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가 삼성 뒤에 숨었다.” 지난 12일부터 ‘정몽구 구속’ 피켓을 들고 매일 아침 박영수 특검 사무실로 출근하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 임승환씨의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및 최순실씨의 제3자 뇌물공여죄 관련, 여론이 삼성에만 주목한다는 지적이다.

현대자동차 그룹(이하 현대차 그룹) 계열사 노동자들이 직접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을 고발하고 나섰다. 현대차 그룹 계열사 17개 노조는 21일 오전 정몽구 회장을 제3자 뇌물제공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박영수 특검에 고발했다.

▲ 12월12일 오전 9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손가영 기자

박근혜 대통령 및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공동정범으로 동시에 고발됐다. 고발장 제출엔 전국금속노동조합 및 산하 삼성그룹 계열사 2개 노조가 함께 했다.

이들은 21일 오전 10시 고발장 접수 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치빌딩 특검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권력 위의 권력, 진짜 비선실세 권력은 재벌이라는 것은 지난 정경유착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면서 “재벌총수들이 선의의 피해자가 되는 순간 박근혜에 대한 뇌물수수죄 적용은 물 건너가게 된다. 특검은 빠른 시일 안에 재벌총수들을 피의자로 특정하고, 박근혜와 재벌총수들을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차의 첫 번째 혐의는 대기업 53개가 공동으로 연루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뇌물 공여 의혹이다. 현대차는 미르·K스포츠재단 744억원 기업 출연금 중 총 128억 원을 냈다. 미르재단에 85억 원, K스포츠재단에 43억 원이다. 삼성이 204억 원으로 최고액을 출연했고 그 다음 최고액이 현대차가 낸 출연금이다.

미르·K스포츠재단은 최순실 등을 향한 자금 세탁 경로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두 재단은 표면적으로는 최씨와 관계가 없지만 재단 이사진 및 임원 대부분이 최씨 측근인 점, 비덱스포츠·더블루K 등 독일과 국내 여러 개인 회사들을 통해 재단 자금을 빼내는 수법이 발견된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된다.

▲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6차 범국민대회가 열린 지난 12월3일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의 집회 모습. 사진=이기화님.

현대자동차는 최씨의 차명회사에 73억 원에 달하는 일감 몰아주기 계약 특혜도 제공했다. 

현대자동차는 2015년 2월부터 2016년 9월까지 최순실 지인이 운영하는 흡착체 제조·판매사 'KD코퍼레이션'과 11억 원 상당의 납품 계약을 체결했다. 사실상 최순실이 운영하는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는 지난 4~5월 간 현대자동차로부터 62억 원 규모 광고를 수주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박근혜 대통령, 안종범 전 정책수석 및 최순실이 공모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청년희망재단 출연금 150억’ 뇌물 공여 의혹도 있다. 시사저널은 지난 11월 정부가 제안한 민간재단 ‘청년희망재단’이 미르·K 재단과 유사한 방식으로 재벌 총수의 동시다발적 자금 출연을 통해 세 달 만에 942억원을 모았다고 보도했다. 정몽구 회장은 청년희망펀드에 사재 150억원을 기부했다. 이 의혹은 21일 제출된 고발장에 적시돼있진 않다.

이에 대한 대가로 현대차 측이 ‘친환경차 및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 지원’, ‘노조 쟁의에 대한 엄격함 법집행’ 등 자사 민원 사항을 요구했고 노동5법·원샷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 등 조속한 통과를 요구했다는 것이 고발인들의 주장이다.

현대차 그룹이 2015년 7월 제출한 '현대차그룹 현황-BH창조경제간담회 참고자료'을 보면 "노동관련제도 선진화 및 고용유연성 확보 시급"이란 제목 아래에 △대체근로 허용 △쟁의행위 요건 강화, △제조업 파견 근로 허용 △정리해고 요건 완화 등이 적혀 있다. "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 관련해선 △건축인허가 기간 단축 △과도한 공공기여 부담 완화를 위한 방안 도출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통합개발 등을 요구사항으로 열거하고 있다.

2015년 7월은 박 대통령이 미르·K 재단 출연금을 직접 모금했던 시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7월 24일 청와대의 창조경제혁신센터장 및 지원기업 대표 오찬 간담회 이후 이 행사에 참석한 대기업 총수 17명 가운데 7명을 차례로 독대해 직접 두 재단에 대하 자금 출연을 요구했다.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삼성, LG그룹, 롯데그룹, SK수펙스추구협의회 등 재벌 총수가 대통령과 독대했다.

현대차 그룹, 삼성그룹 등 전경련 회원사들은 파견근로 확대·일반해고 완화 등을 골자로 한 고용노동부의 ‘노동5법 통과’와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골자로 한 원샷법 통과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 지난 12월20일 특검 사무실 출근길의 박영수 특검. ⓒ포커스뉴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9월16일, 전날 이뤄진 노·사·정 합의를 깨고 파견노동 범위를 늘리는 등의 내용을 담은 ‘노동5법’을 발의했다. 2016년 1월, 박대통령은 기업이 민원 사항으로 알려진 경제활성화법 처리를 촉구하며 직접 ‘1천만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K스포츠재단에 대한 기업의 출연금 입금이 완료된 지 한 달 여 후였다.

현재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 및 재벌기업 총수의 제3자 뇌물공여죄 입증을 정조준하고 있는 태세다. 본격 수사가 시작된 21일, 특검은 보건복지부, 국민연금관리공단 및 공단 임원 자택 등 10곳 이상을 압수수색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특혜와 관련 삼성과 박 대통령 간 뇌물공여 관련성을 수사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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