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청자들이 가장 본방 사수하는 예능 프로그램은 뭘까? 체감상 <썰전>이 아닐까 싶다. 시청하면서 미친 듯이 웃을 일은 없어도 문득 정신차리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흘러가 있다.

예능이 만들어 내는 세계보다 현실 세계의 뉴스가 더 드라마틱한 감정을 유발하고, 실소를 자아내는 매일이 반복 된지도 벌써 두 달이 됐다. 심지어 이 시국에 다른 예능 프로그램들은 시시하고 소소하게 느껴진다고들 말한다. 이 지점에서 예능 PD들의 고민도 시작된다. 예능보다 웃픈 현실 앞에서 예능 PD는 당장 매주 어떤 방송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살 수 있을까.

우리의 시작은 시국 버스킹이었다. 유병재 작가가 JTBC ‘말하는대로’에 출연하기로 하고 미팅을 하는데, 미국식 스탠드업 코미디에 애정이 있고 공연을 올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렇다면 ‘말하는대로’에서 먼저 시도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때마침(?) 풍자할 거리들은 많았다. 오히려 매일 새로운 이슈가 터져 나오는 것이 문제였다. 개헌 소재 코미디를 준비하면 길라임 터지고, 길라임 준비하면 비아그라 터지는 식이었으니.


아무튼 유병재 작가의 시국 버스킹은 - 시국 버스킹이라 쓰고 스탠드업 코미디라고 읽는다 - 성공적이었다. 온라인 상에서 150만 뷰를 기록했고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빠르게 공유됐다. 덕분에 유병재 작가의 풍자력(?)과 신규 프로그램 ‘말하는대로’도 화제가 됐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방식은 뭘까. 고심 끝에(?) ‘말하는대로’는 아예 정치인들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엄밀한 의미의 정치인은 아니지만)이 출연했고, 다음주 방송엔 이재명 성남시장이 버스킹을 한다. 이들의 말은 유병재의 시국 버스킹은 못지 않게 온라인에서 빠르게 공유되고 화제가 되고 있다. 웬만한 연예인들의 버스킹보다도 정치인들의 말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걸 보며 시청자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기대하는 것들도 달라지고 있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느낀다.

매주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면서 그 어느때보다 시청자들에게 정치가 현실에 가까이 다가온 요즘이다. 이 시국에 정치인들의 말을 버스킹을 통해 날 것으로 듣고 직접 평가해보는 재미(?)는 웬만한 예능이 주는 웃음 못지 않은 즐거움이 되는 것 같다. 다음 주에 출연하는 이재명 성남시장은 ‘정치는 만인의 스포츠’라는 명언을 남겼다. 당분간 정치는 예능의 핵심 소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 정효민 JTBC PD
오늘도 페이스북에선 힐러리 클린턴이 낙선하고도 SNL에 출연해 스스로를 개그 소재삼아 웃음를 선사하는 모습을 네티즌들이 공유하고 있다. 우리나라 시청자들은 이미 앞서가 있다. 수준 높은 예능을 볼 준비가 돼 있는 시청자들에게 한 걸음 더 들어간 예능을 선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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