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위반 감시 기관’ 고용노동부가 ‘불법파견’ 문제 해결을 위해 차려진 밥상을 제발로 찼다. 인천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파견법 위반 업체를 수개월 간 추적조사해 고발했음에도 노동부가 무더기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봐주기 수사 정황도 다수 발견됐다. 불법파견 근절에 나서야 할 노동부가 되레 이 문제를 방조·비호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및 남동공단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119’는 지난 14일 인천지역 336개 파견법 위반 업체를 고발한 결과를 발표하며 또 다른 8개 사업장을 파견법 위반으로 추가 고발했다.

▲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및 남동공단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119'는 지난 14일 인천 중부지방노동청에서 '불법파견 고발 결과 발표 및 추가 파견법 위반 제조업 사업체 고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동과세계

두 개 사업단은 지난해 10월6일 무허가 파견업체 73개, 불법 파견업체 252개, 불법 파견 인력을 쓴 사용업체 11개 등 총 336개 업체를 파견법 위반 혐의로 노동부에 고발한 바 있다. 이들은 지난해 1월부터 고발 전까지 9개월 여간 인천지역 내 파견업체 전수 조사를 시도했다. 부평·남동 공단 파견노동자 16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파견노동실태조사, 각 파견업체의 구인공고, 사업단 내 노동상담 자료 등이 입증자료로 제출됐다.

‘불법파견 실태조사’ 손에 쥐어줬는데도 노동부, 조사·처벌 해태

노동부 처벌 결과를 보면 ‘솜방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피고발 파견업체 325개 중 82.4%에 달하는 268개에 각하 또는 무혐의 처리가 났다. 나머지 57개 업체 중에도 29개가 수사 중이다. 벌금 조치를 받은 업체 수는 전체 3.7%에 불과한 12개다.

▲ '노동자119' 등이 2015년 10월6일 336개 파견업체 및 사용업체를 파견법 위반으로 고발한 결과 12월6일 기준, 268개 업체가 각하 및 무혐의 처분됐다. 사진=기자회견 자료집 캡쳐

봐주기식 수사도 눈에 뛴다. 각하·무혐의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268개 중 79개 업체가 ‘조사 시점’에 폐업했다는 이유로 각하 처분을 받았다. 조사 시점인 2015년 10월 이전에 불법으로 인력을 파견한 사실이 입증됐음에도 기각된 것이다.

신규 등록 업체도 조사 없이 각하 조치 됐다. 2015년 5월~10월 사이 등록된 26개 업체가 ‘신규 등록’이라는 이유로 파견법 위반 조사 없이 각하 처분을 받은 것이다. 지난해 9월11일 등록된 ‘ㄴ 파견업체’는 불법파견 사실이 확인됐음에도 노동부에 의해 고발이 기각됐다.

161개 업체가 ‘무혐의’를 받은 이유 중엔 사업단이 제시한 물증이 ‘조사 당시’ 현황과 일치하지 않다는 점도 있다. 사업단이 불법파견을 감시한 시기는 2015년 1월부터 9월, 조사시점은 10월6일 이후다. 예를 들면, ‘ㄹ 제조업체’는 2015년 10월 이전 ‘ㄷ 파견업체’로부터 불법으로 파견노동자를 썼고 사업단은 이 증거를 노동부에 제출했으나 노동부는 ‘조사 당시 사용업체가 ㄷ파견업체와 계약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 파견업체 간판. 사진=긴급토론회 '삼성전자 하청업체 메탄올 중독 사건의 시그널, 청년 노동자들의 시각 손상 사건이 의미하는 것' 자료집 중 장안석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부장 발제자료

무혐의를 받은 161개 중 105개는 불법 파견 입증 자료가 없었고 이것이 곧 노동부의 무혐의 처분 근거가 됐다. 그러나 명확한 정황 증거가 잡힌 56개 업체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사업단이 제출한 근거자료의 일관성 및 적지 않은 ‘표본의 수’를 고려하면 인천지역 공단에 불법파견업체가 만연해있다고 여기기 충분하다. 노동부가 불법파견 근절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피고발 업체 전체에 대해 재량껏 조사권을 휘두를 수 있는 대목이다.

제조업 파견, 그 자체가 불법… '불법 파견 업체 목록' 줘도 조사 안하는 노동부

파견업체로부터 인력을 공급받는 ‘사용업체’의 경우에도 노동부의 봐주기가 발견됐다. 우선 이들 업체에 노동자를 공급한 파견업체 전체가 처벌받지 않았다. 사용업체는 모두 파견노동자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된 제조업체다. 일시적·간헐적 사유에 한해 최장 6개월까지 노동자 파견이 허용되지만 이들이 파견노동자를 상시적으로 쓰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노동부는 직접 고용 명령을 내릴 때도 사용업체를 배려했다. 노동부가 고발 기간 동안 일한 전체 파견노동자에 대해 명령을 내리지 않고 조사 시점에 근무한 파견노동자에 한해 직접고용 명령을 내린 것이다. 

‘ㅂ 사용업체’의 경우 노동부는 고발 기간 포함 전체 파견 노동자 447명에 대해 직접고용명령을 내렸으나 나머지 4개 사엔 각각 5명, 12명, 27명 ,91명 등 현재 근무하는 인원에 한해서만 직접고용 명령을 내렸다. ‘노동자119’ 사업단 소속 장안석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사업부장은 “직접고용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한 사람당 천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이걸 노동부가 피해가게 해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은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파견업체 전수조사를 시도해 공단 내 각 사용업체 별 파견업체 계약 현황을 밝혀냈다. 노동부는 이 결과표를 받고도 제대로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사진=장안석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부장 토론회 발제자료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 및 남동공단 권리찾기 사업단 ‘노동자119’이 지난 14일 8개 파견법 위반 업체를 대상으로 2차 고발을 진행한 가운데, 이들은 2달 간격으로 파견업체 고발을 진행해 나갈 것이라 밝혔다. 이를 위해 계속적으로 인천지역 공단 내 불법파견 실태를 추적할 예정이다. 장 조직부장은 “파견법이 통과된 후로 파견노동자 수가 3배가 늘었다. 제조업체들은 인사·채용 업무를 아예 안하고 외주화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한 달이든 두 달이든 간격을 두고 고소·고발을 진행함으로써 인천지역 남동공단을 파견노동자 없는 공단으로 만들 것”이라 밝혔다.

사업단이 지난 10월 고발한 사용업체 11곳, 파견업체 325곳은 모두 파견법 5, 6조를 위반했다. 사용업체는 모두 핸드폰 부품·가전제품 등을 생산하는 제조업체였다. 2015년 파견노동자 16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실태조사 결과 파견노동자가 전체 직원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답한 비율이 47.8%였다. ‘일시적·간헐적’ 사유로 파견노동을 쓰는지 의심을 가지기 충분한 값이다.

사업단이 주요 근거자료로 제출한 파견업체 구인공고를 보면 이는 더 명확해진다. “정규직/상시모집/생산·제조·품질검사/1년이상/총9시간근무/월 280만원” 파견업체들이 알바몬, 알바천국 등 각종 구인사이트에 게시하는 공고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다. 일시적·간헐적 인력 확보를 위한 구인 내용으로 보기 힘들 뿐더러 ‘최장 6개월’이라는 파견 기간 규정에도 위배된다.

▲ 한 파견업체 구인 공고 캡쳐본. 파견노동자를 고용해야 할 '일시적·간헐적' 사유는 적시돼있지 않다. 사진=장안석 민주노총 인천본부 조직부장 토론회 발제자료

파견법은 파견노동 편법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제한된 조건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는 파견 금지 업종이다.(제5조) 만에 하나 “출산·질병·부상 등으로 결원이 생긴 경우” 또는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 파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제5조) 그 기간도 최대 3개월이 원칙이나 “파견사업주·사용사업주·파견근로자간” 합의가 있는 경우 최장 6개월까지 고용할 수 있다.(제6조)

이를 위반하면 모두 ‘불법파견’ 사업장이다. 불법파견 업체에 대해 고용노동부장관은 노동자 파견사업의 허가를 취소하거나 6월 이내의 기간을 정하여 영업정지를 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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