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박근혜-이재용 게이트로 진화해가는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드러난 정경유착 실상은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유착의 대가성을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재벌과 정부의 공모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에 대한 재벌들의 대규모 출연과는 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다. 이미 권력은 시장에 넘어갔고, 재벌과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연합으로 성장한 막대한 경제권력은 정치권력이 되었으며 사회 전반의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다.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이 권력은 시장 규칙들을 바꾸기 시작했다. ‘고용없는 성장’과 ‘양극화’, 그에 따른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총수(일가) 지배력을 유지한 채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한 재벌들은 3세 승계체제를 더욱 공고화했다. 2012년 재벌과 대(大) 자본에 의한 성과독식, 부(富)의 사유화 체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국민들의 경제민주화 열망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말았다. 그 중심에는 항상 삼성 재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해서 이재용에 대한 경영권 승계라는 프로젝트가 작동하고 있다.

3세 승계의 공모자들

이재용에 대한 3세 승계는 ①그룹 컨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이 주도한 갖가지 불법과 탈법 ②삼성 재벌에 대한 정부의 면죄부와 친재벌적 규제 완화정책 ③삼성 위기를 대한민국 위기로 등식화하여, 국부유출이나 외국자본의 ‘먹튀’를 막아야 한다고 ‘민족적’ 정서를 부추켰던 언론과 지식인들이 공모한 결과이다.

▲ 6월1일 오후 서울 중구 순화동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호암상 시상식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해 있다. ⓒ 연합뉴스
먼저 당사자인 삼성 재벌은 1990년대 중반 이재용의 경영권 세습을 위해 불법과 탈법을 동원했다. 잘 알려져 있듯 에스원과 삼성엔지니어링 주식 매입, 에버랜드 불법 전환사채 발행, 삼성SDS BW(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 등 승계를 위한 물적 토대를 만들었다.

둘째, 이 불법과 탈법에 정부는 매번 면죄부를 주고 책임을 끝까지 추궁하지 않았다. 에버랜드를 통한 경영권편법 승계에 대해 2009년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리기 전에도 정부는 삼성 재벌의 지배구조에 대한 실효성 있는 규제를 집행하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2005년 금산법 개정 시 재벌 금융사가 보유하는 타 계열사 지분 중 5% 초과분에 대해 의결권 행사 한도를 제한하되, 이전부터 갖고 있었던 5%초과지분은 그대로 보유하도록 했고, 보험사 소유 계열사 주식 및 채권 투자 한도(총자산의 3%) 계산 시 해당 계열사 주식을 시가가 아닌 취득원가로 평가하도록 예외를 허락했다(일명 삼성생명보험법). 급기야 2016년 말 공정거래위원회는 중간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삼성, 현대차, SK, 한화 등 금융사를 보유한 재벌 대기업집단들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소극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공모자는 삼성의 위기를 대한민국의 위기라고 하면서 지배구조 개혁에 저항하고 정부 규제를 회피할 수 있도록 해준 민족주의 ‘보수’언론과 지식인들이다. 2014년 1월8일 조선일보는 ‘삼성전자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제하의 특집 기사를 통해 삼성전자가 없을 때 급격하게 추락하는 한국경제를 보여주면서 “삼성전자 없으면 수출코리아도 없다”며 우리가 과연 이런 상황을 생각이나 할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여기에 글로벌 리더 삼성의 패러독스 경영을 신화처럼 만들어냈던 대학 교수들, ‘지배구조 리스크’ 운운하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외국자본(엘리엇)으로부터 국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거품을 물었던 지식인들이 가세했다.

▲ 그림1) 이건희와 이재용의 지분율 변화


▲ 그림2) 삼성 재벌 공익재단의 계열사 지분(2016년 6월 말 현재)

이 모든 게 이재용 왕국을 위한 것

2014년 이건희가 심근 경색으로 쓰러지기 전부터 삼성은 두 가지 과제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이재용에 대한 안정적인 경영권 세습이고, 다른 하나는 이부진, 이서현 등 3남매에 대한 분할 상속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한 무차별적 구조조정과 감원, 사업재편을 실시했다. 이 중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건희 사태 후 삼성 재벌의 과제를 푸는데 핵심적인 고리였다.

이 합병을 앞뒤로 진행된 사업재편의 특징을 보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전에는 사업부 분리나 계열사간 지분 매입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면, 합병 이후에는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지분 매입(자사주 포함), 중간금융지주회사를 염두에 둔 삼성생명의 지분 변동 등이 주를 이루고 있다.

▲ 표1) 삼성물산-제일모직(구 에버랜드) 합병 전후의 사업재편 일지

특히 ‘주주친화 경영’으로 포장된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은 합병 이후에도 여전히 낮은 이재용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산 제약과 공정거래법상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되는 상황에서 그룹 내 삼성전자 지분율을 추가적으로 높이기 위한 유일한 매입 가능 주체는 삼성전자였다는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2015년 말부터 2016년 말까지 진행된 삼성전자의 11.3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소각은 지배주주인 삼성물산의 지분율을 약 1%정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 그림3)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 규모(단위:10억 원)
두 번째 특징은 합병으로 인하여 이재용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합병 전 삼성전자 직접 주식 0.57%를 소유하던 이재용의 지분은 변화가 없으나 합병 이후 삼성물산(삼성전자 4.1%, 삼성SDS 17.1%)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합병 이전 삼성물산에 대한 지분은 ‘0%’였다. 이후 2016년 2월 이재용은 삼성SDI가 갖고 있던 삼성물산 지분을 매입하여 16.5%에서 17.08%로 지분을 늘렸다.

▲ 그림4) 이재용의 지분 변화
▲ 그림5) 합병 전후의 삼성 재벌의 지배구조
그렇다면 합병은 타당한 것이었는가? 합병 당시 삼성 재벌이나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 그리고 찬성 의견을 냈던 대부분의 증권회사들이 주장했던 논거는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재벌에 대한 전 사회적 비판에 직면했을 때도 재벌들은 계열사통폐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 창출 운운하며 핑계를 댔고, 이후 규제가 완화되면서부터 다시 계열분리나 신설을 통해서 사업 확장, 총수지배력을 확대했다. 또 합병으로 예상되는 시너지는 굳이 합병하지 않고도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로 익히 해왔던 방식이었다. 다른 사업 영역이나 계열사들을 합병할 때는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고, 반대로 분리할 경우 핵심사업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구실을 반복해서 내세웠다. 따라서 합병을 통해 장기적으로 기업가치가 높아진다는 주장은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창출될 때만 가능한 일이며, 합병 후 주주친화적인 지배구조로 개선하겠다는 것 역시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현재의 지배구조 하에서는 그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다.

합병은 이재용 일가에 부를 늘려주는 부수적 효과를 가진다. 국민들의 관심은 국민들의 노후를 위해 적립된 국민연금이 1:0.35라는 불합리한 합병비율, 의결권행사위원회에 회부하지 않은 절차상의 문제 등을 가진 안건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국민연금기금에 손실을 끼쳤다는 합병으로 인한 손실액 3468억 원은 합병비율을 0.46으로 적용할 경우와 비교한 손실추정액(투자위원회 자료)이며. 5900억 원은 11월 27일 삼성물산 종가 기준으로 합병 이전 주가와 비교하여 계산한 손실액(재벌닷컴 자료)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불합리한 합병비율로 인해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높아졌고 그만큼 부가 증가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2개의 회사가 합병을 하게 되면 총수 일가의 삼성물산 지분은 감소하는데, 삼성물산에 불리하게 산정된 합병비율로 인하여 1:1로 합병했을 경우 이재용을 포함한 총수 일가가 가지게 될 지분율(20%)보다 10%정도를 더 많이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통합 삼성물산 시가총액 약 30조 원 중 3조 원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금산분리 규제 우회, 순환출자 해소 준비

합병으로 인한 또 다른 효과는 제조업과 금융을 동시에 지배하려는 이재용의 삼성 재벌이 금산분리 규제를 우회하는 차원에서 대비책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후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제정될 경우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로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사안이 될 것이다. 현재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에 대한 간접 지배는 금산분리를 위반하고 있다. 그런데 합병 이후 이건희가 가진 삼성전자 지분(3.4%) 등 우호지분을 합하면 삼성물산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분율은 최대주주인 삼성생명(7.2%)보다 높아지고, 금산 분리 규제가 시행된다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우호세력에 매각해도 지배구조 리스크에 대비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합병을 통해서 삼성은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고 남은 순환출자를 해소하기가 이전보다 더 쉬워졌다는 점도 합병의 부수적 효과의 하나이다. 이미 삼성 재벌은 이건희 사태 이후 계열사 상장과 합병 등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20여 개 정도 줄인 상태였다. 대표적인 예로서 제일모직(구 에버랜드) 상장 당시 삼성카드가 보유한 지분 5% 전량을 구주 매출로 처분해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제일모직’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한 바 있다. 그리하여 2016년 3월 현재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통합 삼성물산에 대한 삼성전기 지분(2.64%), 삼성SDI 지분(2.11%), 삼성화재 지분(1.38%)을 해소해야 한다.

중간지주회사가 마지막 관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성공적인 합병은 따져보면 이건희 사태 이전부터 이재용에 대한 경영권 세습을 위해 기획했던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번 삼성물산 합병으로 삼성은 삼성전자(제조업)와 삼성생명(금융업)을 동시에 지배하기 위해, (중간)지주회사제도를 이용한 경영권의 ‘합법적’ 승계 시나리오를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는 2016년 말까지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을 입법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삼성 재벌은 금융계열사들의 수직계열화를 강화하고, 제조업 계열사와 교차 출자 상당 부문을 해소하였는데 이는 이런 시나리오를 준비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다.

여기에다 2014년 이미 조선일보에서 제안했고, 최근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제안했던 것처럼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하고,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되면, 통합 삼성물산과 삼성전자투자회사(순수지주회사)를 합병하려고 할 것이다. 삼성전자 인적분할로 설립된 삼성전자투자회사는 13.39%(9.28일 기준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의 삼성전자사업회사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그런 다음 공정거래법 상의 자회사 지분소유요건(상장회사 20%, 비상장회사 40%)을 충족하기 위하여 삼성전자투자회사는 공개매수를 통한 현물출자를 실시할 것이며, 삼성생명을 제외한 삼성물산과 이건희 회장 등이 공개매수에 참여한다면 삼성전자 투자회사의 지분율을 월등히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회사 지분소유 요건도 해결할 수 있다.

정경유착 차원을 넘어선다

그러나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것을 보면 지주회사화로 대표되는 정부의 재벌규제 정책이 효과적이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또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리, 이재용 게이트 특검, 국정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문제를 단순히 ‘정경유착’ 차원에서 바라보는 한 해결책을 찾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거대 경제 권력을 그대로 둔 채 이들과 정부간 유착을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 더 근본적으로 거대 경제 권력을 분할하는 방법과 정책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물론 거대 경제권력을 쪼개 힘을 빼는 일은 단 기간에 가능할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재벌 규제에 관한 정부의 인식 전환이다. 전경련 탈퇴나 미래전략실 해체라는 떠밀려서 할 수 밖에 없는 재벌의 해법 역시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규제 당국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재벌총수의 지배력 약화를 위한 직접적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강력한 순환출자 해소, 계열분리명령(청구)제 시행, 혹은 기업분할명령(청구)제 등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인식전환과 실천만이 국민들의 엄중한 요구에 부응하는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럴 때라야 비로소 기업, 산업, 시장수준에서 민주주의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광장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시민권의 부활도 꿈꿀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의 엄중한 요구에 비해 재벌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실제 조건이나 상황은 녹녹치 않다. 이미 경제권력에 포획된 정부와 관료들, 재벌 체제로부터 이득을 챙겨온 기득권 세력과 이재용 체제를 만든 공모자들, 재벌 개혁을 ‘포퓰리즘’이라 하면서 권력의 통제로부터 ‘시장경제’를 지키고, 민족적 정서에 기대 ‘국부유출’을 막자던 지식인들이 그렇다. 어쩌면 파우스트의 거래에 익숙해진 우리 자신들이 더 문제일지도 모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정부의 재벌정책과 직접적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현행 법률에 따라 이루어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무효소송의 최종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고등법원은 2심 판결을 통해 동 합병과정의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법원의 판단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합병비율 재산정’이라는 결과를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특검조사 등으로 합병의 불법성과 부당성, 대가성이 증명된다면, ‘합병 무효화’ 도 가능하다. 제도적으로 이 결과를 어떻게 집행해 갈지 다소 복잡한 과정이 예상되지만, 이 방안도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 2015년 5월7일 박근혜 대통령이 경기도 평택 고덕 국제화계획지구 내 부지에서 열린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 기공 발파식을 마친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야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음으로는 금산분리 규제를 강력하게 시행해야 한다. 박근혜는 대선 후보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의결권 지분 제한을 현행 15%에서 단독 금융회사 기준으로 5%까지 단계적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삼성은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행사를 이재용 지배체제 강화에 이용하고 있다. 이번 합병에서도 드러났듯이 삼성물산에 대해 4.79%를 가지고 있던 삼성화재의 의결권 행사가 금지되어 있었다면 합병은 불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을 조속한 시일 내에 통과시켜 삼성 재벌이 의도하는 시나리오 실현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예를 들면 신설지주회사의 자회사(사업회사)의 의결권 없는 자사주가 의결권 있는 자회사 주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막고, 분할승계회사에 대한 자사주 배정 금지(상법 개정안, 박용진 의원 발의), 지주회사 전환 시 자사주 소각 의무화(공정거래법 개정안, 제윤경 의원 발의), 2014년에 발의되었다가 올해 6월에 다시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 등이 그것이다. 또 이재용 시대 들어 총수(일가) 지배력 강화에 이용되는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및 성실공익법인 폐지법안 역시 통과되어야 할 것이다.

삼성 재벌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이번 합병이 남긴 교훈 가운데 중요한 것으로 주주행동주의 혹은 기관행동주의(Institutional Activism)의 주체로서 국민연금의 역할이 있다.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은 기관행동주의를 위반한 것이자, 국민연금기금의 수탁자로서 의무를 저버린 행동으로 재벌의 사익 추구를 방조하고, 더 나아가 특정 개인의 지배권을 공고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삼성과 정부(보건복지부)의 공모에 거수기 역할 밖에 할 수 없었던 현재의 의사결정구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동시에 인식해야 한다. 즉 의사결정기구가 수직 계열화된 현재의 국민연금 지배구조를 개선하여 기금 운영의 정부 종속, 비자율적 운영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역시 기금운영의 정부 독립 없이는 무의미한 일이 될 것이다. 합병에 찬성한 국민연금의 피해액을 강조하고, 필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손해배상 청구에만 머문다면 국민연금 지배구조에 대한 개혁의 길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 ‘다시 삼성을 묻는다’ 기획 연재는 삼성노동인권지킴이(slw.or.kr) 사이드에 동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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