와 진보운동 전체에 대한 공격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약화된 것은 단지 특정 정파나 사상이 아니었다. 진보운동이 정권과 체제에 반대해서 단결하고 투쟁할 능력 자체가 분열, 위축됐다. 정치지형 전체가 오른쪽으로 이동했고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에 대한 목소리 전체가 약화됐다.

지금 촛불혁명에서 진보정당과 정치인은 보이지 않고 민주당과 이재명 등이 주로 주목과 수혜를 받는 것도 그 여파다. '종북몰이'에 대한 태도, 그것이 낳은 불신과 앙금 때문에 지금도 진보의 단결은 가로막히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반성해야 할 것은 진보당이 경선부정에 대한 누명을 덮어쓰고 있을 때 침묵·방조하고, 마녀사냥의 광풍 속에서 '나는 진보당이 아니고 이석기와 생각이 다르다'며 거리두기를 하던 나같은 사람들이다.

거꾸로 진보당 주도 세력에게 '반성과 사과부터 하고 나와라'고 할 문제가 전혀 아닌 것이다. 이것을 특정 정파의 복권을 넘어선, 진보운동이 이간질과 탄압을 넘어 단결·투쟁하며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지킬 수 있느냐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진보당과의 사상적 차이와 이견을 덮어 두자거나,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선 긋기와 거리 두기를 하는 맥락에서 이견을 드러내고 비판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 정말로 진보당과 자신의 차이를 토론, 비판하고 싶은 사람일수록 더욱 더 방어에 힘써야 한다. 왜냐면 지금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바로 종북몰이이기 때문이다.

몇 주 전에 지역에서 열린 <자백> 상영회와 간담회 때 나는 최승호 피디에게 '종북몰이 조작의 핵심이었던 내란음모 조작 사건을 다뤄볼 생각은 없나'고 묻고 제안했다. 최승호 피디도 '그 문제에서 우리 쪽이 특히 무기력하고 부족했다는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촛불집회에 가서 다른 캠페인을 돕다가 이석기 석방 서명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몸이 2개라면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훼방놓는 사람도 간혹 있겠지만, 지난 12월 17일 촛불집회에서는 몇 시간만에 무려 8천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배포하던 '이석기 의원 석방하라'는 손팻말을 광화문 지하철역에서부터 받아서 손에 드는 아주 많은 사람들도 봤다. 이 분들이 뭐라고 쓰인지도 안 보고 생각 없이 그랬다고 본다면 천만의 말일 것이다. 내가 그렇듯이, 다른 사람들도 자신이 어떤 팻말을 들 것인지, 팻말에 쓰인 문구는 무슨 의미인지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한다.

촛불은 여기서도 진화하고 있고, 우리는 힘을 모아 더 설득, 토론하고 촛불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 '촛불집회에 웬 이석기 석방이냐'는 조중동의 공격과 흔들기가 먹히면 '촛불집회에 웬 사드 배치 반대냐', 웬 성과급제 중단이냐, 웬 위안부 합의 반대냐, 심지어 웬 세월호 진실 규명이냐... 등으로 계속 확대하려는 저들의 의도가 뻔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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