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결 과정에서 본 진영론의 붕괴 조짐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34명이 탄핵 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소추안을 발의한 야당과 무소속 의원 171명에 더하여 찬성표를 던졌을 것으로 예상되는 국회의장,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62명의 의원이 찬성표를 던져 모두 234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회 재적의원 전체의 78%에 해당하며 여당의 경우 절반에 가까운 숫자(48.4%)가 찬성표를 던진 숫자이다.
한국 사회의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보수든 진보든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진영론을 우려하는 이유가 이런 몰 합리성에 있다. 나라의 분단에 더하여 정파에 의해 또다시 분열된 몰 합리한 토론 구조 속에서 세계와 어깨를 겨루는 선진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일은 나무숲에서 물고기를 찾는 일과 다름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작고 적은 땅덩어리와 자원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춰 살기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평균 학력 수준이 높고, 근면성도 좋은 국민들의 잠재력을 총동원할 때에만 가능할 수 있다. 이러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의사소통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를 가장 크게 방해하는 관행이 ‘진영론’이다.
촛불 민심의 요구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새 역사 창조
이번 탄핵소추안 가결을 둘러싸고 진영론의 붕괴 조짐이 보였다는 사실은 그래서 참으로 큰 희망의 빛이었다. 물론 이를 만들어낸 힘은 자신들이 차지할 권력에만 관심이 가 있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자신의 일상적 손해를 감수하고 촛불을 든 민심이었다. 대통령이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의 권력욕을 활용한 분열책으로 다시 진영론에 불을 지피려 하자 민심은 더 성난 모습으로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들어 올려 이를 막아섰다. 국민들이 하나의 가치 즉 부정과 부패, 무능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가치를 어떤 정파적 이해보다 앞서 세워줌으로써 국회의원도 모두 이 테두리 내에서 토론하고 행동하도록 요구했다.지금까지 국민들은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이니까’, ‘내가 찍은 정치인이니까’와 같은 이유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주었다. 나보다 잘 났으니 오죽 잘 알아서 할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접하면서 나보다 잘 날 만큼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이 몰래 숨어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 챙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국민들의 태도는 달라졌다. 정치인을 통한 대의민주주의를 버리고 광장에 나와 직접 민주주의를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어떤 이야기인가? 광장에 나와 본 정치인은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대한민국을 새로이 열어가자는 요구다. 박근혜라는 수준이 안 되는 정치인을 갈아치우는 수준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만들어가자는 요구다. 그래서 탄핵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 보수 성향을 띄어 온 매체나 지상파 방송은 탄핵을 끝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자사의 현역 주필을 파렴치범으로 몰아 사임시키고 사장을 사과하게 만든 청와대에 대한 보복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매체들이 이렇게 보도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촛불보도에 섞어 누가 차기 대권을 잡니 마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이들은 정말 대한민국이 지금까지의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 큰 반성을 촉구한다.
※ 이 칼럼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행하는 웹진 ‘e-시민과언론’과 공동으로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