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동짓날도 '무명남', '무명녀'의 위패가 서울역 광장 한 켠에 모셔졌다. 거리에서 숨을 거둔 홈리스를 추모하기 위함이다. 여론과 언론의 눈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쏠려 있는 가운데, 16번째 '홈리스 추모제'가 어김없이 열렸다.

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 등 다수의 노숙인 인권 및 빈곤철폐운동 시민사회단체들은 21일 저녁 6시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함께 살 권리"라는 이름으로 홈리스 추모제를 열었다. 비가 내리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시민 100여 명이 추모제에 참석해 "빈곤 차별 철폐"를 외쳤다.

▲ 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12월21일 저녁 6시 서울역 광장에서 "홈리스, 함께 살 권리"라는 이름으로 홈리스 추모제를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현수막이 걸린 무대공간 왼편엔 얼굴없는 영정사진 42개가 놓여있었고 오른편엔 '무명남', '무명녀' 위패를 모신 분향소가 마련됐다.

과거 2여 년간 노숙 생활을 한 적 있는 김아무개씨(41)는 올해 홀로 쪽방에서 숨을 거둔 홈리스 양아무개씨(51세 추정)의 추모사를 읽었다. 김씨는 양씨의 상주였다.

양씨는 올해 1월16일 서울 서부역 인근 쪽방에서 사망했다. 집주인이 사망한 지 사나흘이 지난 양씨를 발견했다. 양씨의 친족은 경제적인 이유로 양씨 장례를 거부했다. 다행히 무연고자 장례를 지원하는 사회단체 '나눔과 나눔'이 이를 알고 양씨의 장례를 진행했다.

10년 간 양씨와 함께 추모제를 준비해왔던 김씨는 "올해도 추모제를 준비하면서 하늘나라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거리 노숙인을 지켜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며 "고단했던 삶 거기서는 편히 쉬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 2016년 홈리스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든 피켓. 사진=손가영 기자

장례를 치르지 못한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은 어떻게 될까. 서울시는 무연고자 수습을 각 구청에 위임했다. 시신이 영안실에 안치되고 6개월까지 구청은 시신을 찾아갈 가족을 찾는다. 가족들조차 '돈이 없어' 시신을 찾지 않을 때가 많다. 운구차가 싣고 간 시신은 화장 처리된다. 서울지역의 경우 유골은 파주 용미리에 있는 '무연고 추모의 집'에 10년 간 보관된다.

무연고자 사망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1년 682명, 2012년 719명, 2013년 878명, 2015년엔 1245명이 고독사했다. 이들은 경제적 파산이나 가족해체 등의 이유로 무연고로 살게 된 경우가 많다. 거리 홈리스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연대발언에 나선 이현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의료사업국장은 "홈리스 평균 수명이 48세라고 한다. 현대인의 평균 수명은 70~80세 사이"라면서 "홈리스 죽음은 자연사가 아니라 사회적 죽음이자 사회적인 죽임이라는 뜻"이라 지적했다.

이 사업국장은 "우리는 홈리스를 보면 불편하다는 생각이 따라붙는다. 이 불편함이 홈리스 문제를 해결해가는 근원적 추동"이라면서 "불편함을 똑바로 직면하고 더 많은 옆 사람들과 나누려고 할 때 행동이 나올 것이다.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행동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예산에는 노숙인은 없었다." 추모제에 곳곳에서 보인 서울시 규탄 피켓이다. 노숙인 인권운동 단체 '홈리스행동'은 편성단계의 서울시 2017년 예산안을 확인한 뒤 '노숙인 보호 및 자활지원 정책' 복지 예산이 4억 여원 삭감됐다고 주장했다. 전체 예산이 29조6524억 4000만원으로 전년대비 7.8%증가했고 이 중 사회복지 예산은 8조6910억 원으로 전년대비 3458억 원이 증가, 청년수당 정책으로 청년 지원 또한 대폭 늘렸음에도 노숙인 예산은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서울시 자활지원과 관계자는 23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예산은 삭감되지 않고 오히려 늘었다. 지난해 책정됐던 은평·서울역 지역 노숙인 시설 건립·보수 예산 25억 정도가 올해 배정되지 않아 삭감처럼 보이는 것"이라면서 "노숙인 지원사업, 쪽방주민센터사업 등 예산이 1억 증가했고 쪽방촌 인문학 강좌, 재활시설 운영비 등도 각 1억 증가하는 등 전반적으로 늘었다. 올해보다 3억 가량 준 것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22억 여원 증가한 것"이라 반박했다.

문제는 예산규모보다 홈리스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홈리스 추모제 준비단 활동가들은 주거, 의료, 일자리, 장례문화 등을 지적하고 2016년 요구안을 공표했다.

홈리스의 대표적 주거지인 '쪽방'마저도 일방적인 개발정책에 철거되는 형국이다. 동자동사랑방의 공룡 활동가는 "이들이 재개발 때문에 대책 없이 쫓겨나거나 5년짜리에 불과한 생색내기 저렴 쪽방에서 불안불안 살아가지 않도록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쪽방 개발에 대한 규제조치를 마련하라"며 "가난한 사람과 쪽방을 살리는 공공 쪽방 주거대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의료지원제도가 마련돼 있음에도 홈리스에겐 '그림의 떡'일 때가 많다. 가을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활동가는 "노숙인 1종 의료 급여가 있어도 선정조건이 너무 까다로워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 홈리스가 적다"면서 "급여를 이용할 수 있는 지정병원 수도 매우 제한적이고 요양병원은 지정병원이 없어 홈리스가 갈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노숙인 1종급여 적용 확대 방안과 홈리스가 이용가능한 요양병원 지정 확대를 요구했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끊어졌던 관계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이자 거리의 삶에서 열악하지만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는 발판이 되는 것이 일자리가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3~6개월 자립자활제도 폐기 및 지속적인 일자리 보장 △적정 급여 보장(현 52만원 수준) △노숙인 맞춤 단계적 일자리 확대 등을 요구했다.

▲ 2016년 홈리스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은 추모제 후 서울역 내를 행진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은 '홈리스 장례'와 관련해 "돈 때문에 빈소도 빌리지 못한 채 장례조차 치를 수 없고 행정적 책임 부재로 이들 사망신고조차 잘 되지 않아 죽어서도 죽지 못한다"면서 "부담을 줄이고 존엄한 죽음을 보장할 수 있는 공영장례지원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장례는 모두의 삶에 정말로 필요한 것"이라면서 "현 장례문화는 지나치게 상업화됐다. 공공성 담보를 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추모제 후 서울역 내부로 행진했다. 행진을 이끈 가을 활동가는 서울역 내 중앙에 서서 "서울역은 홈리스를 보호가 아닌 혐오로 대하고 있다"며 "개선하라"고 외쳤다.

서울역은 2011년 노숙인 강제퇴거조치를 단행했다.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공공역사의 홈리스 퇴거조치는 홈리스를 더 위험한 환경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서울역 퇴거조치 후 한 50대 남성 노숙인이 추위를 피해 지하주차장에서 잠을 청하다 차량에 깔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2월 23일 17시 40분 기사 수정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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