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꼿꼿장수’로 유명세를 탄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현 주중대사)의 무능과 무책임함이 국민을 경악하게 하고 있다. 청와대 집무실로 출근하지않고 약물주사에 빠져있는 대통령, 국민과의 소통이 단절된 대통령 곁에 무책임한 대통령실장과 함께, 국가안보실장이 세월호 재난상황에서 보여준 행태는 박정권이 왜 탄핵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가를 웅변하고 있다.

김 전실장은 12월14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특별위원회의 3차 청문회에 나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상황 보고서를 청와대 본관 집무실과 관저에 각각 1부씩 보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소재가 파악되지않아서 그렇게 했단다.

304명이라는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이 걸린 화급한 비상상황이 발생했는데, 안보실장이 대통령 소재파악을 못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서면보고, 전화보고만 했다는 것도 국민은 이해하지 못한다. 대통령이 달나라 간 것도 아니고 청와대내에 함께 있으면서 찾아가는 적극적 행동을 취하지않은 것은 설명이 되지않는다.

▲ 12월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3차 청문회에 참석한 김장수 전 국가안보실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김 전 실장은 또 세월호 참사 당일 오후 2시57분 “대통령에게 중앙재해대책본부에 가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고 주장했다. 청문위원들이 이를 근거로 “건의 뒤 2시간이 넘은 5시15분에야 중대본을 방문한 이유가 ‘올림머리’ 때문 아니냐”고 지적하자, 김 전 실장은 “머리 손질로 (늦게) 중대본에 갔다고 제가 생각하기 싫다.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고 답변했다.

싫고 좋고를 떠나서 대통령이 실제로 중대본에 간 것은 연락한 뒤 2시간이 지났을 때인데, 그동안 그는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대통령이야 그렇다치고 안보실장은 7 시간 동안 무얼하고 있었던가. 그는 아무것도 하지않았다. 그 시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을 찾아가 만나지도 않고 재촉하지도 않고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던 셈이다. 무능과 무책임외는 설명할 길이 없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김 전 실장의 실언인지 착각인지 스스로의 말조차 설명을 하지못하는 부분이다. 김 전 실장은 자신이 2016년 11월 28일 베이징 특파원들과 만나 “대통령이 전화로 ‘유리창을 깨서라도 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던 사실을 스스로 부인한 것이다. 그는 청문회에서는 “착각을 한 것인지 확답을 못 하겠다. 어제(13일) 청와대에 물었더니 ‘그런 워딩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을 바꿨다. 이건 또 뭔가?

▲ 2014년 4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긴급 방문했다. 사진=청와대
김 전 실장이 베이징에서는 ‘대통령이 유리창을 깨서라도 구하라’는 사뭇 결연한 지시를 내린 듯한 발언을 하고 불과 2주만에 한국에 와서는 스스로 ‘착각’ 운운하는 무책임한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귀를 의심케하는 언론플레이를 해놓고 따져묻게 되자 착각인지 모르겠다는 엉뚱한 답변을 하는 현직 중국대사. 한때는 일국의 안보를 책임지던 안보실장에서 현재는 국가를 대표하는 대사를 지내고 있는 그의 말장난은 박정권의 수치스런 실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무책임한 대통령에 무능한 ‘착각장수’ 김전실장의 발언은 그동안 언론이 그를 ‘꼿꼿장수’로 얼마나 이미지 조작을 해왔던가를 실감할 수 있다. 박 대통령 집권이후 주변 참모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십상시’들로 채웠다. 이들중 일부는 벌써 감방으로 갔지만 제대로 수사하면 대다수 법적 처벌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촛불 시위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띈 것중 하나는 ‘박근혜 탄핵’과 함께 ‘이게 나랴냐’라는 문구였다. 대통령이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태를 맞은 것은 혼자만의 잘못이 아니다. 대통령실장, 안보실장, 수석 등 최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인간들이 무책임과 무능을 합작할 때 대통령을 망치고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 물론 친박 새누리의 또 다른 십상시들의 맹목적 지지는 자멸을 가속화시켰다.

▲ 11월12일 민중총궐기 모습. 사진=최창호 프리랜서 작가
박근혜 정부에서 사법부는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했다. 입법부는 친박의 위세로 역시 견제의 목소리를 내지못했다. KBS, MBC로 대표되는 한국의 언론은 견제, 감시대신에 대통령 홍보에만 주력했다. 해외에 나갈 때 마다 밑도끝도없이 ‘한복외교’ ‘자원외교’ ‘대통령 외국어 찬사’만 늘어놓았다. 조금이라도 견제, 감시의 목소리를 내는 언론에 대해선 가차없이 수사기관, 세무조사기관을 동원하여 압박했다.

그 사이 한국언론의 자유도는 한때 세계 30위권에서 70위 권으로 급전직하했다. 상위1%만 잘사는 나라 나머지 99%는 ‘개돼지’가 되는 나라로 퇴행했다. 대학부정입학, 학사 특혜, 대기업 불법모금 등 권력형 불법 행태는 심화됐다. 국정농단사태는 더 지속될 수 있었다.

그나마 국가의 불행한 퇴행행태를 좀 더 빨리 브레이크를 걸 수 있었던 것은 JTBC 덕분이다. 일각에서는 JTBC의 최순실 테이블릿 PC 입수경위에 대해 문제삼는 모양인데,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JTBC는 논란이 되자 입수경위를 자세하게 공개했다. 법적으로 윤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설혹 불법적으로 입수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오로지 공익을 위하여 또한 진실이라고 믿었을 때는 면책한다는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되기 때문에 문제될 수가 없다.

▲ 2014년 11월28일 세계일보가 보도한 ‘정윤회 문건’ 기사
2014년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을 처음으로 보도하자 청와대는 총력전을 펼쳐 입에 재갈을 물렸다. 2016년 JTBC가 보다 확실한 물증을 갖고 최순실게이트를 보도하자 하루도 지나지않아 박 대통령은 사과를 했다. 사과를 하는 순간까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은 또 다른 무책임함의 연속이었다.

대리사과, 찔끔사과로 소문난 박근혜의 무책임한 사과는 오히려 불만을 키웠다. 국민의 촛불시위는 그렇게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는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대통령 탄핵은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 국가적으로 불행한 비극적 상태다. 정치의 실패, 국정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한다.

그러나 나태한 대통령에 무책임한 참모들로 이 나라가 더 지속됐더라면 더 큰 불행을 예고하지않았을까. 국민의 신뢰를 무책임과 오만으로 되돌려준 대통령과 그 참모들은 역사의 죄인이다. 이를 견제하고 감시하지 못한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종편 JTBC가 공영방송 KBS, MBC를 능가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의 선택을 받게 된 것은 단순히 스타앵커 손석희 개인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에 충실하겠다는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만약 최순실의 테블릿 PC를 KBS 나 MBC 등 타언론사에서 입수했다면 과연 이처럼 용기있게 보도할 수 있었을까.

언론탄압 시대에 이처럼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한다는 것을 실제 언론보도로 입증하는 JTBC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그 진정성을 백안시할 필요는 없다. 자기 말도 착각이라고 거짓말하는 참모들로 둘러싸인 무능한 대통령과 그 일당들의 계급장을 당장 떼게해야한다. 그들의 벼슬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며 반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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