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투수가 아니라 책임투수다. SBS뉴스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된데 (나도) 책임이 있는데 이 자리(보도본부장)를 맡게 한 건 ‘너가 책임 있는 만큼 책임을 져라’ 하는 것이다. 책임지는 방법은 하나다. 부패나 부조리, 폭력이나 거짓에 성역 없이 감시와 견제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잘하면 빚을 갚아 본전이 되는 것이고 못하면 빚이 늘어나는 것이다.”

오는 19일부터 SBS 8뉴스 앵커로 복귀할 김성준 SBS 신임 보도본부장이 1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난 8월 인사 때 뉴스제작국장(지금의 보도국장)으로 발령났고, 4개월 만에 보도본부장을 맡았으니 승진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두웠고, 기자간담회와 인터뷰 내내 크게 웃지 않았다. 다수의 표현대로 “망해가는 SBS 뉴스”를 살려야 한다.

SBS는 오는 19일부터 뉴스 앵커들을 교체한다. 평일 SBS 8뉴스에 김성준, 최혜림 앵커, 주말 SBS8뉴스는 김현우, 장예원 앵커가 진행을 맡을 예정이다. 평일 아침 ‘모닝와이드’ 뉴스는 김범주, 유경미 앵커, 토요 ‘모닝와이드’ 뉴스는 최재영, 김선재 앵커가 진행을 맡게 된다.

지난 7일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도 서두원-양윤석 체제에서 김성준-정승민 체제로 교체됐다. 윤세영 SBS 미디어그룹 회장과 박정훈 SBS 신임 대표이사 사장 모두 이번 조직개편과 인사에 대해 ‘보도 공정성’과 ‘취재 자율성’을 언급하며 위기의식을 드러냈다. 시청자들은 김성준에 주목하고 있다. 김 본부장과 질답을 재구성했다.

-김 본부장은 2011년 3월~2014년 12월말까지 촌철살인 클로징 멘트로 세간에 화제를 모았다. 일부 시청자들이 이를 원하고 있을텐데?

“19일 뉴스를 보고 ‘별 변화가 없네’, ‘심심하네’ 할 정도의 뉴스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 클로징을 강하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클로징 멘트를 준비하는 과정도 고민스러웠고, 결과에 대한 반응도 고통스러웠다. 과거처럼 140자 안에 압축해 쿡쿡 찌르듯이 (멘트)하고 싶지 않다. 조금 싱거울 것이다.

당시에도 클로징 멘트에 대해 많은 분들이 소신이라고 칭찬하기도 했고, 한쪽에서는 사견이라고 비판했다. 자료조사요원도 동원하고 하루 종일 통화하고 평균 A4 3~4장이 넘는 데이터를 근거해 클로징 멘트를 만들었다. 사견도 아니고 소신도 아니었다. 편집회의에서 나온 것들을 가지고 SBS가 제공하는 관점일 뿐이다.

뉴스는 의견으로 의견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실로 의견을 얘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미가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장미꽃잎이 몇 개이고 색깔 하나하나가 어떻고 어떤 잎에는 이슬이 맺혀있다’고 표현해 아름답다는 것을 시청자들이 느끼게 해주는 것이 뉴스라고 본다.“

▲ 김성준 SBS 보도본부장. 사진=SBS

-JTBC 뉴스룸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이나 MBN 뉴스8 김주하의 뉴스초점과 같이 논평 형식은 없을 것이란 이야기인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음향을 넣으면서 정신없게 만들거나 하는 식의 것들은 없애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 손석희 앵커와 경쟁할 수밖에 없는데

“그 분은 언론인으로서 큰 업적을 남겼고, 방송 진행자 뿐 아니라 언론사를 이끌며 역사에 남을만한 일을 해낸 분이다. 그분하고 경쟁한다는 생각을 하진 않고, 혹 시청률에서 SBS가 앞선다고 경쟁에서 이겼다고 볼 수도 없다. SBS의 절박함은 당장 며칠 시청률이 밀리는 정도의 절박감이 아니다. 뉴스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다. 우리는 우리의 뉴스를 해나갈 것이고, 시청자들의 선택을 받고 싶다.“

- 본질적인 문제라면?

“뉴미디어 시대다. 하루 종일 정보가 둥둥 떠다닌다. 사람들이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저녁 8시에 TV 앞에서 누가 그 정보를 다시 한 번 볼까. 심층적이고 분석적인 뉴스가 중요해질 것이다. 하루 종일 보지 못했던 뉴스도 필요하고, 정보들이 내일을 살면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하는지를 깨달을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해야 한다.

방송 광고 시장이 급격하게 축소되고 있다. 그렇다고 콘텐츠를 팔아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들고 있고, 뉴스 소비를 모바일로 하는 상황에서 이 고민은 종편도 마찬가지다. 뉴스의 위기 상황에서 진짜 우리가 망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 올라타 있다.“

- 변화는 있어야 할텐데

“사실 지난 8월 뉴스제작국장 자리에 오면서 ‘앵커를 누구를 뽑을까’, ‘어떤 뉴스를 만들까’ 고민하다가 갑작스럽게 앵커를 맡게 됐다.

4가지를 바꿔보고 싶다. 첫째 소상하게 알려주는 뉴스. 한 이슈에 대해 SBS만 보고 다른 거 안 봐도 되는 뉴스를 만들어 시청자들에게 포만감을 주고 싶다. 둘째로 현장을 지키는 뉴스를 만들 것이다. 현장을 지키는 게 기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라이브쇼로 뉴스를 충실하게 하려고 한다. 이제까지는 녹화된 영상, 준비된 기사가 많았는데 뉴스가 진행되는 51분 동안 벌어지는 뉴스까지 담고 싶다. 마지막으로 시청자가 묻고 기자가 답하는 뉴스를 하고 싶다. 기존 리포트는 기자가 어떤 내용을 담을지 취사선택해 내보내는 것인데 그런 형식을 떠나서 앵커가 시청자를 대신해 궁금한 것을 묻고 기자가 답하는 형식으로 하겠다. 기자가 주고 싶은 정보가 아니라 시청자가 원하는 답을 줄 수 있다.“

-해설과 관점을 담다보면 JTBC 뉴스룸과 비슷해질 것 같다

“기자들의 출연이 많아지면 형식적으로 뉴스룸과 비슷해질 수는 있다. 하지만 SBS의 다른 강점이 있다. 맨파워가 있고, 지상파 뉴스만이 할 수 있는 강점들이 있다. 토크 중심으로 뉴스가 잘못 갈 경우 지루해질 수 있다. 내년에는 대담 형식에 맞는 세트에 대해서도 고민할 예정이다. 사실 뉴스제작국장을 맡으면서 기자들 출연을 1분짜리 1명에서 1분30초 2명, 지금은 4명정도가 평균 2분 정도 출연한다. 시청률 (떨어질까) 부담이 있지만 정량적인 지표로 잡히지 않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변화하는 중이다.”

-그동안 많은 SBS출신 언론인들이 청와대로 갔다. 외압은 없었나? 정치권으로 오라는 제안 받은 건 없었나?

“없었다. 정치부장 시절에 저에게 직접적으로 온 외압은 없었고. 그리고 이제 SBS에는 안 올 것 같다. 지금 SBS출신을 홍보수석에 부를 엄두를 못 낼 것이다. 외부에서 보는 분들은 정권이 흔들리니까 정치풍향계에 따라 간다고 볼 수도 있는데 내부에서 느끼는 절박감은 최순실 사태만으로 생긴 건 아니다. 물론 나 역시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몇몇 선배들이 직을 떠나기도 했다.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망하기 일보 직전에 와있는데 정치권 눈치봐서는 이제 정말 안 되겠구나 뼈저리게 다시 느낀 것뿐이다.”

-보도 공정성을 위해 추가적으로 고민하는 제도도 있나?

“여러 가지 고민은 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로 가능하게 할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 뉴스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절차를 거쳐 해결하는지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건데, 후배기자들에게 (혹시 외압이 있을 경우) 방패막이가 되겠다고 약속을 했다. 노조에서 대화를 요청하면 언제든 대화할 준비도 돼 있다.”

-SBS 팟캐스트 ‘골룸’ 진행을 맡기도 했는데 골룸이 생각보다 인기가 많지 않다.

“기자들이 나오는데 (청취자들에게) 객관적으로 나를 취재할 사람이라는 인식을 줘야 한다. 팟캐스트에서 인기를 끌려면 충격적인 정보를 전달하거나 입담을 가지고 사견도 가감없이 쏟아야 한다. 기자의 이름을 달고 자극적인 의견까지 낼 수 없다는 맹점 때문에 ‘품격있는 팟캐스트’를 지향했지만 손해 본 느낌? 기자들 스스로가 신뢰도를 훼손하지 않으려 해 조심스러운 게 아닌가 싶다”

-앵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앵커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자제력이라고 생각한다. 앵커도 약간 연예인과 같은 기질이 있기 때문이다. 100개 넘는 조명에 수많은 사람들이 (앵커의) 빈자리 하나를 바라보고 있다. 옷도 봐주고 머리도 봐주고, 담당 피디는 준비가 어떻게 됐는지 설명해준다. 그 순간 굉장한 책임감을 느끼고 엄청난 멘트를 날려서 ‘나쁜놈들을 물리쳐야지’하는 생각도 든다. 그 생각을 8시 이전에 빨리 털어버려야지, 그렇지 못하고 흥분한 상태로 하면 뉴스가 아닌 게 된다.

공정, 객관 이런 표현을 좋아하지않는다. 상당수가 공정하고 객관적이지 못한 경우 그것을 덮기 위해 쓰는 경우였다. 어떤 아이템을 발제할 것인가, 어떤 뉴스를 선택할 것인가, 선택의 연속인데 객관적일 수 있는가. 여당 발언 45초, 야당 발언 45초 얘기하고 양파껍질 한두겹 벗긴 채로 균형 잡힌 보도라고 할 수 없다.”

▲ SBS는 오는 19일부터 뉴스 앵커들을 전면 교체한다. 왼쪽부터 김성준 보도본부장, 최혜림 앵커, 주말뉴스를 담당하는 장예원 앵커, 김현우 앵커. 사진=SBS
김 본부장이 앵커자리에 물러나던 2014년 마지막 날 떠나는 소회를 남기며 이런 말로 마무리했다.

“혹시 저녁때 시간되시면 ‘본방 사수’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뉴스의 위기는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뉴스를 시청하는 시민들은 이미 SBS 뉴스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언론인들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에 취약했는지 모른다. 말하는 자는 잘 듣지 못하니까. 일단 SBS가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아들였다. 수많은 이들이 김성준을 주목하고 있다.

※ 김성준 보도본부장은?

1991년 기자 공채1기로 SBS에 입사해 2004년까지 사회·정치·경제부 기자로 활동했다. 2000년 나이트라인, 2002~2004년, 2009~2011년 출발 모닝와이드(現 모닝와이드) 앵커로 활약했다. 2004년~2007년 워싱턴 특파원으로 일했고, 2011년 보도국 부장에 취임함과 동시에 SBS 8뉴스의 앵커자리에 올라 2011년 3월21일부터 2014년 12월31일까지 3년9개월 동안 진행했다. 지난 8월24일 보도본부 뉴스제작국 국장으로 승진했고, 지난 9일 보도본부장으로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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